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 5월 17일에 열린 소더비 경매장, 지난 경매장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2일 전 있었던 경매에서 출품된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이 예상가 보다 훨씬 높은 금액으로 낙찰된 여파였습니다. 그 금액은 8,250만 달러 한화로 약 930억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예상가를 훨씬 상회하는 금액으로 그림을 낙찰받은 사람은 바로 일본의 대 부호였던 재지 회사의 회장 '사이토 료에이'였습니다. 경매장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건 고흐의 그림을 낙찰받았던 료에이 회장이 17일 경매장에도 참석한다는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연이어 경매에 참여한 이유는 점찍어둔 작품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그림은 바로 르누아르의 <물랑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그가 르누아르의 그림을 사기 위해 투자한 금액은 7,810만 달러, 한화로 약 885억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경매장의 분위기는 들끓었고 한 일본 기업 회장의 소식은 일파만파 퍼져갔습니다. 그가 단 이틀 사이에 두 그림과 조각 한 점을 사기 위해 쓴 돈은 1억 6500만 달러였으니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당연히 언론은 그의 이야기를 실었고 그에게 그런 돈을 쓸만한 가치에 대해 물었습니다. 료에이 회장은 "고흐와 르누아르를 일본에 데리고 오기 위해 그 정도는 써야 한다'라며 기업가답게 시원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낙찰금액에 놀라기도 잠시, 1년 후 놀라운 소식이 세계 언론에 퍼지면서 료에이 회장은 하루아침에 세계의 비난을 받는 인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한 발언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죽거든 "고흐와 르누아르의 작품을 자신의 관에 넣어 함께 화장시키겠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맙니다. 경매로 개인의 소유가 되었지만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고흐와 르누아르의 작품을 소각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대중은 당연히 료에이 회장에게 비난의 화살을 쏟아부었습니다.
급기야 료에이 회장은, 발언을 취소하겠다는 발표를 하며, "중국 진시황의 무덤에 점토 병마와 명 13릉이 있다. 나는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두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을 뿐이다."라는 해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발언을 취소한다는 발표를 했지만 여론의 비난에 복수라도 하고 싶었던 것인지, 료에이 회장은 자신의 금고에 그림을 넣어두고 세상에도, 일본인들에게도 그림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그가 무리하게 벌인 사업과 일본 경제 몰락으로 인한 회사의 경영난, 부정청탁으로 인해 징역을 사는 등 불명예로 뒤덮인 채 96년 79세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무너지기 직전인 그의 회사는 여러 자산들을 매각했고 그중엔 당연히 고흐와 르누아르의 작품이 있었습니다. 두 그림은 그가 경매에서 들여왔던 금액의 절반밖에 안되는 금액에 매각되었고 그 이후의 출처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미래라도 예측한 듯 고흐와 르누아르는 비슷한 그림을 각각 한 점씩 더 남겨두었습니다. 우리가 오르세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같은 제목의 또 다른 그림들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어쩌면 정말 사이토 료에이 회장의 바람대로 두 그림이 그의 관에서 같이 불타버린 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비하인드스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