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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환희에 찬 연주_뮤지컬 <포미니츠> 배우 김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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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3. 10:572,072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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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에 찬 연주

배우 김환희의 인생이 가진 서곡은 끝(fine)없는 다카포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editor 나혜인 photographer 장호


7, 6, 6. 갑작스러운 숫자 나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이는 바로 김환희가 사력을 쏟은 시간을 뜻하는 숫자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속 강렬한 플라멩코를 위해 7개월을 노력했으며,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화려한 탭댄스를 위해 6개월, 그리고 뮤지컬 <포미니츠> 속 숨 막히는 4분 간의 피아노 연주를 위해 6개월을 쏟아부었다.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배워가며 성장하고 있는 김환희에게 계속해서 배우기 때문에 ‘배우’라는 단어가 붙었다는 이야기는 더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지난 4월 개막한 <포미니츠>는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해 내면에 상처를 가진 소녀 제니가 교도소 복역 중 피아노 선생님 크뤼거와 만나며 얻게 되는 치유의 시간을 담는다. 뜨거운 기대 속에서 개막한 작품이 보여주는 무대는 화려한 연출보다 인물 간의 촘촘한 관계들로 가득 채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가온 클라이맥스! 온 객석을 압도하는 제니의 마지막 피아노 연주는 작품이 가진 진수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를 완벽히 해내기 위해 제니 역을 맡은 김환희는 수없이 연습해왔다. 촬영을 위해 무대 위 피아노 앞에 앉은 순간에도 “이럴 때 조금이라도 더 연습할래요.”라고 말하며 건반 위에서 손가락을 떼지 않았다.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동그랗게 말아 쥔 손. 그 작고 여린 손은 이제 남 부럽지 않은 연주자의 손으로 거듭나 있었다.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제니 역에 이름을 올렸어요.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오디션을 준비할 때 항상 후회 없이, 창피하지 않게, 최선을 다해 준비해요. <포미니츠> 오디션도 그랬죠. 사실 저는 오디션을 볼 때 자신감에 차서 임하진 않거든요. 너무 멋지고 출중한 배우분들이 많으시니까 자신만만한 모습은 금물이에요. 그래서 합격 소식 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핑 돌아요. 이번에도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울컥했죠

<베르나르다 알바>에 이어 <포미니츠>까지. 최근 여성 서사를 가진 작품이 적극적으로 올라오는 분위기 속에서 흐름을 잘 타고 있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작품에 임하고 있나요?
여성 서사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고,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음에 참 감사하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 같아 기쁘고, 그런 흐름 속에 함께 할 수 있어 뿌듯하기도 해요. 무엇보다 기존 공연을 보면 남성 캐릭터들은 다양하게 구축되어 있거든요. 그중에서도 거칠고, 난폭하고, 내면의 상처를 숨기기 위해 감정이 앞서는 캐릭터는 주로 남성이 맡아왔죠. 그런데 <포미니츠>의 제니가 딱 그런 인물인 거예요. 그동안 이런 여성 캐릭터가 많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직접 해보니까 너무 재미있고 매력 있어요. 작은 바람이 있다면, 제니 같은 옷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저 말고도 연기를 정말 잘하시는 여성 배우분들이 많으시니까요.

제니와의 첫 만남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타인을 보듯 다가갔던 것 같아요. 많이 조심스러웠고 제니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웠죠. 캐릭터를 분석하는 데 있어 필요한 해답이 아닌, 이 아이에 관한 소명 같은 거요. 궁금증이 생기면서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어요. 

지금은 제니가 하는 행동에 대한 이유를 찾았을까요?
상처로 인한 자기방어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이러한 자기 방어를 평범한 우리 삶 속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해요. 제니처럼 표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속에 담아두기만 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정말 행복해 보였는데, 기구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들이 사회에 너무 많잖아요. 다들 자신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요.

ⓒ국립정동극장

배우 김환희는 순탄한 삶을 살아온 편인가요?
저는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는 편인데, 마냥 순탄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우여곡절도 많았죠. 그래도 이 정도면 감사한 일이라고 스스로 포장해요. 각자 가진 힘듦이 있을 텐데, 굳이 남들에게 제 속사정을 이야기하기보다 감사하면서 살고 싶거든요. 그래서 제니를 연기하는 게 힘들기도 했어요. 저는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제니는 자기 자신과 세상을 단절시키니까요. 극단적인 성격을 표현하는 게 어려웠죠.

제니를 연기하면서 스스로와 부딪히는 일도 종종 있겠네요.

다들 그러시겠지만, 평소에 부정적인 생각을 머리에 담고 있으면 두통도 있고 몸이 아프기 시작하잖아요. 연습 초반에는 제니를 연기하면서 몸살이 나고 아팠어요. 너무 아프니까 이 공연 심상치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죠. <베르나르다 알바>할 때도 그랬거든요. 제가 맡은 인물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인데 마지막에 비극을 맞이하게 되니까, 극이 주는 기운에 눌려서 공연이 끝나면 항상 허름한 상태로 돌아가곤 했어요.

거친 캐릭터를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일상생활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던데, 어떠세요?
약간 그런 것 같아요. 제가 평소에 거친 행동을 일절 하지않는데, 남자 동생들한테 터프한 말이 나갈 때가 있어요. 또 어제 공연 끝나고 쇼핑백을 가지고 걸어가는데, 터덜터덜 걸어갔거든요. 갑자기 (김)성경 선배님이 제게 “나 방금 진짜 제니인 줄 알았어”라고 하시는 거예요.(웃음) 그런데 저는 이게 칭찬 같아요.

제니를 연기하면서 느낀 카타르시스도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제니를 인간 김환희가 가진 성격으로 표현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물론 저와 제니 사이에 닮은 점도 있겠죠. 하지만 자라온 환경이 다르다 보니 제니에게 선뜻 다가갈 수가 없었어요. 알면 알수록 더 조심스러워지고, 이제 좀 다가가 볼까 싶으면 거친 표현에 일 보 후퇴하고. 실제 김환희였다면 제니와 같은 과감한 모습은 꿈도 못 꿀걸요. 그런데 차츰 제니와 동기화되면서 그가 가진 특성이 저와 아주 동떨어진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어요. 표현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이지 같은 감정을 느끼면서 살아온 거죠. 그래서 평소에 제가 표출하지 못했던 감정과 행동들을 제니를 통해서 표현하면서 재미를 느껴요.

스트레스가 극도로 심해지면 제니처럼 거친 말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작품을 보다가 문득 속 시원하게 감정을 표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는 스트레스를 풀 때 남들 눈치를 많이 보잖아요.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어떻게든 애를 써보는데, 그런 것들이 더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것 같아요. 저 자신이 가진 부정적인 감정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대안으로 찾은 방법이 하나 있어요. 차를 타고 시내 한 바퀴를 도는 거예요. 가끔은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따라 부를 때도 있고, 속에 있는 설움을 다 털어놓듯 울기도 해요. 그러고 나면 시원해져요.

운전을 즐겨 하는 편인가 봐요.
운전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배울 때 아주 제대로 배워서 겁이 없어요. 운전면허증이 발급되는 날에도, 멋지게 차를 타고 가서 수령하겠다고 마음먹고 임시면허증을 챙겨 경찰서까지 운전해서 갔어요. 초보운전이라 가는 길이 다사다난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대담했죠.

도전하는 것에 있어 망설임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운전 일화도 그렇지만,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는 탭댄스에 도전하고 <베르나르다 알바>에서는 플라멩코, 지금은 피아노에도 도전하고 있잖아요.
‘체르니 30’까지 배웠다면 제니처럼 연주할 수 있을걸요.(웃음) 피아노는 어릴 때 어머니께서 학원에 보내주셨던 게 아직 남아있긴 하더라고요. 그때 정말 제대로 배웠나 봐요. 여기 와서 처음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 다 떠올랐어요. 달걀을 잡고 있는 것처럼 손을 동그랗게 만들고 손목은 꺾지 않고...

작품을 위해 피아노 레슨만 6개월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일주일에 한 번 혹은 2주에 한 번 레슨을 받았어요. 그 외에는 개인 연습으로 채웠죠. 음악감독님께 레슨을 더 받으면 안 되냐고 물었는데, 레슨보다 개인 연습이 더 중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 레슨이 끝나고 2주 뒤에 감독님을 만났을 때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숙제였죠. 다행히 집 근처에 피아노 연습실이 있어서 아예 9개월 결제를 해놨어요. 연기 연습이 끝나면 새벽에 피아노 연습을 하러 갔어요. 피아노 연주는 조금이라도 나태해지는 순간 다 들통이 나더라고요. 아무리 힘들어도 연습실 가서 30분이라도 연주를 하려고 노력했죠. 돌이켜 보면 아쉬움도 있는데, 그렇게라도 안 했으면 실력이 이만큼도 안 나왔을 것 같아요.

ⓒ국립정동극장

피아노 연주도 있지만, 마지막 클라이맥스인 ‘제니의 연주곡’에서는 건반을 내려치고 현을 손가락으로 튕기기도 하잖아요. 손에 무리가 가진 않나요?
당연히 무리가 오죠. 손바닥 곳곳에 멍이 들어 있어요. 매일 멍이 하나씩 생겨요. 다리에도 멍이 잔뜩 있거든요. 기어 다니고 피아노에도 올라가고 하니까. 제니가 가진 폭력성을 표현하다 보면 어쩔 수 없어요. 그런데 이걸 보면 제니에게 더 깊게 이입할 수 있어요. 첫 공연 끝나고 집에 와서 씻을 때 손에 물을 묻히는 것조차 너무 아팠거든요. 그런데 동시에 ‘제니는 얼마나 아팠을까. 자신을 학대하면서 과거의 상처를 없애려고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좋은 현상 같아요. 고통을 얻으면서 제니의 아픔까지 얻게 되니까 일석이조예요.

피아노 아래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장면도 나오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크게는 교도소 독방을 표현하는 거예요. 그 안에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처음 연습할 때는 가만히 누워 있었거든요. 그런데 공연을 하면 할수록 그곳에서 제니만의 생각에 빠져들어요. 답답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해요. 그곳에만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제니만의 표현이 나와요.

인생에 있어 크뤼거 선생님 같은 스승이 있다면요?
딱 떠오르는 한 분이 계신데, 지금 하늘나라에 계세요. 그 분을 통해 연기의 재미를 알기 시작했거든요. 제가 제니처럼 마음을 열 수 있게 해주셨던 분이라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선생님께 연기 배울 때 썼던 일지들은 아직까지도 못 버려요. 채팅했던 것들도 혹여나 지워질까 따로 캡처해서 보관해두고... 작품마다 첫 공연을 올릴 때 항상 선생님을 생각해요.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아주 뿌듯하게 보고 계시지 않을까요.

뿌듯하게 보고 계실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제니가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것처럼 연기와 노래에 재능이 있어서 무대에 오르고 있잖아요.
제가 노래는 막 신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연기는 전공 분야가 아니다 보니 재능이라고 하기 조금 조심스러워요. 잘 몰라서라기 보다 누군가의 삶을 표현하고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게 아직 조심스러워서 그런가 봐요. 그런데 하면 할수록 다양한 감정을 연기하고 새로운 인물을 만나는 게 너무 즐거워요.

1월호 미니 인터뷰로 2021년 목표를 말한 적 있어요. 그때 당시 ‘기본적인 것들을 지키고 싶어요.’라고 했는데, 잘 지켜가고 있나요? 
제가 원래 호기심이 정말 많아요. 새로운 걸 보면 꼭 직접 사서 해봐야 하는 타입이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버린 것도 많고 미니멀리즘 삶을 지향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화장 브러시를 자동으로 세척해주는 기계가 있거든요. 그걸 사기 전에 수동으로 세척하는 클렌징 제품을 사뒀던 게 생각나서 자동 세척 기계는 중고로 팔았어요. 또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주위 사람들부터 잘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새로운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사람들에게 소홀해지더라고요. 주변인부터 챙겨야 관계에서 나오는 사랑의 에너지를 얻고, 그걸 이용해 다른 이들에게도 사랑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소비한 아이템은 없을까요?
먹는 것에 있어서는 정말 안 아껴요.(웃음) 최근에는 소비보다 중고로 되파는 일이 더 많았어요. 비움의 미학을 이어가다 보니까 제가 뒷전으로 미뤄두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대표적으로는 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응원해주고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이죠. 그 사람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을 텐데,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을 안 하다보니까 공허함만 남는 거예요. 연락했을 때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이에요. 그러니까 기본적인 관계에 충실히 하려고 해요. 그러면 더한 일들도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일을 해내고 싶으세요?
사실 큰 욕심은 없어요. 보통 인터뷰를 하면 무슨 작품하고 싶은지, 어떤 캐릭터를 하고 싶은지 물어보잖아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당장 눈앞에 있는 것들이 중요하거든요. 그저 내일 있을 공연부터 컨디션 관리를 잘해서 관객과 무사히 만날 수 있길 바라요.

뮤지컬 <포미니츠>
기간 2021년 4월 7일-2021년 5월 23일
시간 화·목·금 20:00 | 수 16:00 20:00 | 주말 14:00 18:00
장소 국립정동극장
가격 전석 7만원
문의 02-75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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