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서 유럽도 유턴… 한국이 ‘세계 무탄소 연합’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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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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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할 미래, 무탄소 에너지] ① 재조명받는 원자력
게티이미지뱅크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연장하는 것은 청정 에너지원을 대규모로 확보하기 위한 가장 저렴한 방법입니다.”

최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원자력 정상회의’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기후위기 속 원전의 필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EU 의장국인 벨기에 정부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공동 개최한 이번 회의는 탈(脫)원전 기조를 이끌었던 유럽의 ‘원전 회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당시 한국 미국 중국 프랑스 영국 등 34개국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의 ‘에너지 잠재력’을 완전히 깨워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원전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인식이 달라지며 한국이 주도하고 있는 ‘무탄소 에너지(Carbone Free Energy·CFE) 이니셔티브’도 힘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 정부 들어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에너지 믹스’를 추진해 온 한국에 새로운 무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에너지 대소비 시대, 원자력 재조명


유럽 등 국제사회가 원전에 눈을 돌린 건 재생에너지만으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선 합의문에 처음으로 원전, 수소,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기술 등이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명시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안보 위기, 인공지능(AI)·반도체 성장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도 각국의 정책 변화를 불렀다. 원전은 가격 변동성이 낮고, 기후 환경의 영향 없이 지속해서 전력을 공급하는 이점이 있다. ‘탈탄소’뿐만 아니라 ‘안정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원전이 미래 에너지로 주목받는 이유다.

미국은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이후 44년 만인 지난해 신규 원전 가동에 들어갔다. 영국과 프랑스는 2050년까지 원전 8기를 새로 짓기로 했다. 일본 독일 벨기에 스위스 등 기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한 사례도 다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 각국이 저탄소 에너지원으로 전환을 가속하면서 내년 원자력 발전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탄소중립·경제성장 ‘두 마리 토끼’


세계 원전 발전설비 5위인 한국은 에너지 공급 체계에서 원전의 역할이 매우 큰 나라다. 지난해 국내 발전량 중 원전 비중은 30.68%,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9.64%로 나타났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36년 발전량의 원전 비중이 34.6%,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30.6%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관건은 미래 전력 수요다. 정부는 반도체·이차전지·미래차 등 첨단산업에 민간투자를 강화하고 용인 등 7개 지역에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를 조성할 계획인데, 이중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만 2050년 기준 10GW 이상이다. 현재 수도권 전력 수요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AI산업의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도 만만치 않다. 2022년 기준 국내의 147개 데이터센터 전력수요는 약 1.7GW인데, 2029년까지 새로 설치되는 데이터센터는 732개에 이른다. 신규 설비의 전력 수요는 약 49GW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전기차 보급 확산, 그린수소 생산 등 탄소중립을 위한 부문별 전기화 추세도 이어지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단가가 저렴하고 공급 안정성이 높은 원전이 꼭 필요하다는 게 정부 시각이다. 온실가스 감축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선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상호보완적 활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난제 풀어야

정부는 지난해 COP28에서 국제 캠페인 ‘CFE 이니셔티브’를 제안하고 원전, 수소 등 무탄소 기술 활용·확산을 강조했다. 재생에너지만을 인정하는 ‘RE 100’과 달리 ‘CFE 이니셔티브’는 탄소중립을 위한 다양한 무탄소 에너지를 포괄한다. 정부는 올해를 CFE 이니셔티브 확산 원년으로 삼고, 기업의 무탄소 에너지 활용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인증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이다.

동시에 한국은 2030년 초 한국형 소형모듈원자로(SMR) 상용화를 목표로 개발사업도 진행 중이다. 발전출력이 300MW 이하인 SMR은 대형 원전보다 건설 기간이 짧고 안정성은 더 높다. 수소·담수 생산, 지역난방, 우주탐사 등에 활용할 수 있어 세계가 앞다퉈 SMR 개발에 뛰어든 상황이다. 김한곤 혁신형 SMR 기술개발사업단장은 31일 “SMR 은 부지 제한이 없고 출력 유연성이 좋아서 재생에너지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며 “어느 국가가 먼저 상용화에 성공할 것인가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

다만 원전 사용으로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 문제는 SMR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여전히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하는 방폐장이 없고, 임시 저장시설에 쌓여있는 사용후핵연료는 2030년부터 포화상태에 이른다.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은 다음 달 말 21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정재학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장은 “이미 발생한 폐기물은 언젠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고 수년간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도 이뤄졌다”며 “영구 처분을 위한 부지 선정과 시설 건설에는 추가로 수십 년이 걸리는 만큼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법안 통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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