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나라 닮은 아이들] 동티모르 산골 마을 유일한 학교를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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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9.14. 오후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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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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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역사적 아픔 가진 동티모르를 방문하다…
바뚜보루 와우뿌 산골 마을에 있는 유일한 학교 '메트로초등학교'
드디어 배울 기회 생겼지만… 동티모르 교육부 요구대로 증축 필요한 상황
매일신문 취재진은 지난 8월 12일부터 21일까지 사회복지법인 가정복지회가 주최하고 복지회 글로벌과 해외의료지원단 '더써드닥터즈'가 주관한 '2023 동티모르-대한민국 의료·교육 지원캠프'에 동행해 9박 10일간 뜻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멀지만 닮은 나라, 동티모르 산골마을 학생들의 유일한 학교를 지키는 데 함께해주세요.

사회복지법인 가정복지회가 주최하고 복지회 글로벌과 해외의료지원단 '더써드닥터즈'가 주관한 '2023 동티모르-대한민국 의료·교육 지원캠프'에 참여한 단원들이 동티모르 리퀴사주 바뚜보루 와우뿌라는 산골마을에 있는 메트로초등학교를 방문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가정복지회 제공
메트로초 학생들. 가정복지회 제공
동티모르 학생들. 가정복지회 제공


"동티모르에 첫발을 디뎠을 때, 어린 시절로 시간여행을 온 줄 알았습니다."

건장한 체격의 50대 가장 최병삼 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터트렸다. 이에 대구로 돌아오는 길의 전세버스 안은 일순 숙연해졌다. 병삼 씨의 고향은 울릉도에서도 나리분지 산자락과 맞닿아 있는 천부리다. 육지에서 보내온 구호품으로 힘들게 학업을 이어 나갔던 그였기에, 바뜨보루 산간 지역 학생들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그 눈물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수없이 겪어온 감정 부침, 역경의 기억, 그 위에서 피워낸 성취의 단내가 뒤섞인 것이었다.

"이번 여정을 통해 나 자신이 그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했음을 알게 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덧붙이며 병삼 씨는 소년처럼 웃었다.

◆닮은 나라, 닮은 아이들

인천공항에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를 경유해 비행기로 꼬박 이틀을 날아가면 우리나라 강원도만 한 크기의 작은 섬나라, 동티모르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Timor-Leste)에 다다를 수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동남쪽으로 1천200km, 호주 북부 다윈에서 북서쪽으로 7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동티모르는 우리나라 90년대 이후 세대에겐 이름조차 생소한 곳이지만, 외세로부터 오랜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닮았다.

숱한 외침과 식민 지배의 역사를 지닌 우리와 마찬가지로 동티모르 또한 포르투갈로부터 오랜 세월 식민 지배를 당하고, 인도네시아에 강제 점령된 아픔이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엔 호주를 둘러싼 연합군과 일본군의 전장으로 쓰였고, 그 과정에서 4만명 이상의 동티모르인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6·25전쟁 이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동티모르 역시 90년대 후반 발발한 내전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황폐해졌다. 친인도네시아 자치파 민병대가 저지른 무자비한 살상과 방화로 2천 여명이 희생됐고, 많은 학교와 병원 등 공공 시설이 파괴됐다. 혼란 끝에 독립 정부가 세워진 지 20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많은 게 열악하다. 노동자 월 평균 임금이 약 160달러(한화로 약 21만원)에 불과한 세계 최빈국, 이것이 동티모르의 현주소다.

이는 두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동티모르 수도 딜리(Dili)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숙소로 향하는 차 안은 디스코팡팡을 방불케 했다. 신호등이 드물어 무법지대 같은 도로 위, 그 위를 달리는 폐차 직전의 도요타, 스즈키, 혼다 차량들. 그보다 훨씬 많은 오토바이. 그 오토바이 뒷좌석엔 닭과 송아지가 밧줄에 묶여 바동거리고 있었다. 가축뿐 아니라 사람이 짐칸에 타거나 활짝 열린 차 문짝에 매달려 가는 풍경도 여기선 흔했다. 차 문 밖으로 바둑판처럼 판자를 이어 붙여 만든 집들이 띄엄띄엄 지나가고, 너덜너덜한 판자 문 뒤론 부실한 살림살이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리고, 그 모든 열악한 풍경엔 아이들이 있었다. 쓰레기로 축구를 하고, 늦은 밤까지 식당 주변을 맴돌며 관광객에게 땅콩을 파는, 그런 아이들이 있었다. 미군들이 '기브미 어 초콜릿'을 외치는 우리나라 아이들을 봤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원조국에서 지원국이 됐다는 알량한 자부심과, 현금이 없어 땅콩을 사줄 수 없는 미안함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바뚜보루 와우뿌 메트로초등학교 전경. 윤정훈 기자
메트로초 학생들이 제기차기 놀이에 열중하고 있다. 가정복지회 제공


◆학교를 만드니 길이 생겼다

가난은 아이들에게 훨씬 잔혹하다. 특히 교육의 부재는 그 잔혹성을 배가시킨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건 이들이 지닌 잠재력을 썩히고, 향후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원천 봉쇄하는 것과 같다.

딜리에서 남쪽으로 차를 타고 2시간 거리에 있는 베레마누레우 마을, 여기서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면 바뚜보루 와우뿌라는 산골마을이 있다. 오지 중의 오지인 이 마을은 주민 대부분이 밭농사와 일용직을 전전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가 낮고, 산 아래 있는 학교에 다니려면 왕복 4시간 이상 산을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교육을 통해 마을을 변화시키자는 신념으로 가정복지회와 대구 중구에 있는 메트로안과, 그리고 현지 법인인 아가파오 재단이 힘을 합쳐 지난 2020년 2월 와우뿌 마을 내 2천800㎡ 상당의 부지에 교무실 1개, 교실 2개, 주방 1개, 화장실 2개 규모로 '바뚜보루 와우뿌 메트로초등학교'를 건립했다. 이러한 소식은 당시 도밍고스 다 콘시사운 산투(Domingos da Consicao Santo) 리퀴사주 주지사에게까지 전달됐다. 그간 주지사는 차로 다닐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이유로 인도네시아 식민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곳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학교 방문 후 길의 필요성을 느낀 주지사에 의해 바뚜보루 마을엔 학교로 가는 길이 생겼다. 꿈을 품고, 바깥 세상으로 그 꿈을 펼칠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그로부터 3년이 흘러 이 길을 통해 가정복지회 소속 복지기관 관계자, 매일신문 취재진 등으로 구성된 교육캠프 단원 12명이 메트로초에 도착했다. 트럭 짐칸 측면 난간대를 간신히 붙잡고 캐리어, 배낭들과 뒤섞인 채로 울퉁불퉁한 산길을 20분간 오르니 우리나라 시골 기차역을 연상케 하는 아담한 학교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 뒤로는 하늘과 산, 그리고 바다가 겹겹이 쌓인 채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운동장에선 아이들이 구멍 난 축구공을 그물 없이 막대기 3개로만 만들어진 '골대'에 넣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공이 골대를 그대로 통과해 절벽에 가까운 비탈길 아래로 떨어지면, 아이들은 익숙하다는 듯 주저 없이 내려가 공을 주워 왔다.

페인트칠 중인 교육캠프 단원들. 윤정훈 기자


교육캠프 단원들은 지난달 14일부터 17일까지 이곳에서 총 36명의 학생들과 어울리며 학교 시설 정비 및 교육·놀이 봉사를 진행했다. 학교 건물 외벽과 교실 내부에 페인트칠을 새로 하고, 전기가 없어 해가 지면 이용이 어려웠던 화장실에 전기도 설치했다. 이외에도 부채 만들기, 제기 차기 등 한국의 전통 놀이를 가르치며 평소 외국 문화를 접할 기회가 부족한 메트로초 학생들에게 그러한 기회를 제공하는 활동들을 다채롭게 진행했다.

사소한 것에도 금방 웃음을 터뜨리는 순수한 아이들. 그 해맑음 앞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의 미소를 지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은 당장 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메트로초는 동티모르 교육부로부터 조건부로 학교 인가를 받은 상황이다. 동티모르 교육부는 가정복지회 측에 한 학년에 교실 하나씩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러려면 약 9천만원을 투입해 지금보다 3개 교실을 더 증축해야 한다. 9천만원에 학교의 존망과 아이들의 꿈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메트로초등학교 5학년 학생 쁘리아나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다. 윤정훈 기자
(왼쪽부터)쁘리아나와 부모님, 남동생 롱기우스. 가정복지회 제공


◆모든 아이는 계속 꿈꿔야 한다

비탈길을 올라 메트로초 5학년 쁘리아나, 4학년 롱기우스, 1학년 죠세 3남매가 사는 집에 도착했다. 부모님과 형제자매 등을 합해 총 9식구가 생활하고 있는 그곳은 집보단 동굴에 가까웠다. 벽지 없이 벽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집안. 흙먼지 가득한 바닥을 맨발로 걸어 다니는 식구들. 침대만 겨우 들어갈 정도라 제대로 된 학습 공간은 꿈도 못 꾼다. 그래서 공부할 책상이 있고,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는 메트로초가 쁘리아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내년이면 쁘리아나는 6학년이 된다. 쁘리아나에겐 의사가 되고 싶다는 당찬 꿈도 있지만, 부모님은 딸의 꿈을 마음 편히 응원해 줄 수 없는 상황이다. 쁘리아나의 아버지 어거스트(50) 씨는 학교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농사를 짓는다. 쁘리아나네 아홉 식구가 자급자족을 할 뿐, 농작물 판매를 통한 별도의 수익은 없는 상황이다. 어머니 에르멜린다(49) 씨는 "현재 출가한 첫째 아들은 Secondary School(한국의 고등학교)까지 겨우 보냈지만, 나머지 3명의 아이는 형편상 학교에 보낼 수 없었다"며 "쁘리아나, 롱기우스, 죠세만큼은 대학에 갈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지원하고 싶지만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동티모르 정부가 2011년 발표한 국가개발계획은 2030년까지 여러 분야에서의 발전 방향을 담고 있는데, 그중 교육 분야에선 모든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동티모르 정부의 노력으로 초등학교 진학률은 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열악한 통학 여건, 학부모의 교육 의지 부족 등 여러 이유로 학교를 그만두고 있다.

유네스코 통계 전문 기관(UIS)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동티모르의 초등학교 졸업률은 90%로, 우리나라 (99%)에 비해 낮은 편이다. 상급학교(Secondary school) 진학률은 84%(우리나라 99%)로 더 낮은 수준이다.

메트로초에서도 올해 4명의 학생이 그만뒀다.

요니따 메트로초 교사는 "2학년 학생 3명은 누글레오 마을에 사는데, 그곳에서 그나마 가까운 학교가 우리 학교지만 그럼에도 학교에 오려면 여러 고개를 넘어야 한다. 왕복 2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매일 다니기엔 너무 어려 학교를 그만뒀다. 나머지 학생 1명은 학부모가 농사를 짓는데 일손이 부족하다며 학교를 그만두게 했다"고 답하며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동티모르 공과대학(DIT) 탐방 활동 중 자동차학부 실습실을 둘러보고 있는 메트로초 학생들. 윤정훈 기자


와글와글. 교육캠프 활동의 일환으로 수도 딜리에 있는 동티모르 공과대학(DIT)을 찾은 메트로초 학생들로 캠퍼스가 북적였다. 산속을 벗어난 적이 없는 아이들에겐 커다란 학교 건물도, 자동차학부 실습실도, 버거킹 햄버거도 모든 게 처음이다. 들떠있는 아이들과 달리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른들은 조금 우울해졌다. 초등학교도 간신히 다니고 있는 이 아이들에게 대학은 현실성 없는 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어른들 속도 모르고 콜라 속 얼음을 신기해하며 까르륵, 웃는 아이들이었다.

변상길 가정복지회 대표이사는 "가정복지회는 동티모르 안에서도 열악한 바뚜보루 지역의 아이들도 꿈을 향해 걸어갈 수 있도록 메트로초를 운영하고 있다"며 "이곳 아이들이 배움을 통해 동티모르를 이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동티모르 안에서도 열악한 바뚜보루 지역 아이들이 계속 꿈을 꿀 수 있도록 가정복지회에 도움의 손길을 전해주세요. 보내주신 소중한 성금은 메트로초 학교 건물 증축에 사용됩니다.

※동티모르 메트로초교 지원 성금 보내실 곳

대구은행 505-10-234725-0

예금주 : 가정복지회 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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