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아쉬움은 남겨도 후회는 남기지 않는다 - 평범한 20대
1-5. 30살 전에 한국을 벗어나기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일을 나가실 때면 매일 냉장고나 식탁 위에 메모를 적어서 붙여 놓고 나가시곤 하셨다. 메모의 내용은 ‘어디에 뭐 있으니 꺼내 먹어라, 나가기 전에 혹시 모르니 가스나 전기 확인해라, 사랑한다. 등의 사소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부터 ‘숙제하기, 영인이(동생) 밥 차려주기, 방 정리하기’ 등의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목록이었다. 엄마의 글씨체나 심플하게 글을 쓰는 방법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따라서 하다 보니 낙서하고, 메모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 낙서와 메모는 내게 좋은 습관으로 자리잡았고, 그 습관이 발전하면서 20대에는 ‘드림리스트’라는 것까지 작성하게 되었다. ‘드림 리스트’란 말 그대로 내 꿈의 목록을 적어보는 것으로, 어떤 순간에 내가 꼭 해 보고 싶은 것이나 내가 꿈꾸는 것을 기록하는 리스트다. 전역을 하고 나서 곰곰이 내가 꿈꾸는 것을 한번 적어보려고 하니 생각보다 적을만한 내용도 없고 답답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하면 끝도 없이 적어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꿈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조차 안하고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후 나는 5년간 꾸준히 한 주, 보름, 한 달의 간격으로 반복해서 리스트를 지우거나 수정/추가하며 '나만의 소소한 드림리스트'를 적었다.
나의 첫 드림 리스트는 ‘부자 되기,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아들 되기, 행복하게 살기’ 식으로 두루뭉술했다. 하지만 그 추상적이고 모호하던 것들이 꾸준히 반복되면서 또 다른 아이디어가 생기고 살이 더해지면서 점점 구체화되었자. 꿈이 구체화되자 멀게만 느껴졌던 것들이 가깝게 느껴졌고, 그 꿈과 관련된 기회가 보이면 주저없이 달려들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부자되기'라는 허황된 꿈을 시작으로 나는 '내가 생각하는 부자의 기준'을 명확히 할 수 있었고, ‘40살 전에 내 집 마련하기, 40살 전에 벤츠 오너 되어보기, 35살 전에 내 사업 시작하기’ 식으로 어떻게 보면 터무니 없을지도 모르는 내용에 기한을 붙이면서 '기한 내에 어떻게하면 꿈에 가깝게 다다를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 드림리스트는 꼬리의 꼬리를 물어 점점 더 구체적으로 변해갈 수 밖에 없었다. 꿈이 구체화되면서 당장 하고 싶은 것이나 해야하는 일도 늘어갔고, 그것은 또 다른 목표를 만들며 내 '드림리스트'는 날이 갈수록 늘어갔다. 20대의 반 이상을 '드림리스트'를 쓰며 '나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갈 수 있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었다.
‘ 30살이 되기 전에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살아보기 ’
방황하던 시기에 드림리스트에 적어뒀던 이 한 줄의 문구는 계속해서 드림리스트를 업데이트하는 동안에도 한 번도 지워지거나 수정된 적이 없었다. 몇 해 동안 쌓여있던 이 목표를 보며, 어느새 내 마음 속에는 30살 전에는 어떤 식으로든 해외에 나가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고, 그것은 이미 꿈이 아니라 내 삶에서 거쳐야하는 당연한 과정이 되어있었다.
첫번째 도전은 미국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에 꽂혀, 어느날 갑자기 무일푼으로 무작정 미국으로 떠난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없이 그저 '미국 땅을 밟아 본 것'에 그쳤던 그때의 내게 당연히 미국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고 아름답기만 한 땅은 아니었다. 예전에는 서로의 존재도 잘 모르던 현지에 거주중인 육촌 친척도 수소문해서 도움을 받고, 마침 근처에서 유학중이던 친구에게도 기대면서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갔다. 불법이지만 어떻게 주류판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관광비자’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체감하며 결국 방황만 하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허무하게 한 달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 과정 속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이 많았다. 이 때의 허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어떤 비자를 받아서 어떻게 외국에 나가야 하는 것이 효과적인가’에 대한 중요성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현실적으로 비자 상태와 돈을 벌 수 있는 조건, 실제로 그곳에서 살 수 있는 가능성 등을 종합해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로 가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여행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나는 ‘30살 이전에 우선 호주로 떠나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돌아와 복학해서 학교를 다니며, 외식업으로 사업을 준비 중이던 작은 아버지를 돕곤 했는데, 그 일이 도시락 사업으로 점차 확장되면서 나도 본격적으로 회사 운영에 참여하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졸업은 했지만 졸업은 성취감이나 안도감이 아닌, 불안과 부담으로 다가왔고,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할 수 있는/ 해야하는 일'이 있는 회사에서 눈코 뜰 새 없이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 당시 생각이 너무 많아 고민도 많고, 몸도 마음도 바쁘지만 내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제대로 갈피를 못 잡던 나를 잡아 준 사람이 있었다. 여자 친구는 내 생각과 말에 공감해 주며 나를 정서적으로 안정시켜 주는 존재였다. 그녀는 대학병원의 중환자실 간호사로, 서로의 집이 걸어서 5분 거리인 동네 친구였다. 한 동네에 오래 살았음에도 서로 모르고 지내다가 마음의 안정을 찾기위해 동네 성당에 다니면서 알게 된 사이였는데, 결국 나는 주님이 아닌 여자친구로 인해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었다. 인연이란 신기하다. 첫 만남에서 나는 ‘도대체 저런 친구는 나중에 어떤 남자와 만나려나’라고 생각했는데, 그 남자가 내가 될 줄이야. 우리는 서로의 가치관이나 생각에 흥미도 느끼고, 비슷한 점에 공감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 보면 나는 작은아버지 덕분에 내 능력에 비해서 안정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고, 아내도 전문직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며 상대적으로 좋은 연봉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3교대 근무를 하면서 몸과 마음도 많이 지쳐있었고, 힘들어 했다. 우리는 서로의 상황과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을 했고,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함께 웃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림리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이 사람이 내 평생의 동반자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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