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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안녕, 나의 인생_뮤지컬 <호프> 배우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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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9. 09:302,192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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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인생

무대 위에 서는 것을 숙명이라 생각하며 20년이 넘는 시간을 걸어온  배우 김지현. 
editor 조은화 photographer 김진호 place 알베르


김지현은 1997년 일본에 진출하며 ‘한국인 최초 극단 사계 수석 입단’이라는 타이틀을 따낸 배우다. 여전히 일본의 토호, 다카라즈 등 여러 제작사의 작품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지만 뮤지컬 <호프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과의 두 번째 만남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오랜 시간 일본에서 뮤지컬 배우로 자리를 잡은 그가 연이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캣츠><라이온 킹> 등의 뮤지컬에서 주역을 맡더라도, 내 나라에서 내 언어로 무대에 선다는 건 놓칠 수 없는 기쁨이라는 것. 더불어 인생의 대부분을 원고에 목메며 살아온 주인공 ‘호프’가 7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모습에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엄격하고 치열했던 극단 생활을 통해 배우로서 얻은 깨달음은 현재에 충실하되 언제나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끝없는 훈련으로 자신을 갈고 닦는 일이다. 인생은 60부터라고 말하는 김지현의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한국에서의 공연이 1년만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바쁜 나날들의 연속이었어요. 귀국 직전까지 일본에서 공연이 있었고, 귀국하자마자 호프를 연기하기 위한 연습에 돌입해야 했죠.

일본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아요. 
극단 ‘사계’에 처음 입단한 한국인으로서, 언어로 인한 실수도 많았고 기억에 남는 일도 셀 수 없을 정도예요.(웃음) 이미 굳건히 자리 잡은 극단인 만큼 좋은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고 배우로서의 자세, 무대를 대하는 마음가짐 등 기본적인 것부터 하나하나 배우면서 습득했어요. 좋은 환경에서 다양한 작품을 만나는 직업을 찾았다는 게 굉장한 행운이자 기회였어요. 물론 엄청나게 힘든 훈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렇다면 사계에서 배운 자산들을 한국의 후배들에게 전파하기도 하나요. 
입단한지 5년쯤 되었을까요. 은사이신 김효경 교수님의 부탁으로 서울예술대학교 후배들이 일본으로 연수를 올 수 있도록 사계 대표님께 편지를 쓴 적이 있어요. 금전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큰 도움을 받아, 당시 일본 전국에 있는 12개 정도의 사계 전용 뮤지컬 극장에서 40명쯤 되는 후배들과 전국 투어를 할 수 있었어요. 그 때를 기점으로 한국의 후배 배우들이 일본 뮤지컬 시장에 들어올 수 있는 문이 열렸던 것 같아요. 

<호프>는 두 번째 참여입니다. 재참여를 결심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는 이전에 참여했던 작품과 다시 만나는 걸 좋아해요. 작품과의 첫 만남은 아무래도 예민해지기 마련이라 시야가 좁아지기도 하거든요. 경험이 생기다 보니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어서 이번 제안도 반갑게 받아들였습니다. 다른 스케줄을 뒤로 하더라도 참여하고 싶었어요. 사실 이미 자리 잡은 일본에서 작품 하나만 보고 한국에 온다는 건 많은 준비가 필요한 일이에요. 그럼에도 <호프>를 포함해 한국에 좋은 작품이 있다면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요. 

다시 참여하면서 새로 발견하거나 다르게 다가온 점이 있다면요. 

호프라는 인물은 너무 힘든 인생을 살아왔지만, 고된 삶 안에도 다양한 희로애락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엄마에 대한 따뜻한 기억, 원고 K와 함께 한 시간 동안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 이번에는 호프의 더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어요. 대본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작품 속 배경과 숨겨진 이야기들을 짙은 감정으로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가장 마음에 남는 대사 혹은 넘버는 무엇인가요.
무대 중심에 앉아 ‘호프’라는 메인 타이틀 곡을 부를 때마다 엄청난 외로움과 고독이 밀려오는 동시에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의 벅찬 감정을 느낄 수 있어요. 최대한 깊은 감정을 표현하려고 몰입하는 그 순간을 너무 사랑해요. ‘호프’ 외에도 주옥 같은 대사가 많은데, 특히 작품의 후반부에 ‘안녕, 살아갈 내일아’라는 말을 건네며 미래로 나아가는 호프가 마음에 남아요. 마치 <캣츠>의 ‘Memory’를 부를 때의 감정과 비슷한 것 같아요. 과거의 추억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순간, 그 동안의 고통이 승화되는 기분을 느껴요. <캣츠>의 그리자벨라가 선택받는 이유는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세상을 만들어가기 때문이거든요. 호프 역시 앞날에 대한 희망을 안고 무대를 나서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배우로서 무대 위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제가 의도한 소리와 연기를 온전히 발산했을 때 가장 벅차 올라요. 매일같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건 힘든 일이거든요. 그 날의 최대치를 끌어내 음악과 감정이 연결되는 순간, 캐릭터와 하나가 되는 기분이죠. 배우가 이런 감각을 느낀다면 관객들도 무조건 알아챌 거라고 생각해요. 배우가 거짓 연기를 하면 바로 아는 것처럼요.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충실하면 진실된 연기가 나올 수 밖에 없어요. 중요한 건 집중력이에요. 내가 이 작품을 위해 얼마나 사전 준비를 했고, 육체적인 훈련을 했는지에 따라 발산되는 에너지가 천지 차이입니다. 공연에 들어가기 전 매일같이 부족함을 확인하고, 대사를 곱씹어 보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에 대한 관리가 정말 철저하시네요.  
그렇게 훈련 받았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요. 극단에 몸담고 있으면서 본의 아니게 철저한 트레이닝에 익숙해졌고요. 인간은 지극히 경험에 의존하는 존재예요. 입력값이 없으면 출력값이 있을 수 없죠. 그렇기 때문에 보고 듣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대에는 현재의 나이 든 호프와 과거의 호프가 같은 공간에 존재합니다. 어린 날의 자신을 바라보는 현재의 호프는 어떤 마음일까요. 
‘스스로에게 그러지 말 걸’ 하는 미안함이요. 호프는 과거 자신의 선택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후회가 가득해요. 원하는 환경을 선택하는 인생은 없잖아요. 주어진 상황 안에서 무언가에 의해 얻은 깨달음으로 변화를 맞이할 때,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호프는 78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야 깨달음을 얻지만, 시간이 얼마나 흘렀든 결국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어요. 관객들이 작품을 통해 각자의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배우로서 큰 깨달음을 얻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늦게 깨달은 것 같아요. 일 년 전쯤 공연을 보러 온 대학교 친구들이 우리 나이가 ‘반백살’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깜짝 놀라서 ‘우리는 반세기밖에 살지 못 했어’라고 했어요. 관점의 차이인 것 같아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나이 때문에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외국에 있어서 그런지 여전히 하루하루가 새로워요. 노래, 연기, 몸의 훈련 등 매일의 깨달음을 통해 매순간 나를 좋은 쪽으로 바꿔 가고 있거든요. 인생은 60부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제 시작인 것 같아요. 남은 10년 동안 터득해야 할 게 너무 많고, 60세 전까지 실수하고 상처받으며 넘어졌다 일어나는 과정을 겪지 않을까요. 이런 시기에 다시 호프를 만나 스스로의 부족함을 확인하고 새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해요.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 혹은 인생을 살아가며 얻은 노하우가 있을 것 같아요. 
특별한 기술은 없지만 마인드 컨트롤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하루에도 몇 백 번씩 마음이 바뀌는 게 인간이잖아요. 특히 무대는 실시간으로 직접 노래하고 연기해야 하는 공간이니 굉장한 두려움과 잡념들이 배우를 방해해요.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해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수많은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죠. 그래서 언제나 마음을 다잡는 것에 집중하려고 해요. 

어떤 기술보다 어려운 일인 것 같은데요? 
모든 건 지나가게 되어 있어요. 나만 힘들고 지친다는 생각에 좌절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과 고통을 안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저의 쉼터이자 버팀목은 성경과 믿음이에요. 아무리 힘든 상황에도 저를 지지해준 힘이죠. 타국에서 둥지를 틀고 살아 남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나를 지켜주고 옳은 길로 인도해주는 믿음이 있어서 가능했어요. 뿌리가 단단히 자리잡은 사람은 쉽게 넘어지지 않아요. 아무리 좋은 기둥을 세워도 뿌리가 튼튼하지 않으면 넘어지는 건 시간 문제예요. 

호프에게 원고는 자신의 결핍을 채워주는 존재라고 볼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잃었던 것들을 보상해주는 존재는 원고뿐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원고를 끌어 안고 살아왔을 거예요. 하지만 원고는 자기 결핍을 채워주는 존재가 아니에요. 작품에서 K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원고는 끝없이 자신을 버리고 태우라고 말해요. 이제 그만 호프의 진짜 인생을 찾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말하죠. 결국 호프의 손을 떠나는 K는 ‘수고했어, 충분해. 여전히 늦지 않았고 넌 살아냈어’라며 호프를 위로해요. 사실 한 번 보고 이해하기 쉬운 작품은 아닌 것 같아요. 계속 곱씹어 보게 만들기 위한 의도가 담긴 것 같기도 하고요. 관람 전에 시놉시스를 통해 캐릭터와 배경을 파악한다면 더 재밌고 쉽게 볼 수 있을 거예요. 

K가 호프에게 해주는 말들은 결국 호프가 스스로에게 하고 싶었고,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맞아요. ‘괜찮다’라는 말의 힘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일본어로는 ‘だいじ ょうぶ(다이죠부)’라고 하는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에요. 배우로서 너무 불안하고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이 한마디를 듣는 순간 눈물이 나올 정도로 위로 받는 기분이었죠. 말의 힘을 알게 되니 제 입에서도 무심코 이 단어가 나오게 됐어요. 그래서 일본의 지인들이 말하기를, 제가 괜찮다고 많이 위로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이제는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의도적으로 되뇌기도 해요. 

작품은 호프와 K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K를 맡은 김경수, 조형균, 백형훈 배우에 대한 인상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다들 노래하는 부분에 있어 탄탄한 기본기를 가졌고, 따뜻한 색깔을 가진 매력적인 친구들이에요. 각자의 장점들을 살려가며 깊이 있는 연기와 소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형균이는 재치있고 끼가 많으며, 순식간에 몰입하는 능력이 대단해요. 경수는 두 번째 시즌에 저와 함께 투입되며 가장 호흡을 많이 맞춰본 배우예요. 가지고 있는 힘이 너무 커서 조절해야 할 정도인데, 스스로 기가 막힌 완급 조절을 해내는 능력이 있죠. 지난 공연에 비해 확실히 편해진 것 같아서 좋은 긴장감이 들어요. 형훈이 역시 센스 넘치는 배우입니다. 원래 지닌 좋은 소리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방향을 잘 찾아가고 있어요. 성격도 더할 나위 없고요. 셋 다 좋은 배우들이라 K를 뽑는 기준이 인격인가 싶을 정도입니다.(웃음) 

얘기만 들어도 팀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느껴져요. 
분위기 좋아요. 혜경 언니(배우 이혜경)는 집보다 연습실이 더 좋대요.(웃음) 함께 하는 시간들이 정말 즐거워요. 오훈식 대표님이 <캣츠> 때 본 저를 잊지 않고 이렇게나 좋은 팀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해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게 큰 행운이에요. 

배우 김지현에게 <호프>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작품인가요. 

<호프>는 저의 자존감을 살려준 작품이에요. 무대에서 한국어로 노래하고 연기할 수 있다는 건 제 안의 근본적인 DNA를 되살리는 일이거든요. 일본어로 할 때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들어요. 내 나라의 언어로 무대를 채우며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행복을 맛보고 있어요. 거울 속 분장한 모습은 깜짝 놀랄 정도로 낯설지만, 음악과 메시지가 가지는 힘이 정말 큰 좋은 작품이라 너무 행복해요. 

작품의 부제가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입니다. 김지현 배우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써 내려가고 싶나요. 
인생이 오직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받은 사랑을 최대한 많이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요.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사람도 얻은 것을 모아두기만 하면 빛날 수 없어요. 가진 게 없어도 베풀고 나눠야 새로운 걸 얻을 기회가 생기죠. 배우로 활동하며 쌓은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저 또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습득하며 내 일에 충실할 때 한계 없는 성장을 이룰 거라고 믿어요. 나태해지지 않고 주어진 것들을 잘 해내고 싶습니다. 

호프처럼 인생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위로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이지만,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에너지가 나온다는 걸 잊지 않고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뭔가를 꼭 해야만 힘이 되는 건 아니에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수 있거든요. 다른 이들이 불러주지 않아도, 스스로 어떤 환경에 몸담을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뮤지컬 <호프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기간 2023년 3월 16일-2023년 6월 11일
시간 평일 20:00 | 주말 14:00 18:00
장소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가격 R석 8만 8천원 | S석 6만 6천원 | A석 4만 4천원
문의 1577-3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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