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세권 된다” 몰아친 투기바람…외지인, 황산리 논밭 97%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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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5.03. 오전 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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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역 개발권’ 투기밭 된 황산리
농촌 마을에 기획부동산 10여곳 활개
논밭 매수자 97%가 외지인
“누가 농사? 땅 차지하려고 사지”
4월27일 평택시 안중읍 송담리의 안중역 공사 현장 모습.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모내기를 앞둔 논에는 물이 찰랑찰랑 담겨 있다. 갈아엎은 밭에는 고구마가 파종을 기다리고 있다.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황산리는 특별할 것 없는 농촌 마을이다. 여느 농촌 마을처럼 폐가가 즐비하고, 숨바꼭질하듯 사람 구경하기 쉽지 않다. 대신 어림잡아 10곳을 훌쩍 넘는 부동산이 들어서 있다. 길가에는 ‘귀한 토지 매물 모십니다’라는 펼침막이 나부낀다. 이곳에서 황산리는 ‘역세권’으로 불린다. 바로 옆 안중읍 송담리 벌판에 2022년 말 개통할 서해선 복선전철 안중역이 공사 중이기 때문이다.

<한겨레21>이 분석한 경기도 등기 데이터(2017년 5월부터 2021년 3월까지 경기도 전체 토지 거래 대법원 등기정보)를 보면, 지난 3년10개월간 평택 농지는 2만8162건 매매거래됐다. 이 중 매수자가 평택시민인 경우는 4443건(15.8%)밖에 안 된다. 서울시민이 매수한 거래가 8111건(28.8%)으로 2배가량 많다. 매수한 서울시민 거주지를 분석해보면 강남구(923건·11.4%)가 가장 많고, 송파구(760건·9.4%), 서초구(608건·7.5%), 관악구(446건·5.5%) 순이었다.

농지 근처에 살지 않는 땅주인이더라도 멀리서 와서 농사지을 수 있으므로 평택시로 가서 농민들에게 현지 사정을 직접 물었다. 외지인 매수 비율로 경기도 최상위권인 현덕면 황산리(97%)와 인광리(96.7%), 도대리(96.5%), 안중읍 대반리(96.4%)와 삼정리(92.8%) 등을 돌아다니며 농민 10여명을 인터뷰했다.

“솔직히 말해서 농사지으려고 사나, 땅 차지하려고 사지.” 60년을 황산리에서 산 주민 박아무개(82·여)씨는 외지인이 논밭을 사간 뒤에도 농사는 계속 동네 사람이 짓는다고 말했다. 옆마을 인광리 성광교회 최충일 목사도 “전부 동네 주민이 농사짓는다”고 했다. 도대리, 대반리, 삼정리에서도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됐다. 삼정리 주민 이도경(57)씨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농사가 얼마나 힘들고 수익이 안 나는데, 외지인이 누가 와서 농사를 지어요. 취미로 텃밭 하는 거면 모를까.”

외지인이 농지를 사는 원인이자 결과는 땅값 상승이다. 개별공시지가 기준 황산리 토지 평균가격은 2000년 1㎡당 1만1492원에서 2020년 8만840원으로 20년 만에 무려 7배 넘게 뛰었다. 황해경제자유구역, 평택호 관광단지, 화양지구도시개발 등 현덕면 주변에 불어닥친 개발 바람이 고루 영향을 끼쳤겠지만, 그중에서도 안중역 개발의 영향이 컸다. 2022년 말 안중역이 완공되면 평택시가 역세권 개발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안중역이 들어서는 황산리 땅을 사려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겨레21>은 황산1~3리 중 1리에 속하는 농지 412개 필지의 등기부등본을 떼서 소유권을 살펴봤다. 서해선 철로 설치로 정부·지방자치단체에 수용된 174개 필지를 제외하고, 238개 필지 중 평택시민이 소유한 필지는 87개(36.6%)에 그쳤다. 나머지는 외지인 소유 106개(44.5%), 평택농장 소유 37개(15.5%), 외지인·평택시민 공유 8개(3.4%)였다. 평택농장은 본점이 황산리에 있지만 소유자가 대를 이어 서울 강남구에 살고 있다. 사실상 외지인 땅인 셈이다. 종합하면 외지인 소유 필지가 143개(60.1%)에 이른다. 그리고 등기부등본을 보면 황산리에 기획부동산이 활개 친 흔적이 역력하다. 소유자가 10명 이상인 필지가 51개(21.4%)에 달한다.

면적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외지인 소유 비율이 더 높아진다. 전체 59만4720㎡ 중 국공유 11만8596㎡를 제외하고 47만6124㎡를 살펴봤다. 평택시민이 소유한 땅은 15만4328㎡(32.4%)에 불과했다. 서울시민 소유 면적이 13만6281㎡(28.6%)였고, 평택농장 10만535㎡(21.2%), 서울 외 전국 8만4979㎡(17.8%)가 뒤를 이었다. 종합하면 외지인 소유 면적이 황산1리 농지의 67.6%였다. 황산리 땅은 이미 황산리 사람의 손을 떠났다. 눈에 띄는 점은 하나 더 있었다. 서울시민 소유 면적 중에서도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구민 소유 면적이 6만4457㎡로 절반 가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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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값 상승은 농촌 소멸을 가속한다. 실제 농사지으려는 사람이 농촌에 땅을 사서 들어올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인광리 주민 ㄱ(70대 후반 여성)씨는 외지인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옛날에는 동네 사람들이 한가족처럼 살았는데, 노인들은 다 죽고 자식들은 다 팔고 나가고, 이제 이 동네는 없어질 거 같아.”

평택의 농촌 마을 주민들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을 어떻게 봤을까. 인광리 최충일 목사는 헛웃음을 지으며 “전국의 농촌이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여기도 안중역 들어서면서 개발 분위기 있으니까 외지인들이 지분 쪼개서 산 다음에 쓸데없이 비닐하우스 올리고, 필요 없는 나무 심고, 논에다 흙 뿌려서 보상 많이 받는 밭으로 무단 변경하고… 전국적으로 다 그럴 거예요.” 도대리 ㄴ씨는 엘에이치 직원이나, 황산리·도대리 땅을 사들이는 외지인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는 투로 말했다. “투기니 아니니 하지만, 그 사람들은 사실 다 투기잖아요.”

좀더 자세한 내용은 <한겨레21> 제1361호 ‘경기도 농지, 셋에 둘은 외지인이 샀다’에서 볼 수 있다.

변지민 이정규 <한겨레21>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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