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알퍼의 영국통신] 英 징병제 다시 꺼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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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후 징병제 폐지한 英
러우전쟁에 재도입 논의 확산
국민 설득까지 어려움 클듯
권위주의 거부하는 청년층
애국심을 파시즘처럼 경계
조국 위해 칼 뽑는 시대 끝나




점점 악화돼 가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국의 확고한 지원은 많은 영국인으로 하여금 불편한 대화를 시작하게 만들었다. 지난 1월 영국 육군 총사령관 패트릭 샌더스는 훗날 러시아와 같은 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시민군을 창설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지구상 곳곳에서 대규모 전쟁이 장기적으로 이어지고 영국은 그 모든 전쟁에 관여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샌더스의 발언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더욱 부각시키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국 군대는 엉망이다. 2010년 10만명이 넘었던 영국 육군의 규모는 현재 7만3000명 정도로 줄었다.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과 달리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전쟁에 신물이 난 영국은 1960년 징병 제도를 폐지했다. 많은 영국인이 샌더스의 연설에서 징병제가 부활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총선을 얼마 앞둔 정부는 이에 대해 쓸모없는 발언이라며 징병제에 대한 염려를 일축했다. 그러나 판도라 상자의 뚜껑은 열렸고 모든 영국인은 징병제에 대해 우려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 모든 남성이 군 복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최고령층을 제외하고는 이곳에서 완전히 낯선 생각이다.

그리고 현재 영국에서 징병 제도가 과연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일단 요즘 젊은이들은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청년들만큼 건강하거나 체력이 좋지 못하다. 2020년 한 연구에 따르면 영국 10대의 33% 이상이 '과체중이나 비만'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언급하고 싶지 않은 문제, 바로 영국인들의 바닥난 애국심에 비해서는 미미한 문제다.

지난 몇 십 년간 영국인들은 애국심을 추악한 백인 민족주의나 파시즘과 동일시하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서울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돌아다닌다면 누군가에게 박수를 받을 일일지도 모르지만, 콘서트 무대에서 유니언 잭으로 몸을 감싼 영국 가수들은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인종차별을 이유로 비난을 받아왔다.

월드컵 기간 동안 영국 국기를 창문 밖에 걸어두는 것조차 젊은 층에게서 따가운 눈초리를 받을지도 모른다. 권위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회의는 영국 젊은 층에 일종의 종교와도 같다.

영국에서는 '애국적인 가치' 또한 대중에게 사악한 선전 문구로 들릴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이제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가능해 보인다. 왕과 조국을 위해 칼을 뽑으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전쟁터로 나가던 20세기는 끝났다.

1970년대에 태어난 내 세대조차도 군 복무를 강요하기는 힘들다. 우리는 학교에서 억지로 읽었던 윌프레드 오언의 전쟁시 섬뜩한 마지막 구절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친구여, 그대는 무모한 영광을 간절히 바라는 아이들에게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은 달콤하고 옳은 일이라는 오랜 거짓말에 뜨거운 열정을 담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네.'

[팀 알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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