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무한 정쟁이 이끄는 '의혹 갈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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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다녀간 사람은 ‘천공’이 아니었다.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은 남영신 전 육군참모총장에게서 "천공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고위 관계자와 함께 한남동 육군총장 공관과 육군 서울사무소를 방문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은 부 전 대변인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고 수사를 한 경찰은 ‘천공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다녀간 사람은 풍수학자인 백재권 교수였다고 한다.

‘천공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났지만 공방은 다시 뜨거워지는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의 관저를 선정하는 것은 중대한 국정 사안이며 이를 풍수지리가의 조언을 들어 결정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광경을 보노라면 끝이 없는 ‘무한 정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가 밝혀져도 쟁점이 이동하며 여전한 정쟁 거리가 되곤 한다.

지난해 5월에 우상호 민주당 의원 등이 제기했던 ‘김건희 여사 강아지’ 폭로도 그러했다. 당시 우 의원은 김 여사가 새 대통령 관저로 확정된 외교부 장관 공관을 방문해 장관 부인에게 "안을 둘러봐야 되니 나가 있어 달라"며 무례하게 굴었다고 주장했다.

그런 사실이 없었던 것으로 판명 나자, 야당 정치인들은 다시 김 여사가 ‘강아지를 안고 갔다’는 문제로 초점을 이동해서 공격했다. ‘장관 부인’은 사라지고 ‘강아지’가 등장한 것이다. 제기한 의혹이 사실 아님으로 확인되어도 그에 상관없이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하며 자신들의 오류를 덮어버리는 일이 반복된다.

풍수지리는 동양과학의 근본인 주역의 원리로 하늘과 땅의 기운을 연구하는 하나의 학문이다. 역사적 경험에 기초해 구성되었기 때문에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인문지리학적인 학설로 활용되는 경우도 많다.

노무현 정부 당시 행정수도 입지를 결정하는 과정에도 풍수전문가 2명이 참여한 사실이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을 맡았던 유홍준 교수도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 공약을 포기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풍수지리적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중요한 터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풍수지리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것은 역사적으로 오랜 관습이며 특별히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대통령 관저 이전에 풍수지리학자의 의견을 참고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쟁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풍수지리를 무속이나 미신처럼 몰아가며 비난하는 것은 사회적 통념과도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천공 의혹’이 사실 무근이었음을 인정하는 사람은 없고 논점은 ‘풍수지리’로 슬그머니 이동한다. 부 전 대변인은 "풍수전문가가 됐든 누가 됐든 중요한 게 아니고, (민간인 무단출입이라는) 포인트에서 봤을 때는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는다.

얼마 전 박영훈 민주당 청년미래연석회의 부의장이 김건희 여사가 ‘에코백 안에 샤넬백을 숨겨 넣었다’고 주장했다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지만 사과 한마디 없었다. 같은 당 민형배 의원은 "사실이든 아니든 시민 눈에 그리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면서 "여사님의 명품 사랑"이라고 비판했다. 국회의원의 입에서 나온 "사실이든 아니든"이라는 말은 귀를 의심하게 만든다. 그런 생각을 가질 때 정치는 선동이 된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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