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범, 여자라서 빨리 잡아”… 엉뚱하게 번진 ‘性대결’

입력
수정2018.05.13. 오후 9:35
기사원문
이택현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홍익대 누드모델 파문 온라인서 확산


홍익대 누드모델 알몸사진 유포 사건을 놓고 온라인 공간에서 엉뚱한 남녀 대결구도가 펼쳐졌다. 일부 네티즌들은 “피해자가 남자라서 수사가 빨랐다”며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로 경찰 수사를 깎아내렸다. 불법촬영 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도 했다.

서울서부지법은 홍대 회화과 누드크로키 수업에서 남성 모델의 나체를 찍어 유출한 혐의를 받는 안모(25·여)씨에 대해 “증거인멸과 도망 염려가 있다”며 12일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에 해당 사진이 올라온 지 11일 만이다.

안씨 구속 후 사건은 남녀대결 구도로 흘렀다. 온라인상에서는 “남성 몰카범은 잡는 데 뜸을 들이더니 여자라서 빨리 잡았다”는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주장도 이어졌다. 서강대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몰카범을 잡았는데 (경찰은) 휴대폰에 사진이 없으면 처벌을 못한다며 사이버수사와 연계해야 해서 수사가 어렵다고 했다”는 내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온라인 카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는 오는 19일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를 연다고 13일 예고했다.

이들의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2016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불법촬영범죄 검거율은 94.6%다. 다른 성풍속범죄 검거율보다 높다. 음란물유포범죄 검거율도 85.4%로 높은 편이다. 두 범죄의 피의자가 대부분 남성임을 고려하면 이들의 주장은 왜곡된 인식에 기댄 유언비어인 셈이다.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도 “잘 통제된 환경 안에서 30명 안팎의 학생과 교수, 누드모델만 용의선상에 올랐는데 검거가 늦어지면 오히려 문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극단적인 성 우월심리에 집착하는 일부의 일탈 행위가 성대결로 번졌다고 지적했다. 미투(#MeToo) 운동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일부 남성들이 피해자들을 ‘꽃뱀’이라 부르며 2차 가해했던 데 대한 분노도 녹아 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투 운동 이후 용기 있게 폭로해도 비난만 받거나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한 불신도 일부 담겨 있는 것 같다”며 “경찰이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우리 사회도 젠더 감수성을 키울 수 있도록 구조적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촬영 피해자들이 정부의 법적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한 데 따른 실망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불법촬영 가해자를 검거해도 사진과 영상은 온라인 공간에 유통돼 왔다. 정부가 유통망을 근절하지 않는 한 자비를 들여 일일이 지워야 했다. 이런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최근 5년간 불법촬영범죄 가해자의 98%가 남성이었다. 김 연구위원도 “개인 프라이버시 사건은 널리 홍보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경찰도 성별에 따라 수사 환경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설명하면서 남녀 대결구도를 완화시키는 방안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삽화=이은지 기자

[카카오 친구맺기] [페이스북]
[취재대행소 왱!(클릭)]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