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5년 3월 6일, 그날은 르네상스의 거장이었던 미켈란젤로가 어머니의 배속에서 세상으로 나온 날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스스로 미술에 대한 유별난 흥미를 가졌었습니다. 그런 그의 태도가 르네상스 최고의 화가이자 조각가가 될 수 있게 해준 것이겠지만 어린 시절 미술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에서 지냈던 것과, 대리석 채석장이 있던 작은 마을에서 자랐던 것도 그에게 있어선 어쩌면 화가이자 조각가로서의 길만을 보게 한 요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문학학교를 다니며 학습했지만 수업을 빼먹고 성당을 돌아다니며 성당 안에 장식되어 있는 성화를 베껴 그리는데 열중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학교의 수업 시간은 지루하기만 한 시간이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결국 아버지를 졸라 피렌체에서 프레스코화로는 저명했던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공방에 들어가는데 성공합니다. 그곳에서 미켈란젤로는 정식 미술 수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그곳에서 한 그림을 그려 1년이 되기도 전에 그 실력을 인정받았는데, 그 그림의 제목은 <성 안토니오의 고뇌>였습니다. 이 그림은 이집트 사막에서 성 안토니오가 여러 악마와 마귀들의 유혹에 싸워 이겨내는 모습을 담은 그림입니다. 이 그림으로 그는 스승의 인정을 받아 피렌체 예술의 최대 후원가였던 메디치 가문의 부탁으로 공방 학생 중 뛰어난 두 명을 보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그중 한 명으로 추천되어 메디치 가문의 풍족한 후원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성 안토니오의 고뇌>는 12세였던 미켈란젤로가 모든 것을 혼자 상상하고 구성해 그린 그림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실 독일 화가였던 '마르틴 숀가우어'의 판화를 본 적이 있었고 그림의 구성처럼 여러 흉악한 모습의 악마들과 공중부양을 하고 있던 성 안토니오의 판타지적인 표현에 감명을 받아 그 그림을 그대로 옮긴 후 색까지 입혀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이 그림이 마르틴 숀가우어의 판화를 그대로 모방해 그린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모르지만, 그 그림 덕분에 미켈란젤로는 스승으로부터의 인정과, 메디치 가문의 든든한 후원 아래 걱정 없이 미술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미켈란젤로의 실력은 나날이 발전했고, 모두의 시기와 질투를 받는 거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비하인드스토리
일하고 뭐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