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음반기획사 하이브가 업계 내 경쟁자인 SM의 이사회 장악에 나섰다. 이수만 SM 창업주의 주주제안을 통해 하이브가 원하는 SM 이사회 후보군(7인 이사와 1명의 감사)을 전달한 것이다. 이 명단에 SM 측 인사는 단 1명도 없었다.
15일 오후 10시 하이브가 발송한 주주제안 메일에 따르면 이들은 사내이사 후보군으로 이재상 하이브 아메리카 대표, 정진수 하이브 CLO(최고법무책임자), 이진화 하이브 경영기획실장을 제안했다. 사외이사 후보로는 강남규 법무법인 가온 대표변호사, 홍순만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임대웅 유엔환경계획(UNEP) 금융이니셔티브 한국대표를 올렸다. 기타 비상무이사 후보로는 박병무 VIG 파트너스 대표파트너, 비상임감사 후보로는 최규담 회계사가 꼽혔다.
하이브는 앞서 10일 이수만 SM 창업주의 지분 14.8%를 확보해 SM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와 함께 오는 3월 말 SM 정기주주총회 의결권을 확보했고, “주주제안으로 하이브가 지정한 인사를 이사로 선임하는데 적극 협력하기로 한다”는 조건을 이수만과 협의했다. 16일 이수만 측도 “(이사회) 후보자들은 모두 하이브가 지명했다”고 밝혔다.
하이브는 이번 주주제안 이사 후보군 발표에서 음악인이나 프로듀서 출신, SM 현 경영진을 완전히 배제했다. 당초 SM 현 경영진 일부도 인선에 고려했지만, 검토 과정에서 임기 중 배임과 횡령 혐의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뺀 것으로 전해졌다. 음악인들을 배제한 건 SM엔터 내부 반발 등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향후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기획, 법무, 행정, 금융 등 경영 실무형 인사들로만 이사진을 채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이브는 이번 주주제안서에 ‘배임이나 횡령으로 유죄 판결 받은 인사는 이사로 선임 불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분리’ ‘소액 주주 전자투표제 도입’ ‘준법지원 제도 정관 명문화’ 등도 신설 및 개정 요건으로 넣었다. 하이브는 이 주주제안을 바탕으로 3월 말 SM 주총에서 SM 현 경영진 교체와 경영권 확보에 나설 계획이다. 이번 주주제안에서 거론되지 않은 SM 새 대표와 이사회 의장 후보는 주총 이후 꾸려지는 첫 이사회 안건으로 올라올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하이브가 확실한 승기를 잡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카카오와의 3월 주총 표 대결을 둘러싼 양측의 지분 확보 경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이브는 공개매수로 최대 25%를 확보하고, 이수만 최대주주 잔여지분까지 약 43.45% 의결권을 확보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전날 SM 주가는 이미 하이브 공개 매수가(12만원)를 넘어섰다. 가처분 소송이 걸려 있긴 하지만 SM 지분9.05%를 취득 예정인 카카오가 주당 매입 단가를 12만원보다 높여 공개매수 경쟁에 뛰어들 경우 하이브의 인수계획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
SM 사내 반발도 계속 거세지고 있다. 최근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 내 SM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하이브의 SM 인수에 대한 찬반 설문조사에는 200여명이 참여했고, 결과는 ‘반대 85%’였다. 하이브 측은 지난 13일 사내 설명회를 열어 “멀티레이블체제를 통해 SM의 색을 유지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지만, “하이브에 인수당하면 하이브 레이블 중 하나로 전락하는 건 변함이 없다”는 의견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업계 내 ‘독·과점’ 우려 또한 넘어야 할 산이다. 하이브와 SM은 지난해 서클차트 앨범 판매 톱10에 6개 팀을 올렸고, 이들 만으로도 약 32.7%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국내 대형 엔터 4사(하이브·SM·JYP·YG )의 핵심 팬덤 규모는 약 350만 명으로, 이 중 하이브와 SM은 각각 160만 명, 76만 명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두 회사의 결합 만으로도 업계 전체 3분의2에 달하는 핵심 팬덤을 갖게 된다.
하이브는 특히현재 목표한 소액주주 지분 확보를 성공적으로 끝낼 시 공정위 기업결합 신고 대상(매출액 3000억원 이상인 기업이 자산 또는 매출액 300억 원 이상인 상장사 주식을 15% 이상 취득)이 된다. 공정위 측도 이를 위한 사전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