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테리우스의 귀환? 죄의식 느껴지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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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3.16. 오후 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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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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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마포문화재단 추억콘서트 '어떤가요'
쌍권총 쏘며 노래하던 심신
'내가 아는 한가지' 이덕진
'갈채' 최용준 '아스피린' 김세헌
심신 "겉모습은 낙엽처럼…
생각이나 영혼은 늙지 않아"
최용준 "철없는 건 여전하다"


원조 꽃미남 가수 김세헌 이덕진 심신 최용준(왼쪽부터)이 각자 어울리는 꽃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마포문화재단】


"이 나이에 '테리우스'라니 죄의식을 느껴요."

1990년대 훤칠한 외모로 인기를 끌며 '갈채' '아마도 그건' '전설의 사랑' 등을 부른 가수 최용준(54)이 장난스레 내뱉었다. 그러자 옆에 앉은 심신(55), 이덕진(55), 김세헌(51)도 "부담스럽다" "괜히 섭외를 수락했다"며 멋쩍은 티를 낸다. 이달 28일 이들이 함께 꾸밀 마포문화재단의 복고 기획 공연 '어떤가요 4탄'의 제목이 '테리우스 스페셜'인 걸 섭외된 후에야 알았다는 거다. 물론 1990·2000년대 가요계 히트곡을 부르며 여심을 저격했던 이들의 화려한 전성기와 여전한 동안 외모를 생각하면 지나친 겸손이다.

'어떤가요'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와 곡을 서울 마포아트센터 무대에 올리는 공연으로, 40대 이상 중장년층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앞서 세 차례 공연을 통해 이정봉·이치현·김완선·박남정 등이 관객과 만났다. 이번엔 원조 꽃미남 가수로 불리는 4인방이 관객들과 함께 1990년대로 가는 '음악 타임머신'을 탄다.

합동 공연을 앞두고 연습을 위해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의 한 지하 연습실에 모인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가죽재킷으로 멋을 냈다. 촬영 소품으로 준비된 꽃과는 데면데면하면서도 선글라스는 꼭 끼고 있자니 카리스마 로커의 모습도 선연하다. 다만 누군가 "예전엔 곧 죽어도 원키를 고집했는데 이젠 슬쩍 반키를 내려야 할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자 다른 이는 "그땐 그랬지"라며 맞장구를 친다. 인기 절정, 가창 절정의 시기로부터 30년 가까운 시간을 거쳐온 이들 사이에 동지애마저 느껴진 순간이었다.

1990년대는 이들의 대표곡만 봐도 우리나라 가요계가 꽃피운 시기다. 심신이 '쌍권총 춤'을 추며 부른 댄스곡 '오직 하나뿐인 그대', 이덕진의 허스키한 음색과 탄탄한 고음이 인상적인 록발라드 '내가 아는 한가지', 록밴드 걸과 이브를 거친 보컬 김세헌이 부른 '아스피린' '너 그럴 때면' 등. 종종 방송을 통해 소환되거나 리메이크되면서 세대를 뛰어넘어 익숙한 명곡들이다.

1990년대 전성기 시절 심신 이덕진 김세헌 최용준(왼쪽부터 시계방향).


김세헌은 '비주얼 록'을 표방하며 강렬한 빨간색 염색 머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오랜만에 서는 무대라 공연을 준비하면서 두 달 만에 12㎏을 감량했다"며 "근데 오늘 보니 형님들은 옛 모습 그대로다"고 혀를 내둘렀다. "제가 1995년에 데뷔했을 때 형님들은 이미 1989~1992년에 데뷔해 톱스타였죠. 돌이켜봐도 그때가 황금기였어요. 음악 스타일도 풍성하고, 멜로디와 가사는 끝내주고, 편곡도 극적이라 요즘도 그때 노래만 찾아 들어요."

다만 신인 시절에 출연했던 방송은 '하고 싶은 건 못하고, 하기 싫은 건 해야 하는' 일투성이였다. 심신이 '오직 하나뿐인 그대'를 부르며 선글라스를 쓰고 카메라를 향해 삿대질하듯 강렬하게 손가락을 뻗는 건 그의 대표 퍼포먼스지만, 어떤 방송에선 "너무 건방져 보인다"며 선글라스를 벗게 했다. 헤비메탈 밴드를 하다가 데뷔한 김세헌도 "길었던 머리를 방송 전날 잘랐던 기억이 난다"며 "록은 항상 억압받는 장르였다"고 회상했다. 시장에 먹히는 음악과 하고 싶은 음악 사이의 괴리, 아이돌·댄스 위주의 음악시장 재편 등 이들도 서서히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져 간 게 사실이다. 마음은 여전히 록 밴드 사운드에 맞춰 무대를 누비던 전성기 시절처럼 자유롭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빠르게 지나간 것만 같다"고 모두 입을 모았다. 심신이 "겉모습은 낙엽처럼 열화돼도 생각이나 영혼은 늙지 않는 것 같다"고 하자, 최용준은 "철없는 건 여전하다"고 웃어 보였다.

이들 사이에선 여전히 음악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깊은 유대가 있다. 이덕진은 "언젠가 다시 록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헤비메탈 밴드를 꾸려 활동했지만, 유행이 트로트 열풍으로 넘어가니 맥이 빠지더라"며 "계속 음악을 해야 하나 비관적인 생각도 든다. 나이 50 넘어서도 계속 음악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존경한다"고도 토로했다.

팬데믹으로 작은 공연 기회마저 뚝 끊긴 기간은 더 견디기 어려웠다. 그런 만큼 이번 '어떤가요' 공연은 추억에 대한 헌사를 넘어 음악에 대한 절실함이 앞서는 뜻깊은 기회다. 김세헌은 "코로나로 공연이 취소되고 2년 넘게 무대에 서지 못했다"며 "'이제는 음악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섭외 연락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결혼 후 두 아이까지 건사해야 하는 가장인데, 음악으로 돈을 못 버니 편집 일을 배워 따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고. 다만 그는 "여유가 생기니까 다시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새로운 장르의 밴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하고 있다"며 눈을 빛냈다.

최용준과 심신도 크고 작은 무대에 서며 관객과 만날 계획이다. 새로운 음악도 이따금 녹음하고 있다. 최용준은 "올해 전국을 돌면서 공연을 하고, 연말엔 단독 콘서트를 열어 관객석 매진시키는 게 목표"라고 했다. 심신도 "계속 내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을 일로 하면서 6년 정도 무명 시절을 견뎠어요. 높았던 때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지만, 무명에 비하면 지금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가수로서 활동하니까 훨씬 낫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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