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운동장 지하에 공영주차장,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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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1.19. 오후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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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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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양 건립 추진에 우려 목소리
강원 영월은 무산…“학생 안전 우선”
‘학교 시설 복합화’ 전국으로 확산
게티이미지뱅크


“지역 주민에게는 주차난 해결로 교통 복지가 실현되고, 학생에게는 안전한 통학로가 확보될 겁니다.”

지난 13일 경상북도 영양군 군청 대회의실에서 오도창 영양군수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임종식 경상북도교육감도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학교와 지역사회가 상생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이날 오 군수와 임 교육감은 ‘영양초등학교 시설복합화(공영주차장 조성) 사업에 관한 업무협약’을 했다. 학교가 땅 4600㎡를 제공하면, 영양군에서 사업비 100억원을 들여 학교 운동장 지하에 120면 규모의 공영주차장을 만드는 것이 시설복합화 사업의 뼈대다. 경상북도에서는 지자체와 교육당국이 손잡고 학교 운동장 지하에 주차장을 건립하는 첫 사례라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영양군은 지속적인 차량 증가와 불법 주·정차 차량 탓에 주민 통행 불편과 보행자 안전사고 발생 우려가 커지자 도심에 대형 주차장을 건립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도심에서 4600㎡나 되는 땅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수년째 사업이 지연됐다. 그러다 학교 운동장 지하에 대형 주차장이 생기면 학교 인근 불법 주정차가 줄어 학생들이 더 안전해질 것이라는 교육당국의 판단이 나오면서 사업 추진에 물꼬가 트였다.

경북 영양군과 경상북도교육청이 지난 13일 영양군청 대회의실에서 ‘영양초등학교 시설복합화(공영주차장 조성) 사업에 관한 업무협약’을 했다. 영양군 제공


학교 운동장 지하에 공영주차장을


학교의 남는 땅에 지자체나 정부의 예산을 들여 주차장 등을 짓는 ‘학교 시설 복합화 사업’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학교가 남는 땅을 제공하고 지자체가 예산을 부담하면 땅을 사는 데 들어갈 예산을 아낄 수 있고, 학교뿐만 아니라 주민도 함께 이용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에는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부산 개성고를 방문해 박형준 부산시장, 하윤수 부산시교육감과 ‘부산지역 학교 시설 복합화 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했다. 9만9173㎡의 유휴 부지를 가진 개성고에 주차장뿐 아니라 도서관·복합체육시설을 지어 일과 시간에는 학생이, 이후에는 주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제주에서도 지난해 10월31일 제주도와 제주도교육청이 ‘제주 미래교육 발전을 위한 공동 협력 합의서’를 채택하고, 학교 운동장을 활용한 지하주차장 조성 등 8개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교육부와 부산시, 부산시교육청 등이 지난 10일 부산 개성고등학교에서 ‘부산지역 학교 시설 복합화 사업의 원활한 추진과 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하는 모습. 교육부 제공


강원도에서도 신경호 강원도교육감이 지난해 11월 “학교 일과가 끝나는 저녁 시간대에 주민들에게 운동장을 개방하고, 이를 주차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학교 운동장을 활용한 주차장 논의에 불을 붙였다. 곧이어 강원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원주시의 원강수 시장이 이틀 뒤 보도자료까지 내어 “신 교육감의 학교 운동장 주차장 활용 방안을 적극 환영한다. 주차 부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는 상황에서 신 교육감의 발언은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주거 밀집·상가구역 주차장 부족 민원을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골목길 주차 감소로 차량 흐름도 원활해질 것”이라며 사업 추진 의지를 밝혔다. 춘천에서는 이미 학교 3곳에서 운동장 지하에 주차장을 만드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주민 편의보다 학생 안전이 우선”


하지만 학교 운동장에 지하주차장을 지으려는 계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실제 2018년 10월 대전에서는 전통시장 주차난 해소를 위해 가양중 지하에 공영주차장을 짓자는 논의가 있었다. 이를 위해 시민과 학부모, 교육당국 등이 참여한 가운데 간담회가 열었다. 하지만 학부모와 교직원 등 학교 관계자들이 학생 안전 등을 우려하며 반대해 계획이 무산됐다.

강원도 영월에서도 2015년 사업비 50억원을 들여 영월초등학교 운동장 지하 6700㎡에 차량 250대를 수용할 수 있는 공영주차장을 지으려 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이 “지하주차장이 조성되면 스쿨존을 지나는 차량이 증가해 교통사고 우려가 커지고, 낯선 사람들이 학교로 들어와 각종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 지하주차장 공사 중에는 운동장을 사용할 수 없어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도 우려된다”고 반대하면서 백지화됐다.

2018년 10월 전통시장 주차난 해소를 위해 대전 가양중학교 지하에 공영주차장을 만드는 것을 주제로 시민과 학부모, 교육당국 등이 참여한 가운데 정책간담회를 하는 모습. 대전시의회 제공


춘천에서는 전교조 강원지부가 운동장 지하주차장 조성 계획에 반발하고 있다. 전교조 강원지부는 성명에서 “운동장 지하에 대형 주차장을 지으면 주차장을 드나드는 차량 통행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며, 통상 3년 정도 걸리는 공사로 인한 위험과 불편도 오롯이 학생이 감당해야 한다. ‘민식이법’으로 불리는 스쿨존 교통사고 처벌 강화법까지 도입하며 학생 안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단체장과 교육감이 나서서 학생 교통 안전을 위협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좌시할 수 없다”고 했다.

조영국 전교조 강원지부 정책실장은 “공영주차장이 필요하면 알뜰하게 예산을 편성해 학생 안전을 침해하지 않는 장소를 사들여 진행하면 된다. 학생 안전보다 더 우선돼야 할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춘천시 등 다른 지자체도 학생들이 뛰어놀아야 할 운동장에 주차장을 만들겠다는 발상을 멈춰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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