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美 인사들은 전쟁 걱정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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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15. 오전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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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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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오염수 2차 해방방류를 개시하는 5일 오전 일본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오염수 2차 해양투기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연합뉴스

전해 듣던 것보다 더 미국인들은 후쿠시마 오염처리수에 무관심했다. 일본 앞바다에 뿌려진 오염처리수가 해류를 타고 한국보다 미국에 먼저 간다는데도 그랬다. 몇 달째 오염처리수로 지지고 볶는 한국이 떠올라 허탈함이 밀려왔다.

최근 열흘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한미 교류 프로그램으로 미국에 있었다. 워싱턴DC에서 만난 에드 케이스 미 하원의원은 오염처리수에 대해 “과학적 증거를 살펴보면 위험은 최소화됐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지역구는 미 중부 옥수수밭 어디쯤이 아니라 태평양 한가운데서 수산업과 관광으로 먹고사는 하와이다. 하와이에도 오염처리수 방류 반대가 있지만 “한국만큼은 아니다”라고 했다.

미 전역에 방송하는 공영 라디오 NPR의 뉴스 에디터는 ‘왜 미국 미디어는 오염처리수 문제를 비중 있게 안 다루느냐’는 물음에 “다른 데는 그렇지만 우린 공영방송이라 한국에서 반대한 걸 보도했다”고 했다. 그런 답을 기대한 게 아닌데, 질문과 답이 따로 흘렀다. 지역지도 비슷했다. 하와이 최대 일간지 스타 애드버타이저의 편집국장은 오염처리수 보도는 어떻게 했는지 묻는 질문에 잠시 당황하더니 “솔직히 말하면 마우이 산불 때문에 신경 쓰지 못했다”고 했다. 그에게 한국은 마우이 산불이 나기 훨씬 전부터 오염처리수로 난리였고 제1당 대표는 방류를 막겠다며 밥을 안 먹기도 했다고 말해줄까 하다가 더 당황할 것 같아서 말았다.

오염처리수 대신, 미국 인사들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전혀 다른 주제를 줄곧 말했다. 전쟁 얘기였다. 어딜 가나 중국 얘기였고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충돌이 벌어졌을 때 한반도는 떠밀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들 했다. 미군 관계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아시아에서 오래 일했다는 인사는 미·중 충돌 시기에 대해 “10년 내엔 30%, 20년이면 40%, 30년이면 50% 이상”이라며 “결국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일본 재무장 얘기도 들었다. 한 인사는 “70년이 흘렀으니 일본이 이제 군사적으로 보통 국가가 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일본이 미 본토를 침공한 것도 아니라서 한국과는 생각의 차이가 있다”는 말을 한국 기자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했다.

한국 밖에서 듣는 우리 얘기는 낯설었다. 우리 동의도 구하지 않고 우리 운명에 대해 숫자 놀음을 하고 이러쿵저러쿵 쉽게 얘기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하고 불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세계 최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의 현실이고 실제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우리가 원해서 전쟁이 벌어졌던 적이 있긴 한가. 그런 얘기를 듣다가 한국에 돌아와 국회에서 벌어진 일들을 복기했다. 전쟁나도 남탓만 할건가, 숨이 갑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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