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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지지 않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관한 5가지 비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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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4. 12:106,041 읽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자신의 공책을 통해 예술, 자연 그리고 그가 생애 동안 관찰하고 발명한 모든 것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의 공책에 남은 기록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묘사되곤 합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 소설 등에서 비밀이 가득한 예술가, 천재적 발명가,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는 괴짜 같은 것들로 말입니다. 

그는 공책에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는 거의 쓰지 않았지만, 공책에 남은 그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미래 지향적인 실험들은 그가 살던 시대의 사회적 관습과 철학에 상관없이 열성적이고, 호기심 가득한 인물임을 보여줍니다. 자연의 법칙에 관한 끈질긴 관찰은 비행기의 설계로 이어졌고, 시신을 해부하며 기록한 인체 해부도는 생동감 넘치는 인간을 묘사한 예술 작품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그의 전설적인 면모 뒤로 숨겨진 여러 이야기들을 풀어갑니다.

1.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사생아로 태어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52년 4월 15일, 피렌체에서 유명했던 공증인 피에로 다빈치와 피렌체에서 약 30킬로나 떨어진 작은 마을의 농민 카테리나 리피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둘은 법적으로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출생은 그렇게 축복받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의 출생에 관한 법적 결함 덕분에 아버지의 후계자로서 성장하지 않고, 스스로 탐구하는 예술가가 될 수 있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만약 그가 정식 후계자로 인정되었다면 아버지의 공증인 사업을 물려받아 역사의 기록처럼 예술가, 건축가, 발명가로서의 업적은 이룰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성 안나와 성모자>

2.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독학으로 지식을 쌓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정식 후계자가 성장했다면, 그는 고전과 인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라틴어 학교에 보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호기심에 이끌려 상업수학을 배우기 위해 잠시 동안 지역에 있던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 외엔 대체로 독학을 통해 지식을 쌓아 갔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그의 성향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경험과 관찰, 그리고 실험을 통해 학습하는 자신만의 공부법을 개발했습니다. 그는 그런 자신의 공부법을 자랑 스러 하기라도 하듯 "경험의 발견"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이따끔씩 스스로 자신을 "문맹인"이라 칭하며 양면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주변의 평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공책에"사람들은 내가 어떤 책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묘사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라는 기록을 통해 그러한 평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3.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업적은 생애 동안 인정받지 못했다.

<수태고지>

현재는 그가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유명한 인물들 중 한 명으로 여겨지며 그의 엄청난 재능들에 대해 완전히 인정받았지만, 그의 생애 동안은 특별히 그러한 업적을 누리진 못했습니다. 그가 미술가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작업실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던 시절엔 이미 스승이었던 베로키오의 실력을 훨씬 앞질렀지만 그에 관한 평판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스승이었던 베로키오도 붓을 놓겠단 결심을 할 정도로 레오나르도의 실력을 인정했지만 당시 레오나르도의 탕아스러운 면모는 그런 그의 실력에 대한 평가를 잠식시킬 정도였습니다.

이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77년, 긴 시간 끝에 자신의 작업실을 열고 세 개의 의뢰를 받았는데, 그중 한 개의 의뢰는 시작도 하지 못했고 두 개의 의뢰품은 기간 내에 끝내지 못해 오픈하지 안된 그의 작업실은 문을 닫아야만 했습니다. 

<동방박사의 경배>

그의 생애 후반에 주요 가문의 저명한 후원가들과 가톨릭 교황들, 프랑스 왕들은 그에게 예술 작품과 건축설계, 군사 무기 개발 의뢰를 했지만, 그가 남긴 수백 가지 구상물 중 실제로 그것들이 구현된 기록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그가 처음 작업실을 열었을 때처럼 의뢰받은 대부분의 작업들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15개의 작품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중에서도 <수태고지>, <동방박사의 경배>, <성 아나와 성 모자> 심지어 <모나리자>까지 미완성된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작품들을 대부분 미완성으로 남겼던 요인은 여러 가지로 추측되지만 대부분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그의 왕성한 호기심 때문이라는 추측과 그의 손에 찾아온 장애 때문에 작품을 그리는 생산성이 떨어졌다는 추측들입니다. 

<모나리자>

이후 1550년,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에 관한 전기를 썼던 조르조 바사리가 레오나르도의 삶에 관한 책을 출판했을 때, 레오나르도의 업적은 큰 찬사를 받았지만 이미 그는 1519년, 세상을 떠난 후였습니다. 

4.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림만큼이나 건축 설계와 엔지니어링에 몰두해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30세에 가까워졌던 1480년대 초, 그의 그림에 대한 경력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으론 더 이상 생계를 유지할 수 없던 그는 밀라노 공작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또 다른 면모를 어필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건축과 엔지니어링 기술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실제로 공작을 위해 공공 건축과, 다리, 전쟁에 필요한 무기를 설계할 수 있었고 공작은 그의 그런 기술력을 극찬했습니다.

레오나르도의 전쟁 무기 설계안

약 20년 후인 1502년에 레오나르도는 군 기술자로 합류하여 전쟁에 쓰일 무시무시한 무기들을 설계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설계 안들 중 실제로 실현된 결과물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5.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거울로 봐야 읽을 수 있는 거꾸로 된 기록들을 남긴 이유는 그가 왼손잡이였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을 써서 거울을 통해서 봐야 그의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있도록 기록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가 그런 복잡한 방법을 채용한 이유는 그의 아이디어들을 보호하기 위한 보완 장치로 추측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추측들은 그간 레오나르도에 관한 신비감을 더욱 부추겨 왔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 중 일부

하지만 실제론 레오나르도는 왼손잡이로 태어나 후천적 양손잡이로 성장했지만, 글을 쓸 때는 여전히 왼손을 이용해 왔다는 것입니다. 당시엔 펜촉에 잉크를 찍어 글을 썼기 종이 위에 묻은 잉크가 마를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때문에 일반적인 방식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을 적었다면 왼손잡이였던 그가 글을 쓸 때, 잉크가 모두 번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를 방지하기 위해 그는 글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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