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와 미천한 사람들
역사상 가장 흥행한 뮤지컬 TOP5에 손꼽히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국내에서는 올해 10년 만에 돌아온다. 뮤지컬을 감상하기 전, 원작 소설을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지만, 막상 책장을 넘기면 워낙 방대한 분량의 이야기라 막막하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빅토르 위고가 어떤 이유로, 어떤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이 작품을 집필했는지만 살펴보는 건 어떨까.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다 폭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editor 이윤슬
혁명의 역사 가운데
프랑스혁명은 1789년부터 1848년까지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1789년 혁명의 결과로 프랑스 제1공화국이 수립되고 루이 16세는 단두대에서 죽음을 맞이했지만, 프랑스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장 발장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감옥에 갇힌 해는 1796년. 시민들의 가난한 삶과 그들을 보호해 줄 테두리가 전혀 없었던 시대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시간이 흘러 1815년, 계속된 탈옥으로 형량이 늘어나 19년간 복역을 한 장 발장이 석방된다. ‘레미제라블’에서 1815년은 매우 중요하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며 나폴레옹 시대가 막을 내리는 분기점 같은 해이기 때문. 장 발장이 풀려나고 나폴레옹이 유배를 가며 새로운 시대가 열릴 서곡이 시작된다.
1823년, 장 발장은 신분을 속이고 마들렌으로 이름을 바꾸며 시장이자 공장주가 된다. 소설 속에서도 묘사되듯이 당시 프랑스에서는 곳곳에서 파업이 일어났고, 팡틴의 처지처럼 노동자들의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다. 당시 프랑스는 루이 18세가 재위하며 왕정으로 복고한 상태. 여전히 프랑스 시민들은 자유를 꿈꾸었고, 그 불씨가 남아 있었다. 1830년, 왕정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하원의원에 여럿 당선되었으나 당시 왕이었던 샤를 10세는 의회를 해산시켰고 이는 시민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왕족 중에서도 프랑스혁명을 지지했던 루이 필리프가 새로운 왕으로 추대되는데, 이것이 7월 혁명이다. 하지만 다시 왕정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루이 필리프와 귀족들, 입헌군주정을 요구하는 부르주아 집단, 공화정을 원했던 노동자와 하층민까지 사회는 더욱 어지러이 분열되었다. 거기에 산업혁명의 여파로 나빠진 경기와 1832년 창궐한 콜레라까지. 민중의 삶은 갈수록 더 나빠졌다. 그러던 1832년 6월 1일 공화주의 정치인이었던 장 막시밀리안 리마르크 장군이 콜레라로 사망했고, 공화주의자들은 6월 5일 그의 장례식에서 봉기를 일으키게 된다. 일명 ‘6월 봉기’다.
이 6월 봉기가 ‘레미제라블’의 가장 주요한 배경이다. 마리우스는 왕정을 엎기 위해, 장 발장은 마리우스를 구하기 위해 6월 봉기에 참가한다. 긴 프랑스 혁명의 역사에서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사건이 6월 봉기인 점을 주목해 보자. 부르주아들의 주도로 들고 일어선 나머지 혁명들과는 달리, 비참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일으킨 봉기인 동시에 부르주아의 지지를 받지 못해 단 이틀 만에 실패로 끝난 혁명.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을 외쳤지만, 총격으로 8백여 명의 사상자를 낸 봉기는 금세 진압되고 말았다. 6월의 봉기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날의 군중들의 함성은 1848년 2월 혁명까지 살아남아 비로소 왕정이 끝나고 공화정이 들어설 수 있었다. 1832년 6월 5일 당시 튈르리 정원에서 희곡을 집필하고 있던 빅토르 위고는 해당 봉기를 직접 목격했다. 빅토르 위고의 마음에 ‘그날’은 계속 살아있지 않았을까. 6월 봉기 이후 30년이 지나 출간된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혁명의 긴 역사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과 정세를 방대한 분량에 걸쳐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민중을 사랑한 빅토르 위고의 문학
고전주의 문학에 대항해 낭만주의 문학 이념의 초석을 다진 빅토르 위고는 활발한 작품 활동을 지속했지만, 1843년 이후 10여 년간은 정치 활동에 전념했다. 원인으로 더 이상 반응이 오지 않는 낭만주의 연극과 보트 전복 사고로 사망한 큰딸 부부로 인해 상심한 탓도 있었지만, 1848년 2월 혁명 등 격변하는 정세 역시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1851년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반발한 위고는 프랑스에서 추방을 당하게 되는데, 이 망명 생활 중에 ‘레미제라블’이라는 걸작을 집필했다.
“예술은 민중을 위해 만들어지고 모든 것은 신으로부터 와서 민중에게 가는 것”이라고 말한 빅토르 위고는 작품 창작에 있어, 특히 민중을 강조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노동자들을 사랑했고 그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가톨릭 색채가 짙은 작품에서 낭만과 자유를 그리는 작품으로, 또 공화주의적 사상이 담긴 작품으로 변화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19세기 프랑스 역사의 흐름과 궤를 함께한다. 변화와 혼란 속에서도 인류와 사회가 진보해 마지않을 것이라는 그의 작품에 담긴 이상주의적 메시지는 현재까지도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그것이 ‘레미제라블’이 손꼽히는 위대함이 아닐까. 여전히 유효한 외침이 담겨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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