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READY?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속 장면,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는 독창적인 공간, 다채로운 음악으로 연일 화제의 중심에 있는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신선하다’ ‘독창적이다’ ‘혁신적이다’라는 수식이 끊이지 않는 이 작품은 배우들이 무대와 관객을 오가며 160분 동안 쉬지 않고 춤추고 노래하고 악기까지 연주하는 덕분에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매력적인 작품에서 더 매력적인 ‘아나톨’로 무대를 빛내고 있는 세 남자 이충주, 박강현, 고은성을 만났다.
editor 이민정, 손정은, 나혜인 photographer ROBIN KIM stylist 박혜정, 전소현 hair 이혜영 makeup 김범석
충실하게 한 걸음씩
이충주
인생에 ‘큰 그림’이라는 것이 있을까.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인생의 방향을 바꿀 때, 사람들은 종종 그동안의 시간이 그저 허비된 것이 아닌가를 고민한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이 때로는 예상치 못 한 인연으로 다시 찾아오기도 한다. 우리는 이것을 운명이라고 부른다. 이충주에게도 <그레이트 코멧>의 아나톨은 운명처럼 찾아왔다. 넘치는 매력을 소유한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자, 짧은 장면이지만 바이올린 연주를 능숙하게 소화해야 하는 역할. 그동안 뮤지컬 <마마, 돈크라이>의 드라큘라 백작, <더 데빌>의 X블랙 등 숱하게 맡아온 ‘치명적인 캐릭터’라는 점도 그에게 꼭 맞는 옷이지만, 바이올린과의 인연은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하다. “노래가 좋아서 성악으로 전과를 하긴 했지만, 예술고등학교를 바이올린 전공으로 들어갔어요. 이번 작품 때문에 오랜만에 바이올린을 다시 잡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아나톨을 하기 위해서 그때 바이올린을 배웠던 걸까. 이것이 운명이었던 건가 싶더라고요.”
그때의 경험을 살려 누구보다 임팩트 있는 무대를 만들고 있지만, 전공자라는 타이틀로 인한 부담도 분명 있었다. “제 나름대로 책임감이 있었어요. 다른 배우들과 기준점도 달랐고요. 그래서 연습도 정말 많이 했고 레슨도 많이 받았어요.” 완벽한 무대를 위해 그는 이번 공연에서 자신이 고등학교 때 사용하던 악기를 꺼내 들었다. “제작사에서 마련해준 악기들이 있었는데, 제 손에 익지 않은 악기로 연주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제 악기로 하겠다고 요청드렸어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당시에 쓰던 바이올린이 안 팔렸어요.(웃음) 그래서 집에 두고 가끔 꺼내 봤는데, 지금은 그걸 매일 쓰고 있는 거죠.” 그는 이미 한 차례 무대 위에서 악기를 연주해 본 경험이 있다. 코로나19와 부상으로 인해 단 3번밖에 공연하지 못했지만, 뮤지컬 <미드나잇:액터뮤지션>에서도 기타와 함께였다. “기타는 아주 조금 칠 줄 아는 정도 였어요. 그런데 그냥 치는 것과 공연에서 연기를 하며 연주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거든요. 그때도 되게 떨렸는데, 무대 위에서 악기를 연주한다는 건 긴장이 되면서도 재밌는 것 같아요. 그래도 기타보다는 바이올린이 편합니다.”
이충주는 최근 JTBC <팬텀싱어 올스타전>을 통해 오랜만에 크로스오버 그룹 ‘에델 라인클랑’으로 돌아왔다. “준비 과정이 힘들긴 해도 ‘담배 가게 아가씨’로 1등도 하고 결과물이 좋아서 감사한 마음이 먼저 들어요. 에델 라인클랑은 팀원들 모두 지속적인 활동에 대한 마음이 있어서, 이번을 기회삼아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있어요.” 이 와중에 그는 부지런히 솔로곡 음원까지 발표했다. 그저 친구들과 재미로 하는 취미 활동일 뿐이라고 하면서도, 언젠가는 자신의 곡들을 모아 콘서트를 열고 싶다고 덧붙였다. “뮤지컬 배우들은 보통 뮤지컬 넘버나 가요 같은 기존의 곡으로 콘서트를 하잖아요. 저는 제 노래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하나하나 소품처럼 노래를 내다가 나중에 이것들을 모아보면 어떨까 싶어요.”
그의 바쁜 행보는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JTBC <공작도시>를 통해 처음으로 드라마에 도전하고 있다고. 이렇게 많은 일들을 동시에 하면 지칠 법도 하건만, 이충주는 그것이야말로 배부른 소리라며 손을 내저었다. “작년에 많은 작품이 취소되며 쉬어봤기 때문에 올해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감사하고 기적 같아요. 요즘 제 안의 키워드가 ‘감사’일 정도예요. 앞으로도 함부로 쉬고 싶다는 얘기는 하지 않을 거예요.(웃음)” 다양한 영역에서 찬찬히 자신만의 것을 쌓아온 그는 이 길의 종착지로 ‘연기’를 꼽았다. 성악을 전공한 다른 배우들에 비해 연극 무대에 자주 오르고, 드라마에 첫 발을 디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뮤지컬을 하면서 연기의 매력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가능한 오래 이 길을 걸어가고 싶어요. 일단 지금은 차근차근 밟아나가며, 저에게 주어진 것들을 끝까지 잘 완수하고 싶어요.” editor 손정은
내가 가는 길
박강현
지난해 뮤지컬 <모차르트!>로 시어터플러스의 표지를 장식했던 박강현은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는 언제나 설레고 벅차요.”라며 유독 ‘새로움’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그런 그가 음악도, 스타일도, 무대도, 온통 특별해서 ‘새로움의 끝판왕’이라는 애칭을 얻은 <그레이트 코멧>을 만났다. 게다가 작품 속 ‘아나톨’은 박강현이 지금까지 해온, 고뇌하고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캐릭터와는 결이 다르다. “음악을 듣자마자 바로 결정했어요. 곡과 곡 사이의 구성이 특이한 점도 좋았고요. 그러고 나서 브로드웨이 작품을 찾아봤는데 아나톨의 분량이 많지는 않아도 나름 임팩트가 있더라고요. 하지만 이토록 섹시함을 요구하는 역할인지는 정말 몰랐어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하.” 일단 그가 제일 처음 당황한 것은 멋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장면에 제가 몰입한 순간 관객이 멋지게 봐주시면 좋은 거고, 또 아니면 마는 거잖아요. 아나톨은 대놓고 멋있는 척을 해야 하니 제가 추구하는 방향과 다르다고 생각했죠. 근데 오산이었어요. 제가 등장했을 때 뒤에서 라이트를 근사하게 쏴 주시고, 무대와 의상 모든 것들도 제가 연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니 자연스럽게 흘러가더라고요. 그리 멋있지 않은 사람을 멋있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하죠.”
박강현은 이 작품의 무한매력에 젖어 매일이 즐겁다. 태어나 처음으로 관객과 눈을 맞추고 손키스를 날리는 것도, 끼를 부리는 것도, 상대 배우와 아주 끈적한 노래를 듀엣으로 부르는 것도, 이제는 재미있다. 여전히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는 부끄러워서 어쩔 줄모르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처럼 도망칠 곳이 없어 무조건 즐긴다. “힘든 상황에서 한 번 연기된 공연이라 저뿐 아니라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심혈을 기울였어요.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다 보니 다른 공연에 비해 서로 끈끈하고 유대감까지 생겨서 단톡방도 엄청 활발해요. <이블데드> 이후로 공연하면서 이렇게 땀을 쏟은 적이 있나 싶어요. 아니, ‘발라가(Balaga)’를 부를 때는 그때보다 더 힘들어요. 그런데 관객분들을 둘러보면 마스크 안에서 소리지르고 싶은 표정들이 다 보이거든요. 안타깝고 감사하고, 또 저 스스로 이전에 느껴보지 못 했던 희열과 흥분을 느끼니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 올 땐 기분이 정말 좋아요. 코로나가 끝나고 브로드웨이처럼 제대로 된 이머시브 공연을 하게 된다면, 단 이 멤버 그대로라면 반드시 하고 싶다고 말할 거예요.”
언젠가 이 작품의 프로듀서가 <그레이트 코멧>의 키워드를 ‘크레이지’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박강현의 인생에서 크레이지한 순간을 묻자, ‘이 일을 선택한 순간부터 지금까지’라고 답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용한 성격인 내가 어떻게 뮤지컬 배우로 살아가고 있는지 의아하고 신기하다면서. “그래서 전 항상 미쳐있는 걸까요?” 잘못 들어선 길이 지도를 바꾼다는 말처럼 우연히 들어선 배우의 길은 박강현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새로운 그 길은 퍽 다행이고, 우리는 미쳐있는 그의 순간들을 한없이 응원한다. editor 이민정
은빛으로 물든 별
고은성
고은성이 어디에서나 자신감 넘친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다. MBTI로 따진다면, 외향성을 나타내는 ‘E’가 게이지를 뚫고 지구 한 바퀴를 돌 정도. 역시나 직접 마주한 그는 상대방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유쾌한 청년이었고, 재치 넘치는 입담으로 수차례 큰 웃음이 터져 나오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상대를 웃기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던지는 말 한마디한마디에서 센스가 묻어날 뿐. 고은성의 아나톨이 나타샤는 물론, 객석에 앉은 관객까지 단숨에 사로잡은 이유가 여기서 나오는듯 했다. 앞서 뮤지컬 <머더발라드>에서도 세라를 사로잡는 구남친 탐으로 열연한 바 있지 않은가. 비록 탐이 한 여자만을 바라봤다면, <그레이트 코멧> 속 아나톨은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한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 차이점 하나가 더해졌다. 작품으로 인해 더욱 자유로워진 배우 고은성이 연기한다는 점. “아나톨을 정해진 이미지들로 손쉽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행동이 더욱 입체적인 인물을 완성하니까요. 어떻게 보면 반성을 하게 만드는 동시에 성장하게 만드는 작품이에요. 그동안은 당장 눈 앞에 있는 상황에 집중했는데, 이 작품을 하면서 자유로워지고 있거든요.” 이전과 비교해 과감해진 덕분일까. 그는 세 명의 아나톨 중 가장 파격적이고 화려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은발의 아나톨을 줄여 ‘은나톨’이라는 별명이 생겼다는 그의 염색 비하인드는 이러했다. “드레스 리허설 당시 찍은 사진들을 보니까 제가 생각하는 아나톨의 이미지가 흑발과 어울리지 않는 거예요. 연출님과 상의 끝에 탈색을 네 번 정도 하고 은색을 덮어 완성했어요. 이름 때문에 종종 실버 스타라고 불렸는데 정말로 실버가 되어버린 거죠.”
반짝이는 헤어스타일로 시선을 빼앗고 매혹적인 외모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은나톨이 가장 돋보이는 장면을 묻자, 오페라 하우스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을 꼽았다. “시선들에 우쭐하기보다 귀찮다는 마음이 강해요. 아나톨은 사교 모임에 신물 날 정도로 많이 다녀본 사람일 거란 말이죠.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로 나오는 장면이 있잖아요. 유명인들이 사람들 앞에서 활짝 웃다가도, 차에 탄 순간부터 180도 변하는 장면이요.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연기해요. 덧붙여서 제가 우연히 이병헌 선배님의 일본 팬미팅 영상을 본 적이 있어요. 아나톨의 대외적인 에티튜드는 거기서 많이 따왔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지한 얼굴과 검지를 내민 손가락으로 장내를 훑는 그의 모습은 무대 위 아나톨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그가 아나톨과 닮은 사람이라고 단정지을 순 없었다. 그의 말을 빌린 다면 작품 속 아나톨은 오늘만 사는 사람이었고, 현실의 고은성은 미래를 내다보고 달리는 사람이었으니. “저는 10년 뒤를 생각 하면서 살아요. 주택 청약도 넣고 있고요.(웃음) 또 저는 누군가 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시간이 흐른 뒤 고스란히 제게 돌아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최대한 피해주지 않고 겸손하게 살고자 합니다.”
인터뷰를 하는 순간에도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이 돋보였던 그였기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물론, 일찍이 뮤지컬 배우 삶을 시작한 그가 매순간 ‘겸손 모드 ON’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마음을 다잡은 계기는 바로 군생활. “제게 중요한 시기였던 것 같아요. 사색하는 시간이 길었거든요. 무엇보다 음악적으로 성장했던 것 같아요. 밤 9시만 되면 노래를 할 수 없으니까, 음악에 관한 고민들을 가지고 머릿속으로 여행을 다녔죠. 그리고 아침이 되자마자 음악실로 달려가는 거예요. 자기 전에 생각했던 것들을 해보려고요. 이 과정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찾고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었어요.” 약 1년 반이라는 시간은 어린시절로 돌아가는 타임머신 같은 순간이기도 했다. 모든 일은 시작점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사색에 잠긴 그는 인간 고은성으로서, 뮤지컬 배우 고은성으로서 시작점을 찾아 나섰다. “배우들이 연기를 할 때 항상 인물의 전사를 생각하고, 상황을 파헤치잖아요. 정작 저라는 사람에 대한 분석이 안 되어있더라고요. 제가 어떤 아이였고, 어디서 태어났고,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벌어진 일들을 떠올리면서 저 자신을 이해하려고 했어요.”
2011년 뮤지컬 <스프링 어웨크닝> 싱어 역으로 데뷔해 앞자리 숫자가 바뀌기까지. 마냥 소년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것 같았던 그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공백 이후 더 단단해진 모습이었다. “10년 동안 무사히 무대에 설 수 있었고, 하루하루 배우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해요. 앞으로도 감사나 겸손한 마음을 다양하게 증명하면서 잘 지내보려고 합니다.” editor 나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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