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인지 닭인지 모르고” 중국서 풍자곡 신드롬… 中겨냥? 美겨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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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12.29. 오후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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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벌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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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벌찬의 차이나 온 에어] 발표 20일 만에 조회수 100억

중국 중견 가수 다오랑(오른쪽)이 지난달 19일 발표한 앨범 산가요재(왼쪽). 요재는 청나라 소설가 포송령의 소설집 ‘요재지이’를 뜻한다./산가요재 스줴중궈

“자신이 한 마리 당나귀인지도 모르고, 한 마리 닭인지도 모르고. 무대에서 고상한 척. 내시들은 대대로 위엄을 떨치고.”

중국에서 10여 년 만에 컴백한 중견 가수 다오랑(刀郎·52)의 신곡 ‘나찰해시(羅剎海市)’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10일 중국 매체들은 지난달 19일 발표된 나찰해시가 20여 일 만에 ‘QQ음악’ 등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누적 조회 수 100억 건을 돌파했다고 전했다. 유튜브에서 조회수 1위 뮤직 비디오인 ‘핑크퐁 아기상어’의 누적 조회수(131억회)와 비견될 기록이다.

다오랑의 나찰해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가사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중국의 현실을 풍자한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노래 제목은 청나라 소설가 포송령이 쓴 기담집 ‘요재지이’ 중 ‘나찰해시’란 단편 소설에서 따왔다. ‘나찰’은 악귀, ‘해시’는 신기루란 뜻이다. 가사는 소설 속 주인공 마기(馬驥)가 폭풍을 만나 도착한 가상의 나찰국을 배경으로 한다. 이 나라에선 흑백이 전도돼 있다. 성품이나 능력이 좋을수록 홀대받고, 못생기고 못될수록 높은 벼슬을 얻는다. 2인자인 승상은 콧구멍이 세 개다. 준수한 외모를 가진 외부인인 마기는 석탄을 칠해 추하게 분장하고서야 어울릴 수 있게 된다. 다오랑의 노래 후렴구는 “발에 금빛 테두리를 두른 닭. 하지만 아무리 씻어도 새까만 알에서 태어난 것들은 본디 검다”면서 거짓으로 가득한 ‘나찰국’을 조롱한다. 인터넷에서는 ‘나찰해시 해석본’이 4~5개 버전으로 나돌고 있는데 하나같이 ‘망가진 중국의 현실을 보여줬다’고 설명한다.

조회 수 100억의 히트곡 '나찰해시(羅刹海市)'가 수록된 새 앨범 산가요재(山歌寥哉)를 발표한 중국 중견 가수 다오랑(刀걏). /유튜브

이 노래가 중국의 강도 높은 검열을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반미(反美) 애국송’으로도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 매체들은 노래 가사 중 “마호(馬戶)는 자신이 당나귀(馿)인지 모른다. 우조(又鳥)는 자신이 닭(鷄)인지 모른다”라는 언어유희를 적용한 대목에서 당나귀는 미국 집권 민주당의 마스코트인 당나귀이고, 닭은 미국의 상징인 독수리로 읽힌다고 설명한다. “마호와 우조는 우리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라는 가사도 그런 관점으로 ‘미국이 문제’라고 해석된다는 것이다. 고전을 ‘안전 장치’로 이용하고, 노래가 민요풍인 것도 주효했다. 중국 국영 CCTV는 “노래에 짙은 민족적 정서를 담았다”고 했다.

한편 이 노래는 다오랑이 직접 겪은 가요계의 현실을 고발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데뷔 초기 다오랑을 괴롭혔던 ‘가요계 4인방’을 향한 풍자라는 것이다. 쓰촨성에서 태어난 다오랑은 17세에 가출해 스스로 음악을 익혔고, 2004년에 ‘2002년의 첫눈’이란 앨범으로 벼락 스타가 됐다. 그러나 당시 중화권 가요계를 주름잡던 양쿤·나잉·왕펑·가오샤오쑹으로부터 “음악도 아니다”라는 비난을 받으며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나찰해시는 대중문화계에서 남을 짓밟은 이들에 대한 비판곡이란 것이다.

지금껏 중국에선 노골적인 풍자곡들이 계속 매장됐다. 지난해 상하이의 코로나 장기 봉쇄를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 랩 ‘뉴슬레이브(New Slave)’는 유명해지자마자 금지곡이 됐다. 지난 3월엔 ‘밝고 명랑한 쿵이지’라는 제목의 창작자 미상 노래가 청년들의 신세 한탄곡이 됐지만 곧 인터넷에서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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