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극우 지지자들 사이 퍼져…한·독 전문가와 시민단체 반발
“저널리즘 기본 위반, 국내 나치 부활시킬 수도”
독일 공영방송 ARD와 ZDF가 온라인 웹사이트 피닉스를 통해 '인사이드 코리아-중국과 북한의 그늘에 가려진 국가 위기'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공개한 직후 독일 전문가들과 한국 시민사회에서 비판에 휩싸였다. 해당 다큐멘터리는 독일 현지시간 기준 6일 오전 ARD와 ZDF에 방영을 예정하고 있다.
28분여 길이의 다큐멘터리는 윤 대통령이 일으킨 12.3 내란사태를 옹호하는 극우 인사들의 주장을 주되게 실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의 담화문 영상을 수차례 삽입하고, 전광훈 목사와 극우 집회 무대에 서고 있는 우아무개 극우 유튜버, 극우 집회 참가자들, 부정선거·공산주의 카르텔 음모론을 주장하는 인사들 인터뷰를 실었다. 또 펜앤드마이크 여론조사를 인용해 '국민의 극소한 다수가 윤 대통령을 지지한다'며 '특히 젊은 사람들이 윤 대통령 탄핵과 체포에 반대한다'고 주장하고 언론보도로 아시아투데이 기사를 인용했다. 반면 비상계엄 선포를 비판하는 시민이나 교수를 인터뷰한 대목은 3분 미만이었다.
제작진이 내레이션을 통해 직접 윤 대통령을 옹호하거나 국회 침탈 등 위헌적 행위를 감싸는 대목도 있다. 다큐멘터리는 계엄군 국회 투입을 두고 '폭력적 충돌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 측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부인하는 주장을 반박 없이 그대로 실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헌법에 반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군인과 경찰을 동원해 국회의원과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을 체포 구금하려 했고, 헌법기관을 무력화시키는 폭동을 모의한 혐의를 받는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5일 페이스북에서 "충격적이게도 정말로 일방적으로 윤석열과 그 지지자들, 극우주의자들의 주장을 보도한 프로"라며 "ARD와 ZDF는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을 파괴하려 한 군사쿠데타를 정당화하고 한국의 국회,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기관들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보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한국인들이 중국, 북한 정부의 영향 하에 있는 듯이 보도함으로써 심대하게 명예를 실추시킨 데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독일 뒤스부르크-에센대 정치학과의 하네스 모슬러(강미노) 교수도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다큐멘터리는 윤 대통령의 입장을 거의 전적으로 따르는 방식으로 서술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거의 제시되지 않는다"며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외세의 위협으로 인해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의 논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서술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시청자들은 마치 젊은 세대 대부분이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는 실제 한국 사회의 여론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는 편향된 시각"이라고 했다.
모슬러 교수는 다큐의 문제점을 △편향적 인터뷰 △중국과 북한 공산주의 영향 강조 △계엄령의 정당화 및 미화 △부정선거 음모론 부각 △사법부 불신 조장 △언론과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한 왜곡 △윤 대통령을 한국 민주주의 수호자로 묘사 등으로 요약한 뒤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하며, 이 다큐멘터리가 저널리즘의 기준을 준수했는지 면밀히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모슬러 교수는 ARD 측에 이 같은 항의 서한을 담은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21조넷은 "이 다큐멘터리는 한국 국민 다수가 허위 사실이며 망상으로 판단하는 일부 극우 세력의 주장을 압도적인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며 "주요 취재원 또한 극우 인사의 비중이 압도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조차 저버렸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 다큐멘터리가 유럽의 대표적인 공영방송인 두 방송사에서 취재, 제작, 편성했다는 사실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21조넷은 "이 프로그램은 한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극우 세력의 폭력에 국제사회가 정당성을 부여할 선전 수단으로 쓰일 것이다. 이러한 효과로 독일 역사에서 돌이킬 수 없는 20세기 나치즘이 21세기 한국에서 부활할 수도 있다"며 "다큐멘터리 제작진 뿐 아니라 두 공영방송사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