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라 노래하라
예술적 상상력을 과감하게 실현하는 예술감독 원일이 이번에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국내 최고의 창작진과 함께 뮤지컬에 도전한다. editor 이민정 photographer 김선진
세상에는 자연스러운 소리가 있는 반면 욕망을 깨우는 소리가 있다. ‘소리란 과연 무엇인가’ ‘소리에 정의가 있는가’에서 출발한 작품 <금악>.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던 시기, 통일신라부터 비밀스럽게 전해져 온 금지된 악보인 ‘금악’을 둘러싸고 장악원(掌樂院)에서 펼쳐지는 사건을 담은 판타지 사극 뮤지컬이다. 단순히 ‘한국적인 창작 뮤지컬’이라고 하기에 이 작품이 의미있는 이유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이 작품에 뜻을 같이 한 창작진들이 의기투합했기 때문이다. 알려졌다시피 경기도립국악단은 지난해 ‘시나위’의 정신을 표방하여 현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형태의 음악 행위를 펼쳐 나가고자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로 명칭을 변경한 바 있다.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다양한 형태와 장르의 창의적인 음악적 시도를 펼쳐 보일 수 있는 예술 단체로서, 이제는 대중문화의 흐름에 맞춰 새로운 스타일의 뮤지컬 제작에 나선 것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첫 술에 어디까지 배부를 수 있을지 궁금하다’는 원일 감독을 만나, 베일에 싸인 작품을 살짝 들여다 보았다.
감독님의 직업이 또 하나 늘었어요. ‘뮤지컬 연출자’라는…
음악을 한 번도 놓은 적은 없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감독이 꿈이었어요. 유명한 영화 감독님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촬영 현장을 따라다닌 적도 있었고… 한번은 소리가 악령을 불러온다는 콘셉트로 시놉시스를 썼는데, 사실 이 <금악>이라는 작품이 거기서부터 시작된 거예요. 당시 제가 연출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도 이런 소재의 영화는 없었기 때문에 재미있을 것 같았죠. 시놉시스가 바로 영화가 되는 건 아니니까 계속 가지고만 있다가 경기아트센터에 오면서 계획을 세웠어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로 명칭을 바꾸는 작업을 마치면 뮤지컬을 통해 대중적인 작업을 해보자고요. 뮤지컬은 무대 공연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장르인 게 분명하고, 공연계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율도 가장 크니까요. 한국적인 뮤지컬을 통해 한걸음 더 나아가되, ‘소리’라는 소재 역시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어울릴 거라 생각했어요. 예전 <니진스키>를 인상깊게 본 기억이 있어서 작가와 작곡가를 만나 시놉시스를 알려주고 써주시기를 기다렸습니다.
2011년 혹은 2012년 정도에 시놉시스를 쓰셨다면 감독님이 계시던 국립국악관현악단과도 합을 맞출 기회가 있었을 텐데요.
국립극장의 모든 단체는 이미 확고한 정체성을 지닌 곳이에요. 프로덕션끼리의 경계도 분명하고요. 제가 경기아트센터에 올 무렵 경기도립국악단은 다소 정체되어 있던 시기였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뮤지컬 작품을 제안 드렸어요. 뮤지컬 제작이 한 두 푼 드는 게 아니지만 사장님 이하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평소 뮤지컬을 많이 보는 편이세요?
닥치는 대로 보는 건 아니지만 관심은 많아요. 대극장 뮤지컬과 대학로 뮤지컬은 제작 방식 자체가 다른 것 같긴 해요.
개막까지 한달 정도 남았습니다. 창작뮤지컬 중에서도 초연이라 아직 작품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요. 어떤 내용인가요.
궁중 장악원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고 있어요. 동양에는 정악과 금악 이론이 있어요. 음악은 사람의 정서를 자극하고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너무 기쁘거나 슬프거나 음험하면 안된다는 게 금악이에요. 정악에서 ‘정’은 ‘바를 정’자를 쓰고요. 중국에서 새로운 황제가 탄생하면 중심 음을 정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어요. 황제의 행동규범, 경영에 대한 첫 번째가 ‘예악’을 정하는 거였죠. 그렇다면 금악은 왜 금지되었을까, 금지된 것이 봉인되고 해석되어 소리가 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저는 이런 호기심에서 출발했습니다. 금악을 둘러싼 비극적인 사건에서 연루된, 그곳에서 희생당한 부모의 아이가 소리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으로 궁중으로 들어가게 돼요. 금악을 해독하라는 명령을 받고 해독하게 되면서 그 음악이 모든 트라우마를 깨우기 시작합니다. 부모의 억울한 죽음도 알게 되죠.
배경이 효명세자가 대리청정하던 시대입니다. 음악과 학문에 조예가 깊은 세자였기 때문이었을까요.
거시적인 맥락에서 정치는 지금도 그렇듯이 언제나 대립을 만듭니다. 순조 재위 말기는 세도정치가 막강한 시절이었고 효명세자의 아버지 순조는 권력의 허수아비일 뿐이었어요. 이 시대는 정말 흥미롭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워요. 역사학자들도 효명세자가 일찍 죽지 않고 왕이 되었다면 세종, 정조 다음으로 뛰어난 왕이 되었을 거라고 말하곤 해요. 시집을 4권이나 쓰고, 정재(악가무의 종합예술)를 10개 정도 만들었으니 역대 왕 가운데 세종 다음으로 예민한 감수성까지 지녔죠. 공자부터 세종으로 이어지는 예악 정치를 꿈꿨던 사람이고요. 예악을 통해, 세도정치를 하는 안동 김씨, 아버지를 무력하게 만들고 자신까지 견제하는 이들을 바로 잡고 싶어했어요. 음악을 작곡하지 않더라도 예술을 이해하고 예술가를 이해했기에, 예술가들이 자신의 창작을 펼치는 가장 좋은 시대였을 겁니다.
‘예악’이라는 이론이 서양에도 있나요.
비슷한 건 있을 수 있는데 동양에만 있어요. 서양은 감각적인 것들을 중요시한다면 동양은 규범을 중요시합니다. 동양의 모든 것은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데 수학적으로는 피타고라스 이론과 같아요. 이 세상에 남녀가 있고 태양과 달이 있듯 순환하면서 사계절을 만들고 이 질서 안에서 음이 만들어지며 모든 것이 탄생합니다. 금악은 이러한 이론에 위배되는 인간의 어떤 감성을 자극하는 악보였던 거에요. 서양은 이전 시대의 것을 파괴함으로 예술의 맥락을 이어가기 때문에 혁명, 전복이 중요하고, 동양은 전승이 중요해요. 옳은 것과 아닌 것의 구분이 엄격했고요.
배우들도 이 작품 하면서 머리를 맞대고 공부했을 것 같아요.
엄청 많은 시간을 토론하면서 보냈어요. 금악의 선율이 왕한테는 무엇이고 주인공에게 무엇인가, 또 성율에서 튀어나오는 ‘갈’한테는 무엇이었는가. 배우님 모두가 진지하게 탐구했어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뮤지컬이 처음일 텐데 뮤지컬을 대하는 반응은 어떤가요.
이 음악 단체의 독특한 점은 연희 파트와 경기 민요를 바탕으로 한 성악 파트가 있다는 거에요. 작은 음악극들을 무대에 올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규모를 더 키울 수 있는 발판이 되었으면 하고요, 악단의 경우는 지금 생경하기도 하고 피부에 와 닿지 않겠지만 무대에 올라서는 순간 무엇을 해야할 지 바로 파악할 것입니다.
공공단체에서 이런 대작 뮤지컬을 제작하기가 쉽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뮤지컬 배우만 없지 사실 이 안에 모든 역량이 다 있어요. 이 작품은 음악적으로 모든 양식이 결합되어 있는데 서양 음악 어법으로 만들어진 곡을 우리 악기로 반주하는 것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한국 뮤지컬이라 부를 수 있는 정체성을 부여하는 음악들이 절묘하게 섞여 있습니다. 뮤지컬을 선호하는 관객도 익숙하게 들으실 수 있을 뿐 아니라 음악적인 양식이 어느 정도 섞여 있느냐도 흥미로운 지점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현대적인 음악을 들을 수 있나요.
여러가지 사운드가 있어요. 영화를 틀어놓고 사운드를 끄면 재미가 없지만 화면을 없애고 사운드만 틀어도 어떤 스토리가 전개되는지 대강 알게 되거든요. 그만큼 사운드는 사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이 작품은 소리에 대한 감각을 순간순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금지된 선율이라는 부분까지 한번쯤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 작품의 연출가로서 가장 큰 고충은 무엇인가요.
저는 음악을 지휘하고 세세한 디테일을 가지고 작업을 해왔는데 이 작품이 대극장 공연이다 보니 수시로 자각해야 하는 점이 있어요. 예를 들어 세세한 드라마적 감정과 연기의 디테일을 고민 하다가 객석에서 보면 보이지도 않거든요. 재인지하면서 수정해야 하는 과정이 익숙하지 않아요.
초연인데 라이선스도 아닌 창작뮤지컬이어서 부담도 있었을 것 같아요.
라이선스 뮤지컬이 재현의 미학이라면 창작뮤지컬은 말 그대로 창조의 미학이에요. 이 작품 역시 재현과 창조가 중요하게 쓰이는 키워드입니다. 신하의 나라를 꿈꾸는 김조순은 예술은 전통을 답습해서 재현하면 되는 거라 생각하는 정치 관료이고, 세자의 예술은 그런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주인공 성율을 이해할 수 있는 거죠. 참 보기 드문 조선 왕세자입니다.
가장 공들인 장면은 어디인가요.
작품이 시작되자마자 일어나는 궁중 사건과 주인공 성율이 금악과 대면하는 장면입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점은 예술가의 광증, 금악을 해독하면서 점점 자기 도취와 환청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모습입니다. 금악을 깨우면서 ‘지킬앤하이드’처럼 내적 자아(자신에게 들려오는 환청)를 존재로서 만나는 장면이 있거든요. ‘갈’이라는 기괴한 캐릭터죠. ‘갈’은 ‘빌런’이기도 하고 ‘샤먼’이기도 해요.
영화로 되면 되게 멋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드라마적인 요소가 분명 있습니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의 예술감독이 되시면서 개인의 창의성이 돋보이고 발휘되고 협동하면서 만들어지는 공동창작의 형태를 현대에 맞는 방식으로 펼쳐 보이겠다고 말씀하셨죠. 뮤지컬을 선보이시는 이유 역시 동일한 방향성인가요.
시나위라는 것은 한국적인 정신, 정서, 즉흥적이고 레고 블록 같은 총체적인 말이잖아요. 오케스트라는 음악의 총체적인 말이고요. 단원들의 창작력이 필요한 악단, 거기서부터 다양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악단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공공단체로서 창작 능력을 보유한 단체가 된다면 창의력을 갖춘 젊은 연주자들이 자연스럽게 소망하는 단체가 될 것입니다. 갈 길은 멀지만 창작을 다채롭게 펼쳐내는 상징적인 곳이 되길 바랍니다.
준비한 시간에 비해 공연 기간이 짧아 아쉽습니다.
경기아트센터에는 4개의 예술단체가 있고 대극장을 한 달 이상 내주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에요. 모든 단체가 지금 굉장히 의욕적인데, 15일 공연하는 것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해요. 리허설까지 하면 한 달이니까. 이 작품이 잘 올려져서 뮤지컬 시장에서 살아날 수 있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초연의 목표는 외부 시장에서 살아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즐거워 보이세요.
재밌지 않으면 이런 고생을 왜 사서 하겠어요?(웃음)
ATTENTION, PLEASE
뮤지컬 〈금악:禁樂〉
기간 2021년 8월 18일-2021년 8월 29일
장소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가격 R석 88,000원|S석 66,000원|A석 44,000원|B석 22,000원
예술감독&연출 원일
출연 조풍래, 황건하, 추다혜, 윤진웅, 남경주 외
문의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031-289-6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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