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알짜 슬롯’ 49개나 내줬다…대한항공, 합병 위한 ‘힘겨운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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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6.26. 오후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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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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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 : 항공기가 특정 공항에 이착륙 할 수 있도록 배정받은 시간.


민주노총 운수노조 분석 결과
중국 9개 노선서 슬롯 30% 반납

해외 당국 승인마다 반납 수 늘어
남은 미국·EU 등 심사도 ‘고비’

“시너지 없이 손실 우려” 지적
대한항공 “국내서도 진입 가능”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의 기업결합 승인을 받기 위해 중국에 넘긴 슬롯이 49개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슬롯을 넘긴 만큼 두 항공사의 중국 운항 수가 줄어들어 합병을 해도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6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중국 경쟁당국인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SAMR)의 시정조치를 분석한 결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9개 중국 노선에서 총 49개 슬롯을 중국에 내주기로 했다. 슬롯은 항공기가 공항에서 이착륙하거나 이동하기 위해 배분받은 시간을 뜻한다. 항공사가 신규 노선에 취항하려면 먼저 슬롯을 확보해야 상대국 정부에 운항 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슬롯은 항공사의 주요 경쟁력이자 자산으로 통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2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승인하면서 중국 노선은 서울~장자제·시안·선전과 부산~베이징·칭다오 등 5개 노선만 경쟁 제한 우려가 있다고 봤다.

하지만 중국 경쟁당국의 판단은 달랐다. 해당 5개 노선에 더해 서울~베이징·상하이·창사·톈진 등 4개 노선도 경쟁 제한 우려가 있다며 시정조치를 요구했다. 해당 시정조치에 따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중국 노선에서 반납해야 할 슬롯은 총 49개에 달한다.

세부적으로 보면 서울~장자제 3개·시안 5개·선전 7개·창사 4개·베이징 7개·상하이 7개·톈진 3개, 부산~칭다오 7개·베이징 6개 등이다. 중국 9개 노선에서 갖고 있던 슬롯 165개 가운데 약 30%를 중국에 넘겨주는 셈이다. 두 항공사가 넘긴 49개 슬롯은 대부분 중국계 항공사가 운항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반납하는 슬롯은 중국에 넘기는 것이 아니며 신규 진입을 희망하는 항공사에 배분될 예정”이라며 “신규 진입을 희망하는 한국 저가 항공사들에도 배분될 수 있다”고 했다.

앞서 대한항공은 영국으로부터 기업결합 승인을 받으면서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런던 히스로 공항에 각각 갖고 있던 슬롯 10개, 7개 등 17개 중 7개를 영국 항공사인 버진애틀랜틱에 넘기기로 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해외 경쟁당국의 승인 절차를 밟을 때마다 반납하는 슬롯 수가 늘고 있다. 앞으로 남은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경쟁당국의 심사 과정에서 더 많은 슬롯을 내줄 가능성이 높다.

지난 5월 EU 경쟁당국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관련 중간심사보고서를 내면서 두 회사의 기업결합이 한국과 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 등 4개의 노선에서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따라 해당 노선의 추가 슬롯 반납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핵심 자산인 슬롯을 내주고 나면 기대하던 합병 시너지 효과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며 “아무런 실익 없이 갖고 있던 무형의 자산마저 해외로 넘기면서 합병을 진행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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