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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아내, 그리고 어머니로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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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5. 18:1021,923 읽음

<알린 샤리고의 초상화>

풍만하고 건강해 보이는 몸, 따뜻한 온정이 묻어나는 얼굴과 표정의 이 그림은 르누아르의 일생 동안 가장 많은 모델이 되어준 그의 아내 '알린 샤리고'입니다. 알린은 부르고뉴 지방의 포도를 재배하는 농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작은 포도원에서 성실하게 일했던 그녀의 아버지의 모습은 그녀가 성장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지표가 되어 주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알린이 르누아르를 만난건 르누아르의 아틀리에 맞은편에 있던 간이식당에서였습니다. 둘은 누구가 시작하자고 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사랑을 이어갔습니다. 딱히 결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르누아르는 알린과 만나며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르누아르를 이해하고 언제나 그의 곁에서 조용히 모델이 되어주었습니다. 그에게 모델을 서주지 않을 때면 바느질 일을 하며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자세로 삶을 꾸려 나갔습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그림 그리는 일에만 열중하던 르누아르가 혼인신고를 하기로 결심한 건 그들이 만난 지 10년이나 지나서였습니다. 

둘에겐 이미 첫째 아들이 있던 상태였고 9년 뒤엔 둘째가 태어났습니다. 르누아르 부부는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따뜻한 아버지이자 어머니가 되어주었습니다. 특히 르누아르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상처가 생기는 것을 염려해 마룻바닥을 관리하기 위해 바르던 '초'도 바르지 못하게 하고 '어린이다운 장난'을 야단치는 것도 조심하도록 알린에게 당부했습니다. 

<알린과 피에르>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제재당하는 일에 불만이 있었을 법도 하지만 알린은 불평 없이 언제나 가족들을 위한 집안일을 묵묵히 해냈습니다. 그녀는 언제나 남편 르누아르가 그림 그리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쾌적한 환경을 유지해 주었습니다.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그리던 르누아르가 산책을 나갈 때면, 그의 모습이 모퉁이 뒤로 사라지자마자 그녀의 일은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창문을 열어 기름냄새로 가득한 아틀리에를 환기시키고, 쓰레기를 치우고, 세탁물을 널었습니다. 마법처럼 말끔하게 집안과 아틀리에를 정리하고 식사를 준비할 때면, 르누아르는 돌아와 놀라곤 했다고 합니다. 정말 마법 같은 일이었으니까요. 언제나 새것처럼 깨끗했던 르누아르의 팔레트도 꽃을 그리기 좋아하는 르누아르를 위해 매일 새벽같이 싱싱한 꽃을 정성 들여 골라 사다 놓은 것도 모두 그의 아내 '알린'의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르누아르의 류머티즘 관절염과 제1차 세계대전으로 참전한 두 아들에 대한 걱정의 눈물은 알린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그녀도 당뇨병이 심해져 가고 있었지만 불편한 몸으로도 붓을 손에 붕대로 감아서까지 놓지 않았던 남편에게 일절 알리지 않고 르누아르의 걱정을 덜어주고 싶어 했습니다. 

<부인 알린과 밥>

그러던 중 1914년 르누아르 부부의 두 아들이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맙니다. 알린은 걷지 못하는 남편을 대신해 부상당한 첫째 아들 피에르를 보기 위해 홀로 전선으로 찾아가기도 하고, 허벅지에 관통상을 당한 둘째 아들 장을 보기 위해 통행증을 발급받아 야전병원으로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장의 상처 부위가 썩어 들어가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군의관에게 절대로 절단은 안된다며 말린건 아들의 미래를 걱정한 어머니 알린이었습니다. 알린의 지극한 간병으로 장은 절단 없이도 다리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쇠약해진 몸으로 남편과 아들들을 돌본 알린의 건강은 그녀가 티 내진 않았지만 꺼져가는 촛불과 같았습니다. 그녀는 아들들을 위해 마지막 힘을 소진하고 남편 르누아르의 품으로 돌아와 1915년 6월 56살의 나이로 조용히 숨을 거뒀습니다.

불치병도 르누아르의 붓을 놓지 못하게 했지만 알린의 죽음은 르누아르의 붓을 놓게 만들었습니다. 르누아르는 아내의 죽음을 묵묵히 슬퍼했습니다. 아내를 가슴 깊이 새기며 그는 조용히 다시 붓을 들었고 알린이 떠난고 4년 후 그도 조용히 아내의 곁으로 향했습니다.

<정원 입구에 서있는 알린>

우리가 몰랐던 비하인드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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