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받으라는건지"…美반도체 보조금 기준에 삼성·SK '당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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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3.02. 오후 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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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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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365조6800억 원 규모의 반도체 산업 지원용 '반도체 과학법'에 서명을 하는 모습/사진=AFP, 뉴스1

미국 정부가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의 생산 지원금 지급을 위한 심사 기준을 발표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갚은 고민에 빠졌다. 미국이 국가안보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며 초과이익 공유 등 민간 기업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까다로운 조건들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이 조건대로라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에서 반도체 생산을 하고 어떤 기준을 넘어선 이익을 내면 그걸 미국 정부와 나눠야 한다. 보안이 중요한 반도체공장의 문도 언제든 열어 보여줘야 한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생산을 국가안보와 연결지으면서, 미국의 지원금을 받은 기업이 중국 등 우려국과 공동 연구 등을 할 경우 돈을 모두 뱉어내야 한다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도 분명히했다. 사실상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하라는 압박을 한 셈이어서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 국내 기업들로선 골머리를 앓게됐다.

미국 상무부가 보조금 신청에 따른 심사 기준을 밝힌 28일(현지시간) 바로 다음날인 1일, 국내 반도체 업계는 기준이 생각보다 과하다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은 세부 조건을 면밀히 해석하고 검토한 뒤 보조금 신청에 나설지 말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미국 정부가 반도체 공급망 확대에 더불어 세금 낭비에 대한 자국 국민들의 우려 여론까지 잠재우기 위해 다소 과한 욕심을 부렸다고 분석했다. 초과이익 공유를 비롯, △지원금을 배당금 지급과 자사주 매입에 사용해선 안되는 점 △국방부 등 국가안보기관이 미국 내에서 생산한 첨단 반도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점 등이 논란을 일으킨 조건들이다. 뉴욕타임스도 이를 두고 "새롭게 투자하려는 기업들에 과도한 부담을 주면서 오히려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려는 프로그램 목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초과이익 공유와 관련, '초과이익'에 대한 정확한 기준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미 상무부에 보조금을 신청하려는 기업들은 재무 계획서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 초과이익 기준 설정을 위한 협상 자체로 기업들은 경영 압박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주는 보조금만으로 공장을 짓는게 아니지않느냐"며 "기업이 직접 투자한 것도 있을텐데, 그러한 것을 무시하고 이익을 내면 이를 나누라니, 보조금을 받으라는건지 말라는건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이익 전망치 설정 등 미국 정부가 불가피한 조건을 내걸면서 민간 기업들을 과도하게 간섭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미국의 국가안보기관이 첨단반도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두고서도 기업들은 예민해하는 상황이다. '접근권'을 군사용 반도체에 대한 우선권에서 더 나아가 아예 반도체 공장을 공개하라는 요구로 보는 해석까지 나왔다. 국내 기업 관계자는 "공장을 보겠다는 것은 곧 설계를 보겠다는 것인데 말이 안되는 소리"라며 "관련 지침 해석을 두고 미국 정부와 협상을 계속해야 할 듯 싶다. 해석에 따라 지원금 신청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입장이 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가드레일 조항은 미국과 중국 사이 외교 파장까지 가져올 수 있는 탓에 국내 기업들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보조금 수령 자체가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견제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몸을 사리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다. 또 중국은 국내 기업들의 최대 반도체 수출 시장이다.

국내 기업들은 본격적인 신청서 제출 기간 전까지 지급 조건을 샅샅이 해석해 최대한 기업에 유리한 쪽으로 끌고 오겠다는 입장이다. 상무부가 신청 기준을 모두 만족해야만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고 밝힌 것이 아니라 지급에 대한 우선순위를 주겠다고 한 것인만큼, 신청 과정에서 수차례 논의하며 협상하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민간 기업들을 직접 들여다보겠다고 한 것은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이 부분은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라면서도 "큰 금액을 아예 안받는다는 것도 바보같은 일"이라며 면밀한 검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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