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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벽 덕문에 자신의 죽음을 피할 수 있었던 마르크 샤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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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19:107,409 읽음

마르크 샤갈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 마르크 샤갈은 특유의 몽환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입니다. 그의 전성기는 얇고 길게 버텨왔던 그의 생애만큼이나 늦게 찾아왔지만 그의 방랑벽 때문에 자신에게 드리우는 죽음의 그림자를 언제나 모면하며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방랑벽이 생긴 것은 그의 기억 속에 찾아온 첫 생명의 위협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스스로 말합니다. 그의 어릴 적, 자신이 태어났던 작은 도시의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장터에서 불이 나는 사건이었습니다. 작게 타오른 화염은 주변의 집들로 삽시간에 퍼져나가 시장 구역 전체가 불길로 뒤덮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샤갈을 살리기 위해 그를 부둥켜안고 작은 도시 안의 안전한 곳을 찾으려 이곳저곳 뛰어다녔습니다. 샤갈은 이날의 사건 때문에 어떤 무의식 속에서 항상 불안을 느끼며 방랑 생활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샤갈과 그의 아내 벨라

하지만 그가 느끼는 어떤 위험에 대한 불안감과 그를 피하는 감각은 언제나 그의 삶을 오래도록 이어가도록 도와주었습니다. 1917년, 여러 나라를 거치며 미술을 공부하고 사랑하는 여인까지 얻었던 샤갈은 고향인 러시아로 돌아와 자신의 작품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마을과 나>

당시엔 러시아 혁명이 한창이었고 그는 비텝스크 도시의 미술학교를 감독하고 혁명 축제를 조직하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샤갈의 기획에 따라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했고 시 위원회 건물 위에는 샤갈이 그린 깃발이 올려졌습니다. 몇 년 후 소련 당국은 화가와 시인, 영화감독 등 예술가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많은 예술가들이 끔찍한 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샤갈은 이 일이 일어나기 전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봉쇄된 러시아에 어떤 위험을 감지하고 아내와 함께 고향에서의 생활을 정리한 후 1922년 베를린을 거쳐 1923년 파리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세계대전 중 그린 <하얀 십자가 처형>

하지만 유대인이었던 그에게 독일군의 위협은 그가 지내던 프랑스 파리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습니다. 1941년 2차 세계대전이 이러났고,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의 나치는 모든 유대인을 잡아들였습니다. 샤갈도 이러한 위협에서 안전하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그가 감지한 위험은 나치의 행군보다 빨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을 모두 챙기지도 못한 채 뉴욕으로 망명을 시도했습니다. 

미국으로의 망명은 성공했지만 힘든 이주 생활에 그의 아내는 감염병에 걸리고 말았고 의료 약품의 부족으로 제대로 된 감염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아내 벨라는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는 아내를 잃은 충격에 멸 달 동안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가 그의 아내를 회고하는 작품으로 다시 활동을 재기합니다.

벨라를 떠나보낸 후 그린 <촛불 결혼식>

샤갈은 어릴 적 한 집시 여인에게 죽음을 예언 받았었지만 그의 방랑벽은 여인의 예언보다 더 높은 곳에서 스스로를 지켜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홀로 남은 그는 프랑스로 다시 이주해 같은 처지의 슬픔을 이겨낸 유대인 여성과 결혼을 했고 아내 벨라가 죽은 지 8년 만에 생활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화가로서 할 수 있는 자신의 소명을 다한 후 1985년, 세상의 모든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후 98세 나이에 편안하게 눈을 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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