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피터팬에게
배우 송유택이 뮤지컬 <98퍼센트>에서 로봇 엑스를 연기하며 인간의 완전함에 대해 말한다.
editor 조은화 photographer 김진호
세계 종말을 주제로 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뮤지컬이 탄생했다. <98퍼센트>는 전쟁으로 인해 마비된 세상에서 인명을 구하고 평범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의 이야기. 작품 속 ‘엑스’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만든 초월적인 전투능력을 가진 존재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탄생한 것이 전투 로봇이라니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데, 문제는 엑스의 마지막 승인 테스트가 실패했다는 점이다. 송유택은 바로 이 엑스를 연기하며 실험이 실패한 원인과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연기한다. SF장르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자신과 관객을 모두 납득시키기 위한 과정이 되려 즐겁게 느껴졌다고. 이번 작품을 통해 송유택이 가장 고민한 부분은 ‘완벽’과 ‘완전’의 차이였다. 인간을 훨씬 뛰어넘는 완벽에 가까운 존재가 자신의 불완전함을 채우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이 마치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단면처럼 여겨진다는 것. 맡은 캐릭터를 통해 인생 전반에 대해 고민하는 배우 송유택을 만나보았다.
요즘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나요.
최근 <여신님이 보고 계셔>를 잘 마무리했고, 영상 일과 드라마 촬영이 진행 중이에요. 바쁘게 달리다 보니 벌써 올해의 1분기가 끝났더라고요. 원래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나이를 먹으며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 늘어나는 만큼 바쁘게 살 필요성을 느낀 것 같아요. 미래를 대비하려고 개미처럼 지내고 있습니다.(웃음)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기반으로 미래에 일어나는 일들을 그리는데, 현재를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 얼마나 잘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있었어요. 과학적 기술이나 미래에 대한 정보를 쉽게 인식하고 납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이 즐겁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작품의 배경과 상황이 이해가 돼야 저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걱정 반, 기대 반이었던 것 같아요.
연습 과정은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나요.
창작 초연의 매력이 매끄럽게 진행되다가도 다시 반환점으로 돌아오는 등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에요. 작품의 등장인물들과 비슷한 것 같아요. 3명의 인물이 기나긴 전쟁을 멈추기 위해 각자의 과정을 겪거든요. 작품을 잘 만들어서 올리겠다는 하나의 목표 아래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각자의 생각과 해석이 다른 경우도 존재해서 서로에게 자극받기도 하고, 배움도 얻고 있어요. 연령대로 치면 배우들 중 제가 중간 위치인데, 새싹 같은 후배들의 열기에 자극받는 동시에 선배들의 노련미를 배우기도 해요.
이번 작품의 특별함은 무엇인가요.
소극장의 작은 무대인데도 시공간의 변화를 다채롭게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관객들의 이해를 돕고,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도록 잘 표현하는 것이 연출팀과 배우들의 공통된 목표입니다. 여러 가지 변화구에 주목한다면 작품의 서사를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좋아하세요?
전혀 좋아하지 않아요.(웃음) 저는 드라마 좋아합니다. 주어진 시간 내에 인물의 감정 변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으니까요. 저는 SF나 판타지 장르를 오락적으로 보게 되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그런 장르에도 좋은 작품들이 많지만 저의 연기와 정서에 자양분이 되는 건 드라마 장르인 것 같아요.
작품과 캐릭터 ‘엑스’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엑스와 그를 만들어 낸 '주피터', 정부군 소속의 군인 '이든'이 등장합니다. 세 인물은 모두 전쟁을 멈추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맡은 엑스는 전쟁을 멈추고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예요. 우월한 요소들과 과학적 기술을 융합해 만든 완벽에 가까운 하이브리드 로봇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마지막 승인테스트에 실패하고, 엑스는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실험이 실패한 원인을 찾고자 해요. 반면 이든은 실험실에서 탈출한 엑스를 잡아야만 전쟁을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종적인 도착지는 같지만, 목표로 향하는 길목에서 거쳐야 하는 우선순위가 다르죠. 두 캐릭터의 이해관계에서 오는 대립과 마찰을 볼 수 있어요. 재밌는 점은 ‘엑스’가 사실 저에게 부여된 이름이 아니라는 거예요. 최종 테스트에서 실패했다는 뜻으로 일지에 X라고 표시한 것이 저에게 새겨집니다. 그래서 극 중 주피터와 이든은 저를 엑스라 부르지 않아요. 그저 표식일 뿐이죠. 이름을 불리지 않는 캐릭터를 맡는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정답이 없는 문제군요.
그렇죠. 보시는 분들도 선악을 따지기에 앞서 원하는 가치관을 따라가면 좋을 것 같아요.
엑스를 연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했나요.
‘완벽’과 ‘완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야 했어요. 단어의 어감과 실질적인 사용을 생각해 보면, 주어진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해 결과물을 냈을 때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완벽하다고 해서 완전해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주피터는 엑스를 완벽한 존재로 만들었지만, 엑스는 스스로가 완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완벽하다는 말이 와닿지 않아요. 완전해지기 위해 자신이 실험에 실패한 원인 혹은 이끌림을 쫓아가는 과정들을 그리게 됩니다. 이 미묘한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을 겪었어요. 엑스라는 캐릭터를 파고들수록 제 인생에 대해서도 곱씹어 보게 됐어요. 누군가 완벽하다고 평가할지라도, 완전한 사람은 어떤 존재일지 생각해 보게 됐죠.
그럼 엑스가 찾고자 하는 건 자아 혹은 정체성인가요.
그럴 것 같은데, 확신할 수는 없어요. 그것조차 엑스인 것 같아요. 그래서 엑스라는 명칭을 얻게 된 과정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엑스’는 이 캐릭터를 지칭하는 대명사 같아요. 실제로 부여된 이름이 아니라서 이 캐릭터를 더 흥미롭게 볼 수 있고요. 너무 어렵죠?(웃음) 작품을 보시면 정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완벽하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송유택 배우가 가장 완벽하고 싶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일할 때 완벽해지고 싶죠. 관객들이 없으면 무대에서 공연하는 의미가 사라지거든요. 공연을 보기 위해 시간 내서 찾아 주시는 게 굉장히 감사한 일이라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 완벽한 공연을 보여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다만 코로나 혹은 자연재해 같은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예측할 수 없는 경우의 수를 제외하고는 완성도 있는 공연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아쉬움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연기를 하는 중에는 만족스럽다가도 자려고 침대에 눕기만 하면 아쉬움이 밀려와서 이불을 차게 돼요.(웃음)
그럼 자신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캐릭터에 따라 이미지가 확연히 달라진다는 점이요. 마치 슬라임처럼요.(웃음)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지만 얼굴 근육과 표정을 거침없이 쓸 수 있다는 게 저의 장점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전달력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저도 공연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대사와 가사가 들리지 않으면 몰입하기 쉽지 않거든요. 관객으로 경험한 부분을 놓치지 않고 무대 위에서 활용하려고 해요. 물론 죽어가거나 격한 감정을 표현할 때처럼 발음이 또렷하지 않아야 하는 상황도 있어요. 그럴 때는 표정이나 동작으로 장면의 맥락이나 뉘앙스를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계속 대화하다 보니, 노력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타고난 게 많이 없어서 그런가 봐요. 연기와 노래, 춤까지도 정말 많이 노력했거든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걸 잘할 수는 없잖아요. 저는 좋아하는 만큼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해야 실력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춤도 연기도 좋아하는 만큼 많은 시간을 들였기 때문에 지금처럼 자리 잡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자극받는 순간이 있는데, 아직도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뜻인 것 같고요. 공연을 자주 보는 이유도 관람을 통해 얻는 배움이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활동하는 배우였다면 영상 매체를 많이 보는 사람이 됐을 거예요. 공연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현장감이 아직도 저에게 영향을 주는 연료입니다.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연출님의 의도와 비슷한 것 같은데, 모두 완벽을 추구하지만 실제 완벽한 사람은 없다는 걸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100%를 향해 달려가지만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거죠. 사실 98%라는 수치를 봤을 때 부족한 2%가 무엇일지 생각하게 되잖아요.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미 98%가 채워졌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가치예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부족한 2%를 채우려고 애쓰고 고민하죠. 현재 나의 목표에 얼마나 다다랐는지 알 수 없지만 이미 품고 있는 역량만으로도 굉장한 가치를 갖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쉽게 말하면 ‘물이 반이나 남았네’와 ‘물이 반밖에 없네’의 차이. 한국인들이 유독 부족한 수치에 집중하는 것 같기도 해요. 빠른 성장과 빠른 결과를 추구하는 민족이잖아요. 그런 성향의 장점도 있겠지만 너무 조급해할 필요도, 돌아볼 여력도 없이 달려갈 필요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 송유택은 2%와 98% 중 어떤 수치에 집중하는 편인가요.
예전에는 부족한 2%에 집착했던 것 같아요. 오디션을 예로 들면, 제가 완벽하게 준비해도 떨어지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사실 결과는 저의 손을 벗어난 일이잖아요. 그런 과정이 반복되니 오히려 오디션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워졌어요. 오디션을 위한 과정과 마음가짐이 알차고 유익해야 성장할 수 있는데, 이전에는 합격이라는 결과를 내야 성장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최근에 본 오디션들은 결과에 상관없이 만족스러웠습니다.
콘셉트 프로필의 엑스는 소년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실제 어린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캐릭터인가요.
의도한 부분은 아닙니다. 다만 프로젝트가 실패함과 동시에 실험실에서 탈출하고, 쫓기는 입장이 되다 보니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 비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나이가 부여되지 않은 캐릭터라 태형이(배우 김태형)와는 띠동갑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캐릭터를 맡게 됐어요. 염치없어 보일까 봐 걱정이에요.(웃음)
그렇지 않아도 요즘 20대 배우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어요.
예전에는 잘하는 친구들에게 내 자리를 빼앗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이제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났어요. 나이 많은 선배님들의 연기에 감동받으며 그 나이 때만 할 수 있는 연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점점 나이 먹는 게 기대가 됩니다. 저도 연기의 단계를 순차적으로 밟아가고 싶은데, 무대에서는 자꾸 어린 역을 맡게 되더라고요.
어린 연령대의 캐릭터도 너무 잘 어울리는걸요?
요즘 위기감을 느끼고 있어요. (웃음) 운동도 열심히 하며 관리 중입니다.
벌써 데뷔 13년 차입니다. 변화를 느끼는 부분이 있나요.
경력이 쌓일수록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라 목표를 향해 경주마처럼 달리는 경향이 있었어요. 결과적으로는 굉장한 성취감을 느꼈지만, 뒤를 돌아보면 곁에 있던 사람들이 떠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인간적인 면보다 배우로서, 공적으로 남는 것들이 많아서 아쉬웠어요. 사람을 포함한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아서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졌다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선배들도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고요. 사람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끝없이 무언가를 배우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동생들 보면 부러워요. 아직 배움에 대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니까요. 무엇보다 겁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 외에도 영상작업을 꾸준히 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뮤지컬 <미아 파밀리아>의 ‘카더라’ 뮤직비디오 영상 연출과 편집을 맡으셨더라고요.
뮤지컬 <베르테르>에 참여했을 때 지금 몸담고 있는 영상 회사 대표님을 만나게 됐어요. 겹치는 지인이 많아서 원래 아는 사이였는데, 여러 번 만남을 가지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저의 가능성을 보셨나 봐요. 저의 생각과 취향 등을 영상에 담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한번 배워보지 않겠냐고 말씀해 주셔서, 직원처럼 일하기보다 정말 배워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배우 활동과는 다른 자극과 에너지를 얻기도 하나요.
저와 같은 일을 하는 배우들을 카메라로 보게 되는데, 영상 감독으로서 느끼는 것과 배우로서 느끼는 것을 같이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리고 처음 뵙는 분이나 저보다 훨씬 경력이 많은 선배님들과 함께 해야 할 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공적인 자리에서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을 많이 배워가고 있어요. 배우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을 거쳤는데, 일종의 회사원으로 비즈니스를 통해 관계를 쌓는 법은 처음이라 배울 수 있는 점이 많습니다.
워낙 다재다능해서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을 것 같아요.
걱정투성이에요. 운 좋게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배우로서 커리어를 쌓아 왔지만 제 또래의 남자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인생을 꾸려 나가는 걸 보며 ‘내가 피터팬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원더랜드를 벗어난 세상에서는 내가 평균 이하일 수도 있고, 잘 모르는 세상이 있는 것 같았죠. 후회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아직은 스트레스받지 않고 행복을 즐기며 사는 것이 저의 1순위거든요. 만약 부모님께서 남들과 비슷한 인생을 강요하셨다면 저도 생각이 많아졌을 텐데, 묵묵히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 스트레스받아도 금방 푸는 편이기도 하고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 기준에서 좋은 건 좋다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기준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이 있다는 건, 살아오면서 많은 후회도 있었겠지만 멈추지 않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뮤지컬 <98퍼센트>
기간 2023년 4월 25일-2023년 6월 25일
시간 평일 20:00 | 토 15:00 19:00 | 일 14:00 18:00
장소 드림아트센터 4관
가격 전석 6만5천원
문의 02-3496-8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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