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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아트홀 시리즈Q 주제극장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쾅 소리 한 번 없이 흐느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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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2022.07.08. 18:00112 읽음

안녕~ 오랜만에 영등포아트홀의 시리즈 Q 기획공연을 리뷰하러 돌아온 공연 뉴스레터 팀 From.21C(프리씨)야. 이번에 최근 연극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영등포아트홀 상주 극단 ‘배다’의 신작이 올라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공연장으로 달려갔어. 그곳에서 목격한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게!

프리씨가 만난 두 번째 시리즈Q 작품은 종말 문학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해변에서>를 무대화한 연극,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쾅 소리 한 번 없이 흐느낌으로>(이하 세.느.낌)이야. <세.느.낌>은 전쟁이 끝난 후, 방사능에 의해 북반구의 나라들이 하나씩 전멸하는 상황을 배경으로 얼마 남지 않은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남반구의 도시, 멜버른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이들을 서서히 조여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통해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지, 그 경계에서 우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돼.

© 영등포아트홀
네빌 슈트의 종말 문학, ‘해변에서’를 각색한 연극
영등포아트홀 기획공연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쾅 소리 한 번 없이 흐느낌으로>
시리즈Q 주제극장

공연기간 : 2022.06.30(목) ~ 2022.07.09(토)
공연장 : 영등포아트홀
관람연령 : 14세 이상
러닝타임 : 110분
원작 : 네빌 슈트
연출 : 장한새
출연 : 선종남, 박경주, 김호준, 김현, 문수아, 박신애, 안준모

ⓒ From.21C 촬영

시놉시스
1년간의 전쟁이 끝난 후 핵폭탄의 영향으로 북반구가 전멸한다.
방사능 낙진이 점점 남반구로 내려오고 있는 지금,
호주 멜버른에 6개월의 유예기간이 떨어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말의 공포에 지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상의 날을 살아낸다.
어느날, 시애틀에서 알 수 없는 무전신호가 잡히고,
잠수함 스콜피온은 희망을 갖고 바다로 떠난다.
스콜피온은 무엇을 싣고 돌아올 것인가?
여기, 이 보통의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우린 이번 <세.느.낌>의 집중 리포트를 맡은 발신인 스카치, 마티니, 압생트야! <세.느.낌>을 만나기 위해 영등포문화재단의 전용 극장 영등포아트홀로 달려가는 길, 곳곳에 펄럭이는 현수막을 볼 수 있었어. 그래서 더욱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공연장에 들어섰지!

ⓒ From.21C 촬영

티켓을 수령하기 위해 도착한 티켓 창구에는 <세느낌 WEEK EVENT> 안내가 부착되어 있었어. 운이 좋게도 프리씨가 관람한 날은 대사 스티커를 증정해주는 날! 공연을 보기 전에는 스티커로 제작된 대사를 보면서 이 문장엔 무슨 의미가 담겨있을까 추측해보기도 했는데, 역시 많은 대사 중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쾅 소리 한 번 없이 흐느낌으로’라는 대사가 가장 궁금하더라고. 이 대사는 어떤 순간에 나오는 걸까? 대사를 말하는 사람은 누굴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궁금증이 눈처럼 불어났어.

ⓒ From.21C 촬영

또 다른 기대 포인트는 바로 바로… 전 객석을 과감하게 무대 위로 올렸다는 점! 이전에 일부 객석을 무대에 올린 작품은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전 객석을 올린 작품은 처음이었거든.
실제로 공연장에 입장해 객석을 지나쳐 무대 위로 올라가 앉으니 기분이 색다르더라고. 공연을 자주 보러 다니는 사람이라도 대부분 관객으로서 공연장을 방문하기 때문에 직접 무대 위로 올라가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 500석 규모의 객석을 두고, 무대 위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서 바라본 시야는 분명히 일반적인 객석에서 볼 때와는 달랐어. 객석에서 무대를 올려다보던 때와 다르게 동일한 눈 높이, 가까운 거리에 마련된 무대는 실질적인 거리감을 확 줄여주는 걸 넘어 작품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지.
무대에는 관객이 착석할 의자 외에도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한 천장 기둥과 곳곳에 흩어져 있는 허름한 의자들이 눈에 띄었어. 전체적으로 작품의 주요 키워드인 ‘종말’과 잘 어울리는 분위기였지. 텅 빈 붉은 객석을 보며, 작품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마음이 들떴어.


#스포주의!
공연의 시작을 알리듯 점점 주변이 어두워지고, 멜버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작돼. 다가오는 죽음 속에서도 해군인 피터는 다시 바다에 나갈 준비를 하고, 아내 메리는 내년이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정원을 가꾸고 식물을 심어. 어린 딸이 말을 배우고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자신들을 상상하지. 매일 술로 하루를 보내는 메리의 동생, 모이라는 그런 메리를 도통 이해하지 못해. 삶과 죽음의 경계선 사이에서 상반된 삶을 살아가는 이 둘의 모습이 지극히 현실적이라 자연스레 우리도 그 도시의 일부가 될 수 있었어.

ⓒ 극단 배다 제공

그러던 어느 날, 피터가 속한 잠수함 스콜피온에 불규칙적인 무전신호가 잡혀 와. 전멸한 걸로 알려진 미국 시애틀로부터 말이야! 그 무전신호가 북반구 사람들의 생존을 알리는 신호라면... 남반구로 이동 중인 방사능이 점차 옅어지고 있다는 거고, 멜버른 사람들은 계속 살아갈 희망이 생기는 거야. 물론 그 신호가 오류로 판명되면 얼마 남지 않은 가족과의 시간이 더 줄어들 거란 생각에 망설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국엔 시애틀로 가기로 뜻을 모으지. 멜버른 사람들은 미국인 함장 드와이트를 비롯한 스콜피온의 승원들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게 돼.

오랜 항해 끝에 스콜피온은 미국 시애틀에 무사히 도착해. 이 장면에서 빈 관객석은 이들이 희망을 찾아온 도시 시애틀로 변하지. 과학자 존과 시애틀이 고향인 스웨인은 방호복을 입고 수색을 나서. 도시 사이사이를 오가는 그들의 시야엔 버려진 옷들, 잡지, 구두 등 인류의 흔적만 보일 뿐, 생명의 흔적은 목격하지 못해. 무대와 객석 사이의 거리감에 의해 마치 스콜피온 안에서 유리창으로 둘의 모습을 지켜보는 승원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더 몰입할 수 있었어. 지체되는 시간에 점점 불안해져 갔지만, 혹시라도 무전 송신기 근처에서 사람의 흔적이 발견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계속 두 사람을 지켜봤지.

ⓒ 극단 배다 제공

하지만 몇 개월간 꾸준히 보내진 무전신호가 사람이 아닌 바람과 빈 깡통에 의한 것이었음이 밝혀지면서 희망의 불은 꺼지고 말아. 이때 무대에는 보이지 않는 시공간의 벽이 세워져. 희망을 꿈꾸는 멜버른의 모습과 희망은 커녕 종말만을 발견한 승원들의 절망감을 동시에 보여주는 거야. 모이라의 콧노래 소리와 승원들의 처참한 표정이 대비되며, 이 참혹한 상황을 극대화해서 전달해. 희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런 건 없으니 종말을 준비하라는 말을 전해야 한다는 건 얼마나 끔찍한 기분일까? 한편으로는 승원들의 모습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더라고.
지난 2년여간 팬데믹 상황과 전쟁, 자연재해, 식량난 등 여러 혼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써 뛰어오르며 숨을 쉬는 나의 나약함이 보였거든. 이 장면 덕분에 무대 위의 인물들이 전하는 이야기가 현대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걸 느꼈어.

결국 스콜피온은 멜버른으로 돌아오고, 멜버른에는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안락하게 죽을 수 있는 약이 담긴 붉은 상자가 도시에 빠르게 퍼져 나가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최후를 준비해. 갑작스레 찾아온 죽음 앞에서 피터와 메리 가족은 서로를 의지하며 두려움을 견디고 존은 항상 도전해보고 싶었던 카 레이싱 대회에 나가. 수많은 부상자와 사상자들이 속출한 대회에서 존은 우승을 차지하지만, 그의 표정에선 어떠한 행복감과 성취감도 찾을 수 없었어. 항상 유쾌한 태도를 보이던 멜버른의 노인, 더글라스도 죽음 앞에서 괴로워하는 걸 볼 수 있었지. 특히 누구보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메리가 빨간 케이스를 열기로 선택하는 순간엔, 정말 삶과 죽음 앞에서 인간은 매우 작은 존재라는 걸 느꼈지. 갑작스러운 종말 앞에서 표현 방식은 달랐지만, 모든 인물이 강한 공포와 두려움을 경험하는 걸 조용히 지켜보게 되었어.

ⓒ From.21C 촬영

“이 마지막 만남의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듬어 찾고
그러면서도 애써 말을 피한다.
부어 오른 이 강가에 모여서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쾅 소리 한 번 없이 흐느낌으로”

다가온 종말의 시간, 무대 위에는 의자 대부분이 서로 엉켜져 있고, 배우들은 관객들 사이에 앉아 마지막 대사를 읊어. 텅빈 무대와 객석, 떠오르는 태양처럼 우리 곳곳을 비추는 조명까지. 고요하지만 묵직한 분위기 속에서 만약 내가 이들과 같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이게 된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생각하게 . 동시에 끊임없는 혼란이 휘몰아치는 현대에서 내가 살아온 삶의 태도에 대해 다시 점검하는 시간 갖게 됐지.

ⓒ From.21C 촬영

죽음을 앞두고 사람들은 거창한 소원을 빌지 않아. 그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소박한 시간, 맛있는 음식과 평화로운 대화 같은 것들을 간절하게 바라지. 결국, 인생 역전의 꿈이나 로또 당첨과 같은 행복도 좋지만, 매일의 소소한 일상이 가장 소중한 거 아닐까? 이런 깨달음 덕분에 앞으로는 ‘현재’의 소중함과 순간의 도전에 집중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어.
또 자신의 선택, 의지와 상관없이 다가온 죽음이 인간을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는 걸 보면서,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벌어지는 전쟁과 그 참혹함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 사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잖아? 만약 이들처럼 자연스럽지 않은 종말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남은 시간을 살아가야 할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공연장에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이 생각은 계속 이어졌지만 쉽게 답을 내리진 못했어. 아무래도 삶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는 것 같아.


영등포아트홀의 시리즈Q 기획공연은 공연마다 한 가지의 질문을 관객에게 묻고 있어. 올해 주제극장이 원형의 재발견을 다룬 만큼, 우리는 <세.느.낌>을 통해 다소 부정적이게 느껴졌던 ‘종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지. 아래에는 작품이 전하는 질문에 대한 발신인들의 답변을 담아봤어. 연극을 보고 온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생각해본 답변이랑 비교하며 읽어봐! 보지 않았더라도 질문을 통해 무대를 상상하며 고민해본다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야~

ⓒ From.21C 촬영

<세.느.낌>의 질문
Q. 지구멸망 D-1! 세상에 남길 마지막 한마디

스카치

“인간들의 끝없는 욕심을 떠받드느라 고생 많았다… 이젠 다 잊어버려…!
(근데 나 커피 한 잔 마시는 동안은 기다려주겠니)”

어차피 내가 멸망을 막을 수 없다면, 인간들의 욕심을 떠받들며 살아온 이 지구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어. 고생했으니 푹 쉬라고 말이야. 그리고 난 제일 좋아하는 커피를 빠르게 한잔 마시고 조용히 눈을 감을래. 커피만큼은 마지막까지도 포기하지 못할 거 같아. 세상이 나의 위로에 감동 받는다면, 커피 한잔 음미하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을까?

마티니
“안돼.. 하루만 더.. 아니, 한 시간 만이라도..!”

오늘보단 내일이 더 즐거울 거라고 굳게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라서, 지구 멸망이라는 믿기지 않는 현실에 부딪히면 멘탈이 붕괴될지도 몰라. 좀 더 맘 놓고 놀아볼 걸, 하는 후회와 함께 이대로 눈 감기는 영 억울할 거 같거든. 내가 사랑하는 무수히 많은 문화예술 콘텐츠만 생각해도 벌써 눈물이 앞을 가려. 가령 아직 보지 못한 시리즈의 엔딩 같은 거 말이지. 좋아, 만약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난 꿋꿋하게 한 편의 공연을 보겠어! 사랑하는 것들을 단 일 분이라도 더 즐기다가 세상을 떠날래~

압생트
(굉장히 큰 소리로) “고맙다-!! 세상아!”

딱히 멋있지는 않지만, 지금껏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준 지구, 그리고 소중한 추억을 잔뜩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이 한 마디가 생각났어. 혼자인 인간은 제약이 매우 많은 존재잖아. 비록 일면식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내가 입는 것, 먹는 것 등 나에게 도움을 준 분들이 참 많은 것 같아. 직접 가서 고마움을 표현하기에는 멸망 하루 전이라 시간이 부족하지만 내가 크게 사랑한다고 외치면, 혹시 몰라! 누군가 나의 모습을 SNS에 올려 이 마음이 전달될지도(ㅎㅎ)


영등포아트홀의 공연장상주단체, 극단 배다의 신작 <세.느.낌>과 함께한 프리씨의 두 번째 시리즈Q 리포트! 즐거웠어? 이번 공연을 보면서 기관의 적극적인 지원이 공연을 만드는 단체들에게 큰 힘이 된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어. 탄탄한 지원을 바탕으로 더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 말이야. 많은 감정을 일깨웠던 신작 <세.느.낌>에 이어, 8월에 찾아올 배다의 대표작 <붉은 낙엽>도 기대감을 갖고 기다려 보자! 이미 티켓은 열려 있다고~ 궁금하다면, CLICK!


공연의 미래를 꿈꾸다, From.2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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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문화재단의 금전적 지원을 받아 제작된 콘텐츠입니다.
시리즈Q 브랜딩 디자인 : 이스트스튜디오
 사진제공: 극단 배다, 사진촬영: 박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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