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건설사들 다 죽을 판” 유명 건설사의 S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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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3.09.22. 오후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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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대기업 A건설사가 금융당국에 ‘구조 요청’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A건설사는 최근 몇 년 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지급보증액을 과도하게 늘렸는데 최근 금리 급등과 경기 침체로 위기설이 일고 있다. 정부는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사에 요청해 A건설사에 급전을 내주는 한편 건설업계 자금줄을 열어줄 각종 대책을 다음 주 중 발표할 예정이다.

A건설사, 금융당국에 SOS… 주요 금융지주 대출 받아 위기 넘겨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정부는 증권사 PF 대출 규제 완화, 미분양 해소를 위한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 활용, PF 요율 가이드라인 마련 등 대책을 검토 중이다. 증권사 PF 대출이 건전성 지표에 미치는 영향을 낮춰 PF 대출 여력을 늘리고, 개별 PF 사업장의 리스크와 신용등급, 변제순위 등을 고려해 수수료율 범위를 설정하는 등 건설업계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줄 방안들이다. 이들 대책 중 일부는 정부가 오는 26일 발표 예정인 부동산 종합대책에 담길 가능성이 높다.

이번 대책에는 A건설사가 정부에 한 요청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A건설사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찾아 ‘우리가 무너지면 우리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건설사는 다 무너진다’는 식의 논리로 도움을 요청했다”며 “조만간 마련되는 대책은 A건설사를 살리기 위한 차원에서 마련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현재 A사의 신용등급은 A-인데 빚을 갚지 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게 되면 이보다 등급이 낮은 건설사는 자금조달 통로가 막혀 흑자도산할 수 있다.

최근 5대 금융지주는 민간 주도 PF 사업장 재구조화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실제로 A건설사는 최근 5대 금융지주 계열사 중 2곳으로부터 1000억원 이상을 조달받았다.

무리한 사업 추진에 위기 봉착… 지급 보증액 4조 이상
A건설사는 부동산 경기가 좋았던 2020년 직전부터 관련 사업을 무리하게 키우다 위기에 봉착했다. 자체 시행(개발) 사업에 뛰어들거나 시공사로 선정되기 위해 PF 대출 지급 보증액을 8배 가까이 늘렸다. 특히 지방 사업장 비중이 커 지난해 부동산 경기가 꺾인 뒤 직격탄을 맞았다.


‘우발 채무’에 해당하는 A건설사의 PF 대출 지급 보증액은 올해 6월 말 기준 4조3240억원에 이른다. 2015년 PF 대출 지급 보증액은 5460억원에 불과했는데 8년 반 새 4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이 중 2170억원어치의 만기가 이달 말, 2420억원어치가 오는 12월 말 도래한다. 해당 PF 대출 만기가 연장되거나 금융 시장에서 원만히 차환되지 않으면 A건설사가 떠안아야 한다. A건설사는 이달 중순에도 부동산 시행 자회사가 1530억원 규모의 PF 대출 유동화 증권을 차환하는 데 실패하자 직접 매입한 바 있다. 이후에도 A건설사가 지급 보증한 PF 대출 만기는 2024년 8990억원, 2025년 1920억원 등 줄줄이 돌아올 예정이다.

무리하게 벌인 자체 시행 사업이 A건설사의 발목을 잡았다. 자회사나 관계회사를 통해 벌인 총사업비 1조5300억원 규모의 강원권 관광단지, 1조2000억원짜리 경북 민간 공원 조성 사업이 현재까지 삽을 뜨지 못한 상황이다. 이외에도 서울 성동구 오피스 개발(9600억원)과 대전권 주상복합(5600억원), 서울 금천구 호텔(3800억원), 충남권 산업단지(3700억원) 등 사업이 미착공 상태로 묶여있다. 이 중 지방 사업장은 금리와 인건비,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은 상황이라 미착공 기간이 길어질 우려가 있다. 자체 시행 사업인 만큼 고꾸라질 경우 손실은 A건설사로 전가된다.

A건설사는 자금을 구하느라 분주하다. 지난 1월 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로부터 4000억원을 빌려온 데 이어 3월에는 대형 증권사와 2800억원 규모의 자금 조달 계약을 맺었다. 이달에는 은행계 증권사 2곳으로부터 1900억원을 차입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지난 6월 말 A건설사의 장기 차입금은 1조5780억원까지 불어난 상황이다. 같은 시기 부채 비율은 462%에 이른다. 이마저도 막대한 자금 소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A건설사는 돈을 빌리기 위해 알짜로 꼽히는 경기 부천시 사업장 토지와 서울 사옥까지 내놓은 상황”이라면서 “지금까지 빌린 돈은 올해 필요한 자금을 대는 데 쓰기도 모자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은 A건설사(A-)와 신용 등급이 비슷한 건설사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대우건설·신세계건설(A), DL건설·SK에코플랜트(A-), 계룡건설·동부건설·한양·HL한라(BBB+), 한신공영·IS동서·쌍용건설·이수건설(BBB) 등 이름이 널리 알려진 건설사 다수가 사정권이다. 이 중 대기업 그룹에 속하지 않아 뒷배가 없는 건설사는 A건설사발 위기가 발발하면 쓰러질 수 있다. 실제로 냉랭한 시장에서 급전을 구하던 금호건설은 최근 금리가 연 10%에 육박하는 무보증 사채로 100억원을 끌어왔다. 이달 초에는 2022년 시공 능력 평가액 상위 15% 안에 들었던 국원건설이 최종 부도 처리됐다.

A건설사에 물린 B금융그룹, 일부 PF 대책 검토 배경?
금융당국이 검토 중인 PF 대책 중엔 증권가를 통해 간접 지원책을 마련하는 방안이 있다. 증권사 건전성 규제를 풀어 더 많은 PF 대출이 집행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현재 증권사는 PF 대출을 내준 금액 전체(100%)를 순자본비율(NCR) 위험치로 반영해야 하는데 이 비율이 8~32%로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이 배경에는 B금융그룹이 있다는 후문이다. B금융그룹은 A사와 함께 전국에서 대규모 부동산 시행 사업을 벌이고 있다. 총사업비 6조3000억원 규모의 경기 성남시 도시 개발 사업이 대표적이다. B금융그룹 주도로 이 사업 컨소시엄이 꾸려졌는데 A건설사가 지분을 30% 보유하고 있다. A건설사가 흔들리면 B금융그룹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는 구조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B금융그룹이 최근 몇 년 새 영입한 정부, 청와대 출신의 힘 있는 인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특정 기업을 살리려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NCR 규제 완화 이후 중소형 증권사들이 무리하게 대출을 늘리면 또다시 부실이 확대될 수 있다”며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려다 시스템 리스크를 키우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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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경제부에서 금융권 소식을 전합니다. real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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