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M대우, 10년도 안 되는 짧은 존속 기간이 애석하게 별 존재감 없이 대우와 쉐보레로의 전환을 준비하는 완충재 역할을 했던 브랜드였다. 사실상 수입차 브랜드가 돼버린 지금의 쉐보레를 보면 차라리 GM대우의 시절이 더 나았다고 회고하는 사람이 있을 법 하지만, 사실 GM대우 시절이나 지금이나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GM대우는 생각보다 참신한 시도들을 많이 했었다. 모회사인 GM의 폭넓은 라인업들을 이용해 다른 브랜드에선 시도하기 어려운 '로드스터'를 국내 도입하는가 하면, 크기 하나는 남부러울 것 없었던 대형 차들을 적절히 내수화시켜 판매하기도 했다. 물론 수입차의 한계로 좋은 판매고를 올리진 못 했으나 현재의 삭막한 국산차 라인업을 떠올려 보면 소비자들에겐 색다른 선택지를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차량들이었다. 강매하는 것도 아닌데 판매한다고 나쁠 건 없지 않은가.
이번에 다뤄볼 차량 역시 GM대우의 실험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던 차량 중 하나이다. 이미 비슷한 급의 자사 차량이 판매되고 있었음에도 굳이 투 트랙을 감행했으며, 경쟁 차량에 비해 현지화 부족, 작은 크기로 누가 봐도 판매량에선 호재를 누리기 어려운 차량이었다. 그렇다면 왜 GM대우는 이 차량을 출시한 것일까?
III 한국 생산, 유럽 판매. (2006, OPEL ANTARA (LO7)
이 차량의 기원은 무려 199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에서도 서서히 올라오던 SUV 열풍으로 인해 SUV 라인업의 필요성을 느끼던 오펠은 (현재는 상용차와 픽업트럭을 생산하고 있는) 이스즈의 MU를 유럽형으로 로컬라이징 해 판매를 하기로 결정한다. 한창 북미를 중심으로 대중차 사업에 뛰어들고 있던 이스즈는 이런 결정을 환영했으며, 마침 모기업인 GM 역시 이스즈와 기술협약 관계에 있었기에 일사천리로 출시가 되게 된다.
그렇게 출시된 프론테라는 리뱃징 차량 치고는 드물게 2세대에 걸쳐 판매되면서 2004년까지 판매되었다. 하지만 이스즈가 대중차 사업에서 사실상 철수를 선언하며 후속 모델이 불투명 해지자 오펠은 비로소 자신들의 고유 모델을 개발하게 된다. 프로젝트명은 'C-105 (LO7이라 표기한 곳도 존재.)', 윈스톰 (C-100)의 형제 차임을 보여주는 프로젝트명이다.
그렇게 출시가 된 차량의 이름이 바로 '안타라', 윈스톰과 같은 'GM 세타 플랫폼'을 탑재한 중형 SUV인 안타라는 2005년에 공개된 '오펠 안타라 GTC' 컨셉의 디자인을 답습한 모습에 오펠의 메인스트림인 유럽 시장을 의식한 작은 몸집, 마지막으로 유럽 컴팩트 SUV 특유의 주행감각을 담아 출시되며 2015년까지 생산되게 된다.
III 유럽차를 그대로 한국에 내던진 GM대우, (2008, C105)
재미있는 사실은, 유럽 브랜드의 차종임에도 불구하고 생산은 한국의 GM대우 부평공장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당시 안타라는 유럽 지역의 물량 (오펠 안타라) 이외에도 호주의 (홀덴 캡티바, 안타라의 리뱃징 버전) 물량도 담당해야 했기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물량을 주로 담당했던 한국의 부평공장에서 생산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안타라의 생산을 담당하게 된 GM대우는 사실상 마음만 먹으면 안타라를 바로 한국 시장에 투입시킬 수 있게 되었다.
안타라의 해외 출시 이래로 윈스톰 동호회와 GM대우 내부에서는 안타라의 국내 출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리고 2008년, 출시 2년 차에 접어든 윈스톰이 판매량에서 서서히 부진을 보이자 마침 해외 판매가 순조롭지는 못했던 안타라의 제고를 팔아치워야 하기도 했던 GM대우는 드디어 안타라를 바로 국내에 출시시키게 된다.
이름은 윈스톰 맥스 (winstorm maxx), 기존에 한국에서 팔리던 형제 차인 '윈스톰'의 이름에다 '맥스'라는 서브네임이 붙게 되었다. 물론 GM대우도 양심은 있기에 키, 도어스커프 같은 소소한 부품들을 재설계했다. 허나 오펠의 로고 형상에 맞춰 디자인된 그릴에다 GM대우의 로고를 억지로 붙인듯한 변경 흔적들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III 수입차이고 싶은 국산차.
GM대우는 윈스톰 맥스가 윈스톰의 윗급이라 주장했으나, 정작 기존 윈스톰에 비해 전장과 전고는 각각 60mm, 15mm씩 작았다. 게다가 파워 트레인은 가솔린이 아닌 디젤이었다. 1,991cc의 직렬 4기통 SOHC 엔진을 장착해 최대 150마력, 토크 32.7kgm을 내는 등 무난한 성능을 내었으나, 당시 경유의 가격이 가솔린보다 비싸 디젤 차량의 판매가 주춤했던 시기였음을 감안하면 당시 윈스톰 맥스의 파워 트레인은 판매의 디메리트 요소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다른 경쟁차에 비해 낮은 연비 (실 주행 연비)는 이를 더욱 부각시켰다.
또한 전륜과 4륜을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존 윈스톰과 다르게, 윈스톰 맥스는 오로지 4륜 구동 단일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서스펜션은 국내 최초로 '사이드 로드 스프링'을 전륜 서스펜션으로 세팅하고, 후륜은 독립 현가식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써 경쟁차들 보다 유럽 지향적인 주행성능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현재에 들어서는 보편화된 자동 위치 조절 HID 헤드램프와 도로 상태에 따라 전륜과 후륜의 구동력을 조절하는 온디맨드 4륜 구동 시스템, 하차 시에 승차 하중에 관계없이 후륜 차고를 유지해 주는 '자동 차고 유지 장치' 등 여러 첨단 장비들을 이용할 수 있었다.
나름 '고급 SUV'를 표방했기에 겉으로는 첨단 사양이 여러 장착된 것으로 홍보했으나, 사실상 가장 필요한 부분은 현지화를 거치지 못했었다. 그중에서 준중형, 가격으로 따지면 중형 SUV와 경쟁해야 할 차량이지만 동급에 비해 턱없이 빈약한 옵션은 윈스톰 맥스에서 가장 큰 단점이었다. 내비게이션 대신 구시대적인 트립 컴퓨터가 달린 것이 그 예시. 당시 GM대우에서도 내비게이션을 추가할 계획이 있다고 했었으나 끝내 이뤄지진 못했다. 이외에도 투박한 실내 디자인, 높은 가격과 2개뿐인 트림 (고급형 2,833만 원, 최고급형 2,996) 등 원활한 국내 판매는 고사한 행보를 선보였다. 참고로 이는 GM대우가 수입해 온 차량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점이다.
물론 GM대우가 완전 손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오펠이 관여한 메커니즘은 전형적인 유럽 SUV의 주행 질감을 보여주었다. 물론 국내용은 서스펜션을 소폭 소프트하게 조절하였으나, GM대우에선 이 점을 적극 활용해 드라이빙 측면에서의 우수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실질적인 경쟁 차인 QM5가 아닌 수입 SUV, 혼다 CR-V와의 비교시승회를 실시하며 GM은 이 차가 수입차와 비교되길 원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결국 윈스톰보다 더 작고, 더 비싼 국산차로 보일 뿐, 판매량에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이 비운의 차량은 '낙화유수'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이란 이 사자성어의 뜻처럼, 이 차량이 단종된 지 몇 달이 채 안 돼 GM대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판매 당시에도 실적이 저조했으며 차량 자체의 임팩트도 크지 않았으나, 현재의 르노삼성 이전에도 유럽 성향의 국산차들을 생산/판매했다는 것 자체로도 이 차량을 기억할 가치는 충분하다. 2000년대 중후반, 원가 절감을 중시한 GM 아래 현지화라고는 전혀 하지 않은 날것의 SUV였던 윈스톰 맥스는 총 3,141대를 판매하고 단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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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CAR GO! 공동 집필: 브릴리언트 에디터, 김동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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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4 III CAR 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