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원 45만 명 시대...그들은 왜 배달에 뛰어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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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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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업, 고용의 ‘윤활유’이자 ‘매트리스’로…시장이 만들어 낸 한국판 사회 안전망[스페셜 리포트]

한 배달원이 음식 배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쓰레기 폐기물 업체에서 일하는 성진혁(가명·45) 씨는 배달로 쏠쏠한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는 약 2년 전부터 평일 퇴근 시간인 6시가 되면 자신이 구입한 오토바이를 타고 바로 저녁 배달 일을 하기 시작했다. 성 씨는 “보통 평일에는 저녁 피크 타임에 2~3시간 정도 일하고 주말에는 하루 온종일 배달 일을 한다”며 “이를 통해 거둬들이는 수입은 월에 약 120만원 정도 된다”고 말했다.

회사 일도 고된 마당에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배달까지 해야 해 몸은 지치지만 중학생인 두 자녀를 생각하면 그는 배달 일을 멈출 수 없다. 성 씨는 “이렇게 번 돈은 모두 자녀들의 학원비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배달업이 한국 사회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신호를 무시하거나 차량 사이를 곡예하듯이 운전하는 일부 배달원 때문에 하루에도 수많은 교통사고가 일어난다. 배달원들을 두고 ‘도로 위의 무법자’라는 오명까지 덧씌워진 이유다. 하지만 ‘그림자’가 있으면 ‘빛’도 있는 법.

한편에서는 이런 배달업이 사회에 기여하는 순기능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배달은 누군가에게는 삶을 지탱하는 수단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직업을 찾지 못한 이들에게는 빠르고 쉽게 일자리를 얻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유튜브에는 공무원이나 대기업을 그만두고 배달에 나선 사람들, 배달로 투잡을 하는 일반 직장인의 스토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 일자리가 갖고 있는 불안정성과 안전의 문제가 있다는 점에는 이견을 달기 어렵다. 하지만 배달이 일부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고용 시장의 ‘윤활유’이자 ‘매트리스’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배달원 45만 명 시대의 풍경을 돌아봤다.
학교 선생님보다 많은 배달원
배달업이 고용 시장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는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통계청이 10월 18일 발표한 ‘2022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 조사, 취업자의 산업 및 직업별 특성’에서 가장 눈에 띈 부분은 배달원 수였다.

배달원은 우편·택배·음식 배달 종사자를 모두 아우르는 직업분류다. 올해 4월 기준 배달원 수는 총 45만 명으로 집계됐다. 통계청이 6개월 단위로 직업별 고용 조사 자료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3년 이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1년 전보다 6.2% 증가했고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상반기 34만3000명과 비교하면 10만 명 넘게 늘어났다. 상반기 직업별 취업자 순위에서도 14위를 차지했다. 그 수만 놓고 보면 학교 교사(42만2000명), 컴퓨터 시스템·소프트웨어 전문가(39만9000명)보다 많다.




더욱 눈길이 가는 부분은 실제 배달업 종사자 수는 더 많을 것이라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이번에 집계된 배달업 종사자에는 집계되지 않은 숫자가 있다.

성 씨처럼 배달업을 부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실제 배달원 수는 50만 명을 훌쩍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음식점 등에서 일하는 전체 식음료 종사자(51만9000명)보다 많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배달이 고용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역으로 부상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배달이 취업자 수 증가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KDI는 11월 3일 펴낸 ‘최근 취업자 수 증가세에 대한 평가 및 향후 전망’ 보고서에서도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도 한국이 최근 이례적인 고용 호조세를 기록 중인 것은 코로나19 사태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배달업 등 비대면 디지털 경제와 관련된 노동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KDI는 올해 취업자가 지난해와 비교해 약 79만1000명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취업자 수는 전년 대비 37만 명 증가했는데 올해는 무려 두 배 넘게 취업자 수가 급증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배달 일에 뛰어드는 것일까. 실제 배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나 들어봤다. 가장 큰 이유는 직장을 다니는 것보다 쏠쏠한 ‘수입’을 첫손에 꼽힌다. ‘노력한 만큼 통장에 돈이 찍힌다’는 것이 배달업의 가장 큰 강점이라는 것.

유통업계에 종사하다가 현재 배달로 전직한 신준기(가명·40) 씨는 “하는 일의 강도와 상관없이 일정한 월급을 받는 일반 회사와 달리 일한 만큼 벌 수 있는 직업이 배달”이라고 했다. 그도 한때는 회사에 소속된 직장인이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프랜차이즈 기업의 매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지점장에까지 올랐다. 그랬던 그가 배달 일에 처음 뛰어든 계기는 아이 때문이었다.

자녀가 생기고 들어가는 돈이 많아지면서 월급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부업으로 음식 배달을 뛰기 시작했다. 신 씨는 퇴근 후 매일 6시간 이상을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했다. 그런데 시간으로 계산해 보니 배달로 올리는 수입이 오히려 월급보다 더 많았다. 신 씨는 전직에 대해 고민했고 결국 안정적인 직장을 퇴사하기로 결정했다. 2019년부터 배달 일을 본업으로 선택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매일 아침 10시 반 정도에 나가 밤 12시까지 일하고 있는데 한 달에 700만원 가까이 벌고 있어요. 몸은 힘들지만 계속 직장을 다녔더라면 결코 만져볼 수 없는 돈이죠. 그 사이 아이도 두 명이나 더 태어났는데 현재 가족 다섯 명이 먹고살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돈을 법니다.” 신 씨는 이렇게 말하며 배달이라는 직업에 만족감을 보였다.

10년 넘게 우체국에서 집배원으로 일하며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을 했던 박기태(가명·42) 씨 역시 돈 때문에 배달 일을 선택했다. 그는 오토바이가 아닌 탑차를 구매해 매일 오전 5시께부터 11시 정도까지 일하며 월 600만원 넘게 번다.

집배원은 일이 많거나 적어도 매달 똑같은 월급을 받았다. 때로는 밤낮을 열심히 뛰어다녀도 그의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30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배달 일을 시작하며 그는 예전보다 두 배 넘는 돈을 벌고 있다. 박 씨는 “오히려 업무 강도는 예전보다 약해졌는데 더 많은 수입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통계청의 상반기 직업별 고용 조사에서도 노동자 4명 중 1명은 매달 월급이 200만원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왔는데 이에 비하면 배달은 고수익을 올리는 직업”이라고 했다. 통계청 조사에서는 배달원들의 평균 수입이 얼마인지는 따로 집계하지 않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평균 300만원 이상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첨단 기술도 배달원 증가에 기여”
빠르고 간편하게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것도 많은 이들이 자신의 직업으로 배달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다. 구직자들 사이에선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올 만큼 고용 시장 상황은 좋지 않다.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도 어렵다. 대기업은 차치하더라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도 자신의 출신 학교와 사회 경력 등이 담긴 자기 소개서를 제출하고 면접도 봐야 한다.

배달은 다르다. 배달의민족의 ‘배민 라이더스’, 쿠팡의 ‘쿠팡 플렉스’ 등 일반인들이 누구나 할 수 있는 배달만 봐도 알 수 있다. 서류와 면접 등의 일반적인 채용 절차도, 나이 제한도 없다.

오토바이 면허증이나 운전 면허증만 갖고 있으면 누구나 간단한 클릭 몇 번 만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취업을 준비하며 배달하고 있는 이동우(가명·29) 씨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해도 사회 경력 등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은데 배달은 이런 진입 장벽 없이 간단하게 일할 수 있어 편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시적 해고자들, 긴박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들의 브리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배달업의 또 다른 인기 요인은 바로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덜하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나이가 있는 구직자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2020년부터 배달 일을 하고 있는 우종석(가명·40) 씨는 사회 초년생 때부터 의류 사업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실패해 절망에 빠졌었다. 사업에 실패한 상황에서 일을 찾아야 하는데 나이가 있다 보니 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식당이나 커피숍 아르바이트도 하기 어려웠다고 그는 말했다.




우 씨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장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10~20대 초 직원들과 함께 일할 것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더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이때 주변 지인이 ‘배달 일을 시작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우 씨는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어 배달이 생계 유지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새로운 사업을 준비 중인 그는 하루 6시간 정도 배달을 한다. 일하고 싶을 때만 일하는 데 월에 약 250만원의 돈을 벌고 있다.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나름 만족하면서 재기를 준비 중”이라고 우 씨는 말했다.

기술의 발전 또한 배달원이 고용 시장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명규 평택대 물류대학원 교수는 “과거엔 배달 주문을 받으면 배달원들이 일일이 주문한 이들의 집을 찾아다녀야 했다”면서 “이제는 배달업에도 인공지능(AI) 등의 기술이 접목돼 배달원들에게 쉽고 빠르게 도착지를 알려주며 업무 강도를 낮춰 주고 있다”고 했다.

배달업계 일각에서는 소비자들이 집에 누워 클릭 몇 번만으로 주문한 상품을 받아 볼 수 있는 것 역시 배달업 종사자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배달업 종사자는 “우리가 없었다면 소비자들도 주문한 상품을 원하는 시간에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배달원들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이런 부분들이 하루빨리 개선되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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