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과 실향의 아픔 못지않게 류 전 대사는 문재인 정부 시절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았다고 토로했다. "내가 이 나라에 왜 왔는지 모르겠다"며 수차례 자책했다고 한다. 목숨 걸고 망명한 엘리트 외교관은 왜 대한민국을 원망했을까.
하지만 2019년 9월 대한민국 땅을 밟은 뒤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정보 당국의 합동 심문을 3개월간 받은 뒤 탈북민이 사회 적응 훈련을 받는 하나원 입소(3개월)도 거치지 않은 채 곧바로 사회로 배출됐다. 서훈 국정원장 시절이었다.
뜻 있는 교회가 후원금을 보내줬지만, 가족을 먹여 살릴 호구지책이 필요했다. 2020년에 망명한 조성길(49)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도 문 정부가 푸대접하는 바람에 처지가 비슷했다는 후문이다. 코로나19 시절이라 택배기사로 일하면 돈벌이가 괜찮다는 말을 듣고 알아봤지만, 1종 보통 운전면허 따는 것이 여의치 않아 포기했다.
2021년 1월 국내 언론에 그의 망명 사실이 처음 보도되고, 그다음 달 미국 CNN 방송 인터뷰에서 “김정은은 핵무기를 생존의 열쇠라고 믿기 때문에 비핵화는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증언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북한에 저자세로 일관해온 문 정부가 류 전 대사의 발언에 화들짝 놀란듯했다. 당시 박지원 국정원장 체제에서 한 당국자가 "활동 좀 같이하자"고 제안했지만, 류 전 대사는 "문 정부에서는 아무 일도 안 하겠다"며 거절했다. 탈북 청년 어민 두 명을 비밀리에 강제 북송했고,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 측에 피살됐는데도 사실을 왜곡하는 행태에 분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20년부터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여름까지 2년 반 이상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살았다. 정권 교체 이후 정부 산하 연구원에서 프로젝트 단위로 일감이 조금씩 들어오면서 수급자 신세를 겨우 벗었다. 그는 "3만4000명이 넘는 탈북민이 각자 재능·역량에 맞는 일을 하며 대한민국에 기여하면 좋겠다"고 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