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서부의 광활한 대지에서 태어나 서부 이곳저곳을 떠돌며 자랐던 잭슨 폴록은 그의 아버지만큼이나 정처 없이 살고 알콜중독에 시달렸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딱히 직업이다 라고 할만한 것을 같지 못했고 직업이 바뀔 때마다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 자신에게 기대고 있는 가족들이 부담스러웠던 것일 까요? 잭슨 폴록의 아버지는 그가 8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 아내와 폴록, 그의 형제들을 버리고 떠나버렸습니다.
이후 그는 큰형을 아버지처럼 섬기며 따랐습니다. 폴락의 형은 화가로서의 꿈을 키웠고 자연스럽게 폴록도 형을 따라 '토마스 하트 벤튼'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가정의 보살핌과 막내로서 받아야 할 관심을 받지 못했던 폴록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거친 인격을 형성해 갔습니다. 그는 우울증에 시달렸고 학생 시절부터 이미 알콜중독에 빠져버렸습니다.
언제나 만취해 있던 그는 사고 치기 일쑤였고, 결국 학교에서도, 형과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마치 고장난 엔진이라도 달린 듯 시동이 걸리기만 하면 달려나가 사고를 치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림까지 손에서 놓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가동된 엔진은 사고 치는데 사용되지 않는다면 그림에 그 에너지를 쏟아붓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도 행운의 여신이 찾아온 것은 한 작은 단체전에 참여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그 단체전엔 그의 미래의 아내가 될 '리 크래스너'도 참여했습니다. 크래스너는 당시 폴록보다 여러 면에서 뛰어난 화가였습니다. 그녀는 인망이 두터웠고 미래도 밝았습니다. 그녀 특유의 친화력으로 전시회에 참여하는 다른 작가들과의 관계를 쌓았고 폴락과 사는 곳이 멀지 않았던 그녀는 폴락에게 인사를 나누기 위해 그의 집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평소 같으면 술에 취해 집에 누가 오던 묵묵부답이었던 그가 그날만큼은 멀쩡한 정신으로 그녀에게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녀는 폴락의 집에 방문해 그의 작품들에 크게 감명받았습니다. 그림뿐만 아니라 폴락 본인과 사랑에 빠지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둘은 하객도 없는 작은 교회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그녀는 자처해서 폴락의 매니저가 되어주었습니다. 스스로를 통제 못하던 폴락을 온전히 케어하며 작업에 열중하게 할 수 있었던 건 크래스너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게다가 평소 인망이 두터웠던 그녀는 자신의 인맥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폴락을 미국 화단에 알리는데 열중했습니다. 자기 몸 하나 간사하기도 힘들었던 폴락을 케어하는데 온 힘을 다한 크래스너는 당연히 자신의 작품 생활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크래스너의 희생으로 폴락은 미국 화단에서 대성공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폴락 특유의 '드리핑 기법'을 이용한 액션 페인팅은 모든 이들의 관심과 찬사, 조롱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의 그림은 살아있는 작가 중 최고가를 경신하며 당대 예술가 중 단연 1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폴락이 다시 자신을 망가트린 건 '술' 이었습니다. 그가 술을 먹고 한 파티 자리에서 테이블을 엎고 자신의 지인에게 욕설을 퍼붓는 사건이 있었고 그는 술을 먹고 사고를 쳤다는 절망감에 작품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이일은 크래스너와의 관계에도 불화를 일으켰습니다. 크래스너는 잠시 폴락의 곁을 떠나기로 했고, 폴락은 반항이라도 하듯 화가 지망생이었던 '루스 클리그먼'이라는 여성과 불륜을 일으키고 맙니다.
크래스너가 떠난 비어버린 폴락의 집에 클리그먼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불륜 생활도 길진 못했습니다. 1956년 8월 에디스 멧처의 초대로 다시 한번 한바탕 술을 즐겼던 폴락은 만취 상태로 그들을 차에 태워 악셀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폴락이 눌러 밟기 시작한 악셀은 고철의 무게 중심을 흩트려 놓았고 차는 도로를 벗어나 나무에 부딪혔습니다. 폴락은 그대로 차체에서 튕겨나가 나무에 머리를 부딪혀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같이 탄 사람 중 살아남은 것은 그의 불륜녀였던 클리그먼 뿐이었습니다.
교통사고에서 살아남은 클리그먼은 그제서 자신의 야망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크래스너에게 교통사고 피해 보상 금으로 10만 달러를 요구했고, 자신과 폴락의 관계를 회고한 '잭슨 폴록 회고록'을 출간했습니다. 폴락이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클리그먼은 폴락과 라이벌 관계였던 '윌렘 드 쿠닝' 연애를 시작했고 말년엔 잭슨 폴락의 유작을 갖고 있다고 주장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폴락에게 어떻게 그림을 그리는지 보여달라고 하자 폴락은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려 그녀에게 선물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폴락의 아내이며 제단을 이끌었던 크래스너는 당연히 그 작품을 진품이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1984년 크래스너가 사망하고 클리그먼은 다시 이 작품을 경매에 내놓았지만 진품 판명을 받지 못한 채 2010년 클리그먼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우리가 몰랐던 비하인드스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