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재용 전체 무죄, 국가 경제만 피해 끼친 反기업 ‘적폐 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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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2.06. 오전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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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부당 합병, 회계 부정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심 재판에서 모든 혐의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회장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최소 비용으로 경영권을 승계할 목적으로 각종 부정 거래와 시세 조종, 회계 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로 2020년 기소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회장의 혐의 19건 모두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김종중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도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애당초 검찰의 기소부터가 무리였다. 2020년 6월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이 회장을 불기소하고 수사를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범죄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검찰이 청구한 이 회장 구속 영장도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그러나 검찰은 이를 무시하고 임직원 110여 명을 430차례 소환 조사하고 50여 차례 압수 수색하는 등 전방위 수사를 벌여 기소를 강행했다. 이 수사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때 시작됐지만 실제 수사를 본격화하고 관련자들을 기소한 것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심복이던 이성윤 서울지검장이 검찰을 장악했을 때였다. 문 정부의 적폐 몰이와 반기업 풍조가 검찰의 무리한 기소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핵심 쟁점인 불법 이익 혐의는 처음부터 논란이었다. 검찰은 이 회장의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 가치를 과다하게 산정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기소했지만 재판부는 “합병 비율이 불공정하다고 볼 증거가 없다” “합병이 주주들에게 손해를 줄 의도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제일모직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를 분식했다는 혐의도 “고의가 있다거나 회계 기준을 위반했다고 인정하기 힘들다”고 했다. 검찰의 기소 핵심 내용이 전면 부인당한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총수를 3년 5개월 동안 형사 피의자로 옭아맨 사건의 결말이 이토록 허망하다. 이런 일로 한국 최대 기업의 발을 이토록 오래 묶은 것이다.

이 회장은 2016년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돼 1년 반 이상 구속 수감됐다가 풀려난 뒤 또 이 사건에 연루돼 무려 9년째 사법적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국정 농단 사건도 대통령에게 ‘묵시적 청탁’을 했다는 황당한 혐의였다. 한국에서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기업인이 누가 있나. 어쩔 수 없이 대통령 요구를 들어주면 ‘묵시적 청탁’이라고 처벌한다. 이 회장은 2022년 광복절 사면으로 복권된 후에도 매주 1~2회씩 경영권 승계 사건 재판에 출석해야 했고, 해외 출장을 가려면 일일이 재판부 허가를 받아야 했다. 지난 2022년 바이든 미 대통령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을 때도 재판 일정과 겹쳐 참석하지 못할 뻔한 일까지 있었다. 국가를 대표하는 간판 기업을 이렇게 괴롭히고 발목 잡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검찰의 과잉 수사가 삼성에 사법 리스크를 안긴 사이 미국 애플, 대만 TSMC 등 외국 경쟁사들은 공격적 투자로 삼성의 시장을 잠식해 갔다. 스마트폰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고 차세대 먹거리인 시스템 반도체는 1위와 격차가 더 벌어졌다. 주요 전략적 의사 결정을 해야 할 기업 총수의 발이 묶인 탓에 글로벌 IT 산업이 활발한 합종연횡으로 재편되는 동안에도 삼성은 차세대 성장 동력 확충을 위한 인수 합병을 제대로 성사시키지 못했다. 국가 전체 수출의 20%를 담당하는 대표 기업 총수를 피의자로 붙잡아둔 과잉 수사로 피해를 본 것은 결국 국가 경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 일각의 반기업 풍조, 일부 검사들의 비뚤어진 공명심과 수사 방식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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