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의 사라고사주에 있는 보르하라는 마을은 약 5천 명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입니다. 이곳에는 16세기 세워진 '자비로운 성모 마리아의 피난처 성당'이 있습니다. 이 성당에는 1930년경 엘리아스 마르티네즈라는 화가가 가시면류관을 쓴 예수의 프레스코화를 그려 헌납한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쓴 이 예수 그림의 제목은 '<에케 호모(Ecce Home)>', '이 사람을 보라'라는 뜻으로 로마 총독 폰티우스 빌라투스가 초하란 예수의 행색을 보고 군중에 했던 말을 옮긴 제목이었습니다.
<에케 호모>는 역사적으로 예술적 가치에서 높이 평가받아오진 못했습니다. 작은 시골 마을이 주민들도 그 존재를 잘 모르고 있었을 뿐더러, 금박으로 둘러진 바로크풍의 제단과 성당 내부의 화려함 때문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 훼손된 이 그림이 방문객들의 눈에 들어올 리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라고사주에서 이 프레스코화의 가치 회복을 위해 복원 가를 모집하면서 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2012년 8월, 마을의 주민이었던 86세 할머니였던 '세실리아 히메네즈'에게 복원 작업이 맡겨졌고, 작업은 단 하루 만에 끝이 났습니다.
복원 작업이 완료된 그림을 보고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가시면류관을 쓴 예수의 숭고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어린아이가 장난쳐 놓은 것만 같은 원숭이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원 작업을 맡은 세실리아 히메네즈는 사실 아마추어 화가였고 평소 그림 실력이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프레스코화'의 제대로 된 이해가 없던 상태에서 작업을 의뢰받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프레스코화는 일반적은 그림을 그리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기법이 사용됩니다. 벽 위에 석고를 바르고 이것이 말라 굳어지기 전에 빠르게 그림을 그려내야 하는 상당히 높은 난이도의 기술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은 히메네즈는 평소 자신이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던 방식대로 작업을 진행했고 그림을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그림이 훼손되면서 관계자들과 그림을 헌납한 마르티네즈의 후손들은 분노했고 법적인 처벌이 거론되었습니다. 이에 히메네즈는 "그림을 두고 소란이 벌일 것에 이해할 수 없으며, 자신을 순수하게 그림을 복원하고 싶었고 교구 사제들도 자신의 작업에 동의했다."라고 하면서 자신을 변호했습니다. 히메네즈에게 '반달리즘'까지 거론되었지만 스페인 문화 당국도 그녀에게 그림을 파괴할 의도는 전혀 없었음을 인정했고 처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사건은 지금부터였습니다. 사건이 일어나고 망가진 그림의 사진이 여러 해외 매체와 소셜미디어를 떠돌기 시작했고 그림의 '우스꽝스러움' 때문에 엄청난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의 기존 제목이었던 <에케 호모(Ecce Home)> '이 사람을 보라'에서 <에케 모노(Ecce Mono)>, '이 원숭이를 보라'라고 제목까지 변형하며 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됐고, 인터넷상에서 각종 패러디 물이 양산되면서 이 그림을 실제로 보기 위해 엄청난 인파가 교회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방문객이 늘자 교회에서 입장권을 받기 시작했고, 1인당 1유로로 판매된 입장권은 연간 5만 유로를 벌어드리면서 스페인의 작은 시골마을이었던 보르하 마을의 경제적 부흥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방문객이 늘면서 주면 상권마저도 활성화되었고 히메네즈는 그림을 망친 '범죄자'에서 단숨에 마을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한편 논란에 시달리던 히메네즈는 입장료로 발생하는 수익에 대한 로열티를 요구하면서 다시 한번 화제가 되었습니다. 교회 제단에선 그림에서 나오는 이익의 49%를 히메네즈에게 분배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처음엔 사람들이 그녀의 뻔뻔함을 비난했지만, 그녀의 아들은 근위축증 환자였고 수익금을 관련 단체를 위한 자선 사업에 사용하기로 발표하면서 다시금 비난은 사그라들었습니다.
예술계의 또 다른 비하인드 스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