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망국으로 가는 길은 거짓말로 포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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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4.09. 오후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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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동산 정책 실패 감춘
文 정부의 통계조작 뉴스 보며
폴란드의 사례가 떠올랐다
현실과 이데올로기 충돌하면
잘못이 현실에 있다는 건가
공산당 정권은 거짓말 달고 살아
조작된 통계, 언젠간 부메랑



폴란드 총리 마테우스 모라비에츠키(가운데)가 2일 폴란드 남동부 미엘레츠에서 열린 폴란드 항공사 직원들과 여당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1990년 시장경제를 향해 첫발을 뗀 폴란드의 경제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420억 달러에 달하는 외채로 IMF의 구제 금융을 받아야 했고, 물가상승률은 700%에 육박했다. 실업률이 치솟고 빈곤층의 처지는 날로 나빠졌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개혁의 무거운 짐을 떠맡은 것은 첫 민주 정부의 부총리이자 재무장관 레셰크 발체로비츠였다.

발체로비츠 계획이라 불리는 그의 개혁은 오늘날 폴란드 경제의 성공 신화의 원동력이 됐다. 1989년부터 2018년까지 폴란드의 국내총생산은 826.96% 성장해 아일랜드를 제치고 유럽에서 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폴란드는 호주와 더불어 30년 가까이 경제가 한 번도 뒷걸음질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였다.

사회주의가 남긴 만신창이의 경제를 물려받았지만, 실업률을 4% 이하로 묶어두고 꾸준히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인 폴란드 경제의 성공은 ‘비스와강의 기적’이라 부를 만큼 경이적이다. 유럽연합의 골칫거리인 정치와 비교하면 경제의 성공은 더 두드러진다.

발체로비츠의 개혁이 폴란드 경제의 성공 비결이라는 데에는 국내외의 거의 모든 경제학자가 동의한다.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십 수 개의 유수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데서도 경제학자 발체로비츠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잘 드러난다.

그런데 정작 당시에는 그의 실험에 대한 회의적 시선이 많았고 비판도 거셌다. 시장경제에 익숙하지도 않고 적응하기도 힘든 기성세대의 불만이 특히 컸다. 가난해도 안정된 삶을 떠나 요동치는 시장의 흐름에 불안하게 의탁했던 일반 사람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1990년대 내내 폴란드 사회에 대한 참여적 관찰자였던 나도 회의적인 편이었다. 시장경제에 적응하지 못하는 폴란드 사람들의 삶이 너무 안쓰럽고 고돼 보였다. 그러니 43세의 젊은 경제학자 발체로비츠가 짊어져야 했던 부담의 크기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발체로비츠 계획의 핵심은 공산당 정권에서는 ‘투기’라고 범죄시했던 개인들 간의 거래를 합법화하는 시장경제의 도입이었다. 큰 우려에도 불구하고 통계를 잡아 보니, 시장경제 도입 이후 여러 지표가 믿을 수 없이 나아졌다.

실무 담당자들이 이 통계를 자랑스럽게 보고하니, 발체로비츠는 “이제 더는 통계를 조작하거나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으니 사실대로 말하라”며 오히려 화를 냈다. 그 자신 공산당 정부의 ‘계획과 통계’ 전문가로 통계 조작 행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또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한 것이다.

나중에야 발체로비츠는 보고받은 통계 지표가 사실임을 깨닫고, 시장경제의 활력이 이렇게까지 좋으리라고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경제 통계에 대한 이 일화는 자기가 만든 개혁안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고민하는 양심적 경제학자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문재인 청와대의 고용, 부동산, 소득 관련 통계의 왜곡과 조작에 대한 감사원 감사 보도를 접하고 보니 문득 발체로비츠의 그 일화가 다시 생각났다. 자신의 개혁안을 정당화하는 통계 수치마저 의심하고 되짚어보는 경제학자 발체로비츠와 통계청장을 갈아치우면서까지 자신에게 유리한 통계를 우려낸 문재인 정권의 경제학자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있다.

현실사회주의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그토록 거짓말을 많이 한 정권이 그토록 오래 집권했다는 데 놀랄 때가 많다. 사실과 통계보다 선전과 선동을 중시한 공산당 정권은 거짓말을 달고 살았다. 노동자들의 불만은 제국주의의 사주 때문이고 계획경제의 실패는 미국이 수퍼컴퓨터를 수출 금지 품목으로 묶은 탓이라 강변하면서, 군중대회 등의 이벤트로 현실을 호도했다.

문재인 청와대도 경제를 엄중한 현실이 아닌 정치적 이벤트처럼 생각한 것 같다. 특히나 서민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고용 정책과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통계 조작으로 가리려고 했다면, 자신 때문에 더 고단해진 ‘상용직’이나 무주택 서민들을 우롱한 처사다. 현실이 이데올로기와 맞지 않으니 잘못은 현실에 있다며 현실 탓을 한 것이다.

망국으로 가는 길은 이데올로기로 건설되고 거짓말로 포장되어 있다. 짝퉁 진보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사오입’ 개헌 정족수의 조작은 자유당 보수 정권의 몰락 신호였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숫자의 복수는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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