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8년 12월 면도 칼을 손에 쥔 고흐는 무슨 이유에서 인지 자신의 왼쪽 귀를 잘라냈습니다. 그는 스스로 귀를 자르고 치료받으며 붕대를 한 자신을 그린 초상화를 남겼습니다. 그는 머리에 붕대를 감은 자신을 그리기 위해 귀를 잘랐을까요? 그가 무덤에서 일어나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이상 왼쪽 귀를 자른 '진짜 이유'를 알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고흐가 충실하게 남겨놓은 일기와 편지, 지금까지 발견된 여러 기록들을 통해 그가 자신의 귀를 자른 이유에 대해 유추한 3가지 사실들이 있습니다. 그 사실들은 고갱, 고흐의 동생 테오, 그리고 매춘 여성으로부터 추적되어 밝혀진 기록들로 가정한 사실들입니다.
처음 사람들에게 알려진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이유는 고갱과의 싸움 때문이었습니다. 고흐와 고갱은 한때 한 지붕 아래 생활을 공유하는 관계였습니다. 고흐를 후원하고 돌보던 동생 테오는 고흐에게 지쳐있던 상태였고,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고갱은 화상이었던 테오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테오의 요청으로 고갱은 고흐와 교류를 시작했고 그들은 편지를 통해 예술관을 교류하다가 서로의 자화상을 교환하는 등 한 지붕 아래 예술 공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한 지붕 아래에서 서로 등지고 그림을 그리며 어느 정도 각자의 예술세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둘의 교류를 주선한 테오는 그들의 성격차까지 고려하진 못했습니다. 고흐는 내성적이고 격정적인 인물이었고 고갱은 냉소적이고 완강한 인물이었습니다. 둘의 공유 생활에 다툼이 피해 갈리 없었습니다. 고흐와 고갱 사이에 날카로운 말들이 오갔고 둘은 이미 이성을 잃어갔습니다. 고갱은 고흐와의 공유 생활을 마무리 짓기로 했고, 고흐는 분노를 식히지 못하고 고갱으로부터 욕을 들었던 귀를 잘라내버리고 맙니다.
둘의 다툼을 통한 고흐의 자해는 일반적으로 많이 퍼져있던 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동생 테오와 고흐가 나눈 편지가 발견되면서 새로운 가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고흐가 귀를 자른 당일, 동생 테오가 보내온 한 통의 편지가 전달됩니다. 그 편지 안에는 동생 테오가 약혼을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담겨있었습니다. 그동안 생활비를 지원해 주었던 동생의 결혼 소식은 앞으로의 지원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형으로서 짐이 되기만 했다는 자책감이 그의 파괴적인 행동을 불러일으켰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동생의 결혼으로부터 1년 후 일어난 고흐의 사망도 그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이후로 등장한 새로운 주장은 고흐가 귀를 자른 후 자신의 귀를 선물한 여성을 추적해 얻은 단서들로 유추한 이야기입니다. 고흐는 내성적인 인물이었지만 주변 이들의 곤경을 그냥 지나치는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매춘부들이 있는 사창가에서 청소 일을 하는 여성이 있었고 이 여성은 광견병에게 팔을 물려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돕고자, 그녀의 망가진 피부를 대체할 수 있도록 고흐는 자신의 귀를 건넸다는 주장입니다. 조금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의 파괴적인 행동이지만 그동안의 고흐의 격정적인 심리적, 정신적 상태를 근거로 이런 주장이 나오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시 진짜 진실은 고흐 본인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최근 고흐의 자살도 자살이 아닌 타살의 가능성이 주장되고 있기도 합니다.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은 만큼 고흐에 관한 여러 주장들이 펼쳐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몰랐던 비하인드스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