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같은 미술사에 기록되는 역사적인 작품들을 보고 나면, 마치 그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뛰어난 재능을 지닌 천재들이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주곤 합니다. 물론 그들 모두 처음부터 천재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실력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 또한 긴 시간의 노력과 연습으로 여러 실패작을 만들어내고, 수 백 수 천 번의 좌절 끝에 놀라운 위업을 성취할 수 있었던 노력가들입니다. 오늘은 예술가들의 영광스러운 작품들 뒤로 가려져있던, 어쩌면 영원히 드러나지 않길 바랐을지도 모르는 그들의 흑역사 작품들을 살펴봅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사실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은 고흐의 생에 작품들 중 중요히 여겨지는 첫 번째 그림이기도 합니다. 그의 전성기에 펼쳐지는 풍부하고 아름다운 색채의 그림들과 이 그림은 상당히 거리가 멀지만, 독학을 통해 그림을 배운 고흐의 경력 안에서 그림 스타일이 변화되는 과정의 가장 경계에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감자 먹는 사람들>에선 아직 색채나 질감 표현 등에 숙달하지 못한 고흐의 실력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삶에 밀접해있는 평범한 사람들, 농민들의 삶을 그림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그의 친근감 있는 주제 선택과 순박했던 그림 실력이 어쩌면 대중들에게 가장 친숙한 예술가가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에드바르 뭉크의 <분노한 개>
뭉크의 <분노한 개>를 보면 인간의 절망감을 깊이 포착했던 역사적인 예술가의 그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느껴집니다. 뭉크가 그림으로 그린 이 개는 뭉크의 이웃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롤'입니다. 뭉크는 옆집 강아지 롤을 몇 개의 그림과 석판화의 주제로 남겼습니다. <분노한 개>를 본 사람 중엔 뭉크가 강아지의 모습과 어떠한 인물의 모습을 비추어 그린 것 같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기도 합니다. 그림에서 롤이 마치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롤의 주인에 따르면, 롤은 상당히 공격적인 성향의 강아지였고 뭉크에게 자주 그 공격성을 표출하곤 했다고 합니다. <분노한 개> 또한 뭉크의 작품 중 하나였기 때문에 여러 방면으로 그림을 해석하는 시도가 있었지만 사실은 이유 없이 자신에게 화냈던 강아지에게 귀여운 복수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티오 파케트>
낭만주의 시대의 가장 위대한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그린 <티오 파케트>는 고야가 지내던 지역의 유명한 가수이자 시각장애인이었던 티오 파케트라는 인물의 초상화입니다. 고야는 수많은 인물들의 초상화 의뢰를 받아 생계를 유지하던 화가였고 파케트 또한 고야에게 그림을 의뢰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시각장애인이었던 그가 고야에게 초상화를 의뢰하게 된 내막에 대해선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단지 그림의 보수를 받기 위해 파케트에게 보내진 청구서 만이 남겨져 있을 뿐입니다. <티오 파케트>의 해석은 고야가 황량한 인류의 전망을 묘사했던 "블랙 페인팅" 시리즈에 포함되어 있진 않지만 "블랙 페인팅" 시리즈가 그려진 시기의 제작되었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이었던 티오 파케트의 모습에서 당시 고야의 어두운 사상이 투영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주된 해석으로 남아있습니다.
에두아르 마네의 <낚시>
조금 촌스러워 보이는 색감과 허술한 풍경의 구성의 이 그림은 놀랍게도 <풀밭 위의 점심식사>와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그림의 오른쪽 아래에 그려진 인물들은 곧 마네의 아내가 될 수잔 렌 호프와 화가 본인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강가에선 어부들이 작은 배에 올라 낚시를 하고 있고, 배경에는 둔탁하게 쏟아져 내리는 무지개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풍경의 식물들과 나무들이 세심하게 묘사된 반면, 각 요소들의 크기가 원근을 무시하고, 부드럽게 뭉개져있는 그림의 중심부는 그림을 전체적으로 미완성인 것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마네의 최고의 작품이라 불리는 <풀밭 위의 점심식사>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대조적인 평가를 받는 탓에, <낚시>는 그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도 습작, 혹은 실패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렘브란트의 <이석증 수술>
렘브란트의 <이석증 수술>은 조금 의심스러워 보이는 수술의 현장을 담고 있습니다. 그림에선 수술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환자의 모습과 수술을 보조하는 듯한 노인이 촛불을 들고 있고, 수술을 집도하는 듯한 남성이 도구를 환자의 귀에 넣고 있습니다. 환자의 고통스러운 얼굴과 고통을 이겨내려 꽉 쥐고 있는 주먹의 모습을 보자 하면 고통이 전이되는 것만 같아 불길하기도 합니다. 렘브란트가 겨우 18살에 그린 이 그림은 그의 "오감 시리즈"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약간 부족한 실력이지만 '빛'을 이용하고 있는 이 그림은 앞으로 그가 성숙한 예술가로 성장해 '빛의 마술사'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는 예언을 담고 있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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