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사각형의 색면, 몽롱한 분위기의 안개 낀 것 같은 외각 선들 모든 구상적 이미지가 사라진 마크 로스코의 추상회화들은 그가 생애 동안 겪은 급격한 화풍 변화들 중 마지막으로 종착지였습니다. 그의 그림은 여러 대중들의 사랑받았지만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단순히 유행처럼 사람들에 퍼져나가며 소비되는 것을 우려했습니다.
그는 평소 부자들의 장식품이 되는 예술계의 현실을 비난해 왔습니다. 그에겐 경제적으론 어려워 질지라도 순수한 예술성을 지킨다는 어떤 우월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런 예술에 대한 긍지와 자신감은 예술적 가치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성공까지 가져다주었지만 그가 그토록 비난해 왔던 예술계의 기득권층에 속하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런 자신의 성공에 따른 혼란에 큰 고통이 따랐던 것일까요? 1970년 2월 25일 그의 갑작스러운 자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는 주방에서 내복용 셔츠에 긴 파자마를 입고 바닥에 팔을 펼친 채 흥건한 피 위에 누워있는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양면 면도 칼로 양 팔을 그어 자살했습니다. 이런 그의 끔찍한 죽음을 발견한 것은 그의 조수 올리버 스타인 데커였습니다. 조수의 신고로 경찰과 앰뷸런스가 도착했고 병원으로 옮겨진 후 그의 공식적인 사망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로스코의 사망을 언론에 보도하기 전 지인들에게 그의 죽음을 알린 건 테오도로스 스타모스, 로스코 재단공동 디렉터 겸 유언 집행자였습니다. 하지만 의문스럽게도 그는 조수 올리버가 로스코를 발견하기보다 더 이른 시간에 다른 사람에게 전화해 그의 죽음을 알리기도 했고, 그가 양팔을 면도 칼로 그어 자살한 것이 아닌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로스코의 시신을 자신이 발견했으며 침실도 엉망진창이었다고 횡설수설했습니다. 하지만 로스코가 죽은 후 도착한 경찰은 침실은 말끔하게 정리된 상태였다고 말했습니다.
로스코의 죽음은 그의 지인들도 의아하게 여겼습니다. 물론 당시 그의 심리적 상태가 안정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내와 자식들과 별거 중이었고, 그의 동료이자 친구들이 최근 건강과 사고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소 솔직하고 냉철했던 그가 유언장 하나 없이 세상을 떠난 것은 모두가 믿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로스코의 장례식 이후 그의 아내였던 메리 엘렌 로스코는 남편의 소속 갤러리였던 말보로 갤러리에서 남편의 작품과 유산을 두고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 같다고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로스코는 죽지 전 798점의 작품(액 3200만 달러의 가치)을 남겼지만 그의 자녀들과 부인이 받을 수 있는 작품은 1점도 되지 않았습니다.
로스코가 남긴 작품들은 모두 말보로 갤러리에서 헐값에, 부당계약으로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유언집행자를 자처하며 로스코의 100여 점을 시장 가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은 180만 달러에 사 갔으며 이마저도 20만 달러는 선금으로 지불하고 나머지는 12년간 무이자로 지불하는 부당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로스코의 딸이었던 케이트 로스코는 세상에서 묻혀버릴 수도 있었던 이 사건을 소송을 통해 면밀히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재판을 통해 자신들을 대신했던 유언집행자 3인과 말보로 갤러리 측은 다양한 방법으로 로스코의 재산을 사취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들은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의 은행구좌를 통해 돈을 세탁하고 로스코가 사망하기 전 작품을 평가 절하시켜 그의 작품을 헐값에 매입한 후 그가 사망한 후 작품의 가치를 더욱 높여 5배 이상의 판매 수익을 노렸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심지어 법원 소송으로 로스코의 작품 판매를 금지당했지만 그들은 지속적으로 로스코의 작품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법원은 로스코의 가족들에게 말보로 측에 900만 달러의 피해 보상금과 비용을 지불하고 나머지 658점을 반환할 것을 판결했습니다. 유언집행자였던 3인은 심판받았고 말보로와의 억지 계약은 결국 폐지되었습니다. 말보로 갤러리의 대표 프랭크 로이드는 판결 배상금 중 1/3만을 로스코의 가족들에게 지불하고 몇 년간 도망자 신세로 지내다가 1998년 4월 사망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비하인드스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