상황이 급박해지면서 이시바 총리의 발언 수위도 변하고 있다. “다시 한번 깊은 반성과 새로운 마음으로 전국에 부탁드리고 싶다”(21일)에서 자민당이 정권을 잃었던 시절을 지칭한 “악몽과 같은 민주당 정권(22일)”이란 야당 공격으로 선회했다. '위험 지역구' 40여 곳을 추려 막판 지원 사격에도 나섰다. 지난 24일 히로시마(広島), 오카야마(岡山), 효고(兵庫),오사카(大阪) 등을 찾아 후보 7명에 대한 지원 유세를 했다. 25일엔 아오모리(青森)와 아키타(秋田)를 찾아 마이크를 잡았다.
하지만 자민당이 수세에 몰린 데엔 이시바 총리에게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86년 정치계에 입문한 12선 의원인 이시바는 자민당에서 ‘야당’ 역할을 해온 비주류다. 안보·방위 분야 전문가로 홀로 의원 사무실에서 정책을 공부하는 ‘정책통’으로 유명한 그는 오랜 시간 차기 총리 후보를 묻는 여론 조사에서 1위에 오르곤 했다.
반면 넓지 않은 인맥, 다른 의원과의 뜸한 교류는 그의 아킬레스건으로 자민당 총재 선거 이후 이시바 총리에게 마이너스가 되고 있다. 구메 아키라(久米晃) 자민당 전 사무국장이 지지통신과의 인터뷰에서 “5번이나 총재 선거에 나섰지만 믿을만한 참모나 부하가 없다”고 평가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논란의 정점은 비자금 의원 공천 문제였다. 총재 선거 당시 그는 자민당을 뒤흔든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의원들을 공천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왔지만 결과는 달랐다. ‘원칙적으로 용인’하고 일정 기준에서 벗어나는 연루 의원 12명만 공천 배제했다. 아사히신문은 “새로운 후보를 내세울 시간 여유가 없어 타협하는 쪽으로 기운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다만 이시바 총리는 이들 44명의 의원을 '중복 공천'에서 배제했다.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지역구 공천과 비례대표 중복 입후보가 가능한데, 이들은 제외시켰단 얘기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생환'한다고 게 이시바에게 좋은 일만은 아니다. 자민당의 오랜 주류이자 옛 아베파의 핵심이던 이들이 당선돼 돌아올 경우 담내 분열이 확대될 수 있다. 실제로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와 막판 접전을 벌인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경제안전보장담당상은 이시바 측과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자민당 내 요직 제안을 거절한 데 이어, 이번 총선에선 옛 아베파 의원과 총재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한 의원을 적극적인 지원하고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자민당 내에서 '반 이시바' 목소리가 커져 이시바 총리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단 얘기다.
이시바 총리는 해당 보도에 “의원 개인이 사용할 일은 없다”고 했지만, 야당은 “위장 공천”이라며 반발했다. 공천받은 의원들에게 통상 공천료 500만엔과 활동비 1500만엔 등 총 2000만엔을 지원하는데, 공천 배제 의원 측에 자민당이 공교롭게 같은 금액을 지원한 점을 물고 늘어졌다. 실제로 공천배제 의원 일부가 입금을 시인하며 “돌려주겠다”고 하는 등 파장은 계속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을 통해 “말로만의 반성으로 ‘정치자금’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는다면 정치불신을 씻을 수 없다”며 “이런 자세도 총선거에서 심판받는다는 것을 총리가 자각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번 총선에서 여당 과반 달성이 깨질 경우 이시바 총리는 참패 책임론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내년 7월로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자민당 내에선 이시바 체제로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이시바 총리가 약속한 ‘여당 과반’ 확보에 성공하더라도 당 안팎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안정적인 정권 운영을 위해선 일정 이상의 의석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예산안이나 법안의 원활한 통과를 위해 필요한 ‘안정 다수’ 의석은 244석, 상임위원장을 독점하고 상임위원 과반 이상을 확보할 수 있는 ‘절대 안정 다수’ 의석은 261석이다.
이 때문에 총선 후 의석수 감소가 확실시되는 자민당이 안정적 정권 운영을 위해 연립정권 확대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익 성향의 일본유신회, 정책면에서 유사성을 지닌 국민민주당이 자민당의 새로운 우군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