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부장판사 “요즘 판사들 웬만하면 유력 인사 법정구속 안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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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05. 오전 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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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의 뉴스 읽기] 조국 ‘불구속 실형’ 논란



“조국 대표는 2심에서 실형이 나왔는데도 법정 구속이 안 돼 창당하고 활동합니다. 그런데 저는 1심 선고도 안 났고 무죄를 주장하며 싸우는데 활동을 못 하는 게 수긍이 안 됩니다.”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6일 재판부에 보석을 요청하면서 한 말이다. 법원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에게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해 1·2심 연속으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하면서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증거 인멸·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1심에서 무죄를 다투는 자신은 왜 풀어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픽=박상훈

송 전 대표는 그동안 앞뒤가 안 맞는 말을 많이 했지만 이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다 맞는 얘기도 아니지만 상식선에서 보면 다 틀린 말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법원은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며 송 전 대표의 보석 청구는 기각했다. 그는 여전히 불공평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법조계 인사들은 “애초의 문제는 서울고법이 2심에서 조국 대표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법정 구속을 하지 않은 데 있다”고 말한다. 이 사건 1심은 선고까지 3년 2개월, 2심은 1년이 걸렸다. 이렇게 오랜 기간 재판을 통해 재판부가 유죄 확신을 갖고 실형을 선고했다면 법정 구속하는 게 맞는다는 것이다. 사건 실체가 드러나기 전인 수사 단계의 구속과는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2심 재판부가 ‘방어권 보장’ 등을 이유로 법정 구속하지 않은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범죄 행위에 대한 사실 판단은 사실상 2심에서 끝난다. 최종심인 대법원 판결은 원칙적으로 2심 판단에 법리 위반이 있는지 등을 따지는 법률심이다. 피고인이 재판에 출석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무슨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2심 재판부가 조 대표를 법정 구속할 경우 예상되는 극렬 지지자들의 반발을 의식해 법정 구속을 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재판부로서도 고민이 있었겠지만 법정 구속을 안 한 것은 비겁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 생긴 것은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인 2021년 1월 법원행정처가 ‘인신구속사무의 처리에 관한 예규’를 개정한 것과 무관치 않다. 기존 예규는 ‘피고인에 대해 실형을 선고할 때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법정에서 피고인을 구속한다’고 돼 있었는데,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법정에서 피고인을 구속한다’로 바꾼 것이다. 개정 전엔 실형을 선고하면 ‘원칙상 법정 구속’이었는데, ‘예외적 구속’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픽=박상훈

대법원은 당시 “형사소송법상 구속영장 발부 기준에 따라 법정 구속 여부도 정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했다. 사실상 법정 구속도 수사 단계의 영장 발부 기준과 비슷해진 것이다. 형사소송법상 구속영장은 범죄가 어느 정도 소명되는 것을 전제로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도주·증거 인멸 우려가 있을 때 발부하게 돼 있다. 문제는 그 기준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로또 영장’이란 지적이 많았는데 법정 구속에도 같은 문제가 생긴 것이다. 결과적으로 법정 구속 여부를 정하는데 판사들에게 더 큰 재량을 주면서 기준도 모호해지고, 이전엔 법정 구속했을 사안도 잘 하지 않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예규 개정 전후의 사례를 비교해봐도 그런 경향이 드러난다. 개정 전인 2019년엔 여비서 성폭행 혐의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2심에서 3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같은 해 자신이 성추행한 여 검사에게 인사 보복을 한 혐의로 기소된 안태근 전 검사장도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반면 개정 후인 지난해 11월,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으로 기소된 송철호 전 울산시장, 황운하 의원은 1심에서 각각 징역 3년의 실형이 선고됐지만 법정 구속을 면했다. 함께 기소돼 징역 2년의 실형이 선고된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 권력과 경찰 조직을 이용해 선거 부정에 개입한 심각한 사건인데도 “도주와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법정 구속을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안 전 지사나 안 전 검사장이 이들보다 도주·증거 인멸 우려가 더 크다고 볼 이유는 딱히 없다. 무슨 차이인지 알기 어렵다. 더구나 법정 구속됐던 안 전 검사장은 나중에 무죄가 확정됐다.

이런 추세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사법연감을 보면 2015~2018년까지 1심 법정 구속 비율은 20% 후반대를 일정하게 유지했다. 2018년 기준으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다가 실형을 선고받은 4만1171명 중 법정 구속된 이는 1만2314명으로 29.9%였다. 그러나 2019년 이 비율은 27.8%로 감소한 뒤 대법원 예규가 개정된 2021년엔 24.07%로 떨어졌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최근 판사들이 법정 구속을 잘 하지 않는 추세인 것은 분명하다”며 “특히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 등 논란이 되는 인물이 피고인인 경우 판사들이 법정 구속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최근 조국 대표 등을 법정 구속하지 않은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정 구속 여부가 피고인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좌우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지난 3월 제주지법은 화살로 떠돌이 개를 쏜 40대 남성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지난 2월 광주지법은 위험 운전을 해 뒤따르던 차량의 사고를 유발한 사람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한 변호사는 “이들의 범죄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보다 무겁다고 할 수 없다”며 “이런 판단을 국민 법 감정이 용납하겠느냐”고 했다.

“2심서 실형 선고하면 ‘원칙적 구속’ 기준 세워야”

법정구속 기준 더 구체화해야

법정 구속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판사들 판단도 제각각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2017년 대선 때 인터넷 댓글 조작을 지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경수 전 경남지사 사건이다. 1심은 그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지만 2심은 같은 징역 2년을 선고하면서도 “도주 우려가 없다”며 구속하지 않았다. 그가 1심 선고 이후 77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에서 2심 재판을 받긴 했지만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실형을 선고하면 보통 1심보다 2심에서 법정 구속하는 일이 많다. 범죄 행위에 대한 사실 판단은 사실상 2심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는 그 반대였다. “대체 무슨 기준이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법조계 인사들은 법정 구속 기준을 더 구체화해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들쭉날쭉한 판단 기준이 형사 사법에 대한 신뢰를 해친다는 것이다. 한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적으로라도 2심에서 실형을 선고하면 원칙적으로 법정 구속하는 기준이나 관행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1심은 몰라도 적어도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이 끝나는 2심에서 실형을 선고하면 ‘원칙적 구속, 예외적 불구속’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대법원도 조국 대표 경우와 같은 ‘불구속 실형 사건’에 대해선 미루지 말고 최대한 신속하게 판결해야 한다”고 했다. 피고인이 구속된 사건은 1심 6개월, 2심 8개월, 3심 8개월 등으로 구속 기간 제한이 있지만 불구속 사건은 그런 제한이 없다. 하지만 실형을 선고한 취지를 살려 대법원도 신속하게 선고해야 제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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