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수많은 위작이 탄생한 화가 중 하나는 바로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들 일 것입니다. 그리고 반 고흐의 여러 위작 관련 사건들의 주인공들 중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독일의 오토 바커라는 인물입니다.
오토 바커는 독일 출신의 미술상이었지만 그가 고흐의 위작을 판매하기 위해선 지역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고흐의 위작을 파는 거물이기도 했는데 그가 많은 위작을 팔수 있었던 건 그의 아버지와 동생의 조력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미술상이었던 그와 달리 그의 아버지 한스 바커와, 동생 라인하르트 바커는 전문적인 화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토 바커는 언제나 수월하게 위작을 공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오토 바커는 상당히 치밀하고 똑똑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동생이 그린 위작을 진품으로 둔갑시키기 위해 상당히 까다로운 과정을 거쳤습니다. 먼저 가짜 그림이 완성되고 나면 미술 전문가들에게 작품의 감정을 의뢰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전문가들도 고흐의 작품을 면밀히 감정하기란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그 이유는 고흐가 1890년 7월 사망하기까지 사실 무명의 화가였고 그 이후로 이름을 알리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10년이 지난 1900년대가 돼서야 네덜란드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다시 10년 정도 시간이 흘러서 유럽과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감정을 의뢰를 할 당시인 1920년대엔 고흐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상당히 상태였습니다. 그의 작품에 대한 감정을 의뢰해도 사실상 전문적으로 진위를 판별할 수 있는 사람은 전무했습니다. 단지 그림의 스타일과 붓질, 그나마 그때까지 연구된 고흐의 정보를 가지고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태였습니다.
어쨌든 당시의 미술 전문가들은 오토 바커가 가져온 그림들을 딱히 가짜라고 결론 내리지 못했습니다. 물론 오토 바커에겐 그 정도 결론만 받아내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는 그대로 가짜 진품 인증서까지 발급해 전 세계에 그림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기 마련이란 말처럼 그의 사기 행각은 한 전시 디렉터에 의심 때문에 세상에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1928년 베를린에선 빈센트 반 고흐의 전시회가 기획되고 있었습니다. 전시회에 걸릴 고흐의 그림을 오토 바커가 납품하기로 했고, 그가 보낸 그림 중 4점이 디렉터의 의심을 사 경찰 수사까지 이어졌습니다.
조사를 통해 그들이 위작을 유통한 것이 들통났지만 그들은 자신의 판매하고 유통했던 고흐의 그림들은 모두 진품이라며 끝까지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보관하고 있거나 판매했던 작품들에선 고흐는 사용하지 않았던 재료의 성분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화 물감을 빠르게 마르게 하는 건조 물질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림의 캔버스 틀 또한 고흐의 고장이었던 네덜란드 주변에서 생산된 것이 아닌 독일에서 생산된 것이었습니다. 오토 바커는 결국 유죄를 판결 받고 징역 1년 6개월, 벌금 30만 마르크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비하인드스토리
일하고 뭐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