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1일 파리로 출국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리무진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표를 끊고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렸다. 여행은 딱 이때가 가장 좋다. 목적지로 가기 위해 이동 수단을 기다릴 때. 특히 비행기보다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버스를 기다릴 때. 이때가 가장 설렘으로 충만할 때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사진이 저 핑크빛 캐리어의 영정 사진이 될 줄이야.
그러면 그렇지. 난 이때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간신히 클라이언트의 유튜브 채널에 올릴 영상을 마감했다. 왜 항상 마감은 마감되지 않는가! 지금도 난 마감과 매일 사투를 벌인다. 내 직업 중 하나는 유튜브 외주제작 PD다. 이때의 파리행도 외주제작 PD로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며 한 달간 자동차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러 떠나는 길이었다.
바르슈타이너 맥주가 있는 걸 보니 루프트한자를 탔나 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뮌헨을 경유했다. 1753년에 설립된 맥주 브랜드라니. 이때 조선시대는 영조가 임금이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출발이 쉽지 않았다. 뮌헨 공항에서 파리행 비행기가 딜레이 됐다.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이때 우리 일행은 몇 시간이나 속절없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파리에서 만나기로 한 픽업 기사님. 얼른 연락을 해 우리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루프트한자에서는 사과의 의미로 식사 바우처를 주었다.
그걸로 햄버거 냠냠.
공항에 대기 중인 여행자들은 점점 자신들의 비행기를 찾아 자리를 떠났고, 우리 일행도 한참을 기다리다 파리행 비행기에 어렵사리 몸을 실었다.
드디어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파리 첫 번째 숙소에 도착. 예정보다 많이 늦어져 보시다시피 캄캄한 밤이다. 문제는 근처 상점이 문을 모두 닫아 물도 없이 하룻밤을 꼬박 보냈다는 것. 가장 가까운 24시간 편의점이 덴마크에 있었다. 순간 우리나라가 얼마나 살기 편한 곳인지 새삼 느끼게 된 소중한 밤이었다. 유럽 여행 시 호텔이 아닌 이런 민박 숙소로 밤늦게 도착한다면 공항에서 물 정도는 사 오는 걸 추천한다.
시차 적응이 바로 될 리가 있나. 동트기 전 아직 어두컴컴한 새벽에 눈이 떠져 일어났다. 건너편 아파트에도 한 가구만이 불이 켜졌었다.
아직은 대부분 잠든 새벽, 창밖의 공기는 고요하고 낯설었다.
빨리 해가 뜨고 시간이 지나 상점들이 문을 열길 기다렸다. 하도 목이 말라 비상용으로 챙겨온 쌍화탕을 한 병 드링킹하며 갈증을 달랬다. 자 이 대목에서 수돗물이라도 마시지 하는 사람들 있을 것이다. 파리를 비롯해 유럽 대부분 수돗물엔 석회가 섞여 있다.
빨리 거리로 뛰쳐나가 물과 빵을 찾았다.
파리의 아침은 빵집들이 깨운다. 근처 아무 빵집에 가서 빵과 음료를 사 왔다. 프랑스에 있는 빵집은 어딜 가도 성공적이다.
그리고 냉장고를 물로 가득 채웠다. 에비앙 따위 마음껏 마셔주었다.
일주일 동안 한 숙소에 머물러야 해서 근처 탐방에 나섰다. 마트와 빵집, 레스토랑과 카페, 코인 세탁소 등 필요한 곳들의 위치를 파악한 뒤 한적한 카페에 앉았다.
동행한 H형은 파리에 오면 꼭 이런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었다고 했다. 소원 풀었다.
아침으로 든든하게 빵을 먹었지만 브런치로 또 빵을 먹었다. 빵은 밥이 아니니까 괜찮아.
그런데 빵보다 잼이었다. 잼으로 감동받아보긴 또 처음이었다. 너무 맛있어서 기록용으로 저 사진을 찍어두었다. 저 때만 해도 저 카페에서 핸드메이드로 만들어 내놓는 잼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까르푸 가니까 똑같은 걸 팔더라. 귀국할 때 꼭 사 가야지 했는데, 흔한 잼이어서 나중엔 식상해졌다. 그런데 요새 저 잼이 유독 그립다. 파리도 그립다. 글·사진 조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