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칼럼

[칼럼] 모든 것의 끝, 로버 그룹의 흥망성쇠 -에필로그-

CAR GO STUDIOS님의 프로필 사진

CAR GO STUDIOS

공식

2020.12.19. 00:011,069 읽음

※본 칼럼은 시리즈로 구성된 콘텐츠입니다.
읽기에 앞서 이전 내용을 다룬 칼럼을 먼저 읽으시길 권합니다

프롤로그

1부

2부

3부

4부

III MG로버 그룹, 그 이후

2000년식 미니. 로버 그룹에서 1993년부터 개발하여 1997년에 컨셉트카, 2000년에 양산형 모델을 공개했다

로버 그룹을 최종 매각하기 1년여 전, BMW는 토니 블레어의 영국 노동당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약속받았다. 차기 로버 컴팩트카를 토대로 한 신차를 미니, MG 브랜드의 틈새시장 모델 3종으로 출시하여 연간 40만대를 만들겠다는 약속으로 지원금을 받아냈다.

베른트 피셰츠리더를 축출하면서도 로버 그룹을 없애거나 매각한다는 루머는 일단락시키긴 했지만, 이 약속을 바꾸는 계기가 하나 생겼다. 영국의 알케미 파트너스가 로버 그룹을 인수하겠다는 제의를 하면서부터였다. 알케미 파트너스는 로버 그룹을 인수해 MG 브랜드만을 남긴 뒤, 연간 5만 대 규모로 스포츠카와 스포츠 세단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BMW도 이미 들인 돈 때문에 처음에는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알케미 파트너스의 대표 존 몰턴(Jon Moulton)이 잘 설득하여 로버 그룹의 매각을 이끌었다. 그렇게 BMW에서는 랜드로버를 포드에 매각하고, 미니를 자사의 엔트리 프리미엄 브랜드로 유지했으며, 나머지 남은 MG와 로버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연구개발시설도 각 회사가 쪼개 가져갔으며, 공장 역시 롱브릿지 공장 하나만 빼고 BMW나 포드의 몫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 복병이 하나 등장한다. 1995년에 로버 그룹에서 퇴사한 로버 그룹의 전 회장, 존 타워스가 동료 셋과 함께하며 다시 등장한 것이 새로운 복병이었다. 이들은 로버 그룹이 계속해서 로버 25와 45같은 주력 승용차를 생산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2001년 MG로버 그룹의 라인업 전반. 왼편은 로버 25, 45, 75의 MG 브랜드 버전인 MG ZR, ZS, ZT이다

2001년 MG 라인업. MG F와 함께 로버 25, 45, 75의 MG 브랜드 버전인 MG ZR, ZS, ZT가 포함되어 있다

피닉스 컨소시엄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경영진 4인조의 회사는 알케미 파트너스와 함께 MG와 로버를 인수하려고 눈싸움을 벌였다. 하필이면 현 직원의 80%를 해고한다는 알케미 파트너스의 구상에 로버 그룹의 노동자들이 가족들과 함께 시위를 일으켰다. 두 회사가 눈싸움을 벌이는 동안 혼란은 계속되었다. 알케미 파트너스는 BMW와 추가로 협상을 진행했지만 로버 그룹이 공장 노동자부터 딜러점 인원들, 납품업체들과 엮인 계약들이 너무 많고 복잡했다.

BMW도 해고될 공장 직원들에게 보상해주는 것 이상의 부담을 꺼려했다. 결국 알케미 파트너스는 BMW 같은 파트너 없이는 이런 부담을 감수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로버 그룹 인수를 포기했다. 피닉스 컨소시엄은 로버 그룹의 남은 부문들을 인수했고, BMW에서도 후과를 대비하여 거액의 돈을 무이자로 대출해주었다. 이 팡파르 속에 MG로버 그룹이 2000년에 결성되었다.
 
MG로버 그룹에서는 이미 개발이 이루어진 로버 75의 왜건 버전을 바로 출시했으며, 로버 브랜드의 승용차 라인업들을 MG 브랜드로 리뱃징한 스포티 버전들을 도입했다. MG F도 2002년에 페이스리프트를 단행하여 MG TF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로버 그룹 시절로부터 건너온 소수의 개발진들은 로버 75의 플랫폼을 활용한, MG와 로버 양쪽으로 출시할 신차 프로젝트 RDX60를 새 일감으로 받았고, 맥라렌 F1의 디자이너로 유명한 피터 스티븐스(Peter Stevens)를 새 수석 디자이너로 맞이했다.

없는 돈으로 이 RDX60을 개발하기 위해, 2002년부터는 과거 대우자동차의 워딩 연구소와 인연이 있던 톰 월킨쇼 레이싱에게 개발 외주를 통째로 맡겼다. 하지만 변변한 파트너 하나 없이 제한된 리소스만으로 회사를 꾸려나가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공장 노동자들도, 개발진들도 협조적으로 일을 했지만 지휘부에서 기술제휴부터 마케팅 방법론까지 하나하나 삽질을 저지르는 바람에 일은 갈수록 힘들어졌다. 
 

로버 시티로버. 그나마 MG로버 그룹에서 성과를 냈던 해외 파트너와의 제휴 결과로, 타타 인디카를 현지화했다
먼저 르노와 마트라, 피아트, 프로톤, 심지어는 중국 브릴리언스 오토와의 기술제휴 시도는 별다른 수익 없이 끝났다. 브릴리언스 오토는 BMW 외의 다른 외국 업체와 협업하는 것이 BMW와의 계약 조건상으로 막혀 있었고, 르노와 마트라로부터는 미니밴 에스파스의 구 모델을 도입하려고 했지만 서로 손발이 안 맞아 결렬되었다.

피아트는 준중형차 스틸로(Stilo)의 플랫폼을 제시하며 먼저 접근했지만 MG로버 그룹이 먼저 거절했다. 그나마 성사된 인도 타타와의 기술제휴는 제품개발 방향과 마케팅에서 죽을 쑤며 완벽하게 실패했다. 2003년에 메트로의 대타로 출시된 시티로버는 인도산 염가 소형차인 타타 인디카에 왕년 고급차 상표와 비싼 가격표를 붙이면서 홍보도 거의 안 하는 바람에 실패작이 되었다.

여기에 MG로버 그룹이 영국 탑기어의 시승 신청을 거부하자, MC 중 하나인 제임스 메이가 몰래 시승기를 찍은 뒤 TV에서 "여태 타본 차들 중 최악"이라고 코멘트를 했다. 이게 TV 전파를 타자 시티로버와 MG로버 그룹은 비웃음거리로 완전히 전락했다. 타타 사파리같은 SUV 및 픽업트럭을 활용한 타타 브랜드의 정식 수입사 역할도 별 소득을 내지 못했다. 
 
MG XPower SV. 이탈리아 드 토마소의 FR 그랜드 투어러를 토대로 한 GT카로, 공장 역시 이탈리아의 시설을 빌려 사용했다
회사 내부에서도 MG 브랜드를 활용한 각종 카레이싱 참여, 헤일로 효과를 꿈꾸며 개발한 MG ZT 260과 로버 75 V8, MG XPower SV같은 무리수적인 프로젝트들로 인해 돈이 세어나가고 있었다.

MG ZT 260과 로버 75 V8은 포드의 4.6L 모듈러 V8 엔진을 얹으려고 앞 엔진 전륜구동 레이아웃을 되려 후륜구동으로 뜯어고치는 값비싼 노고를 들였음에도 판매 대수는 단종 때까지 세 자리에 머물렀다. MG XPower GT도 포드 모듈러 엔진에 카본 파이버 바디 셸을 적용하는 노고를 들였지만 언론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가격도 당시 MG 브랜드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여론이 높았다. 이외에도 "프로젝트 드라이브"라는 이름 하에 일반 승용차 라인업들의 원가 절감을 단행하고, 2004년에 승용차 라인업 전반을 페이스리프트하여 신선도를 높이며 시티로버의 가격을 인하해도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존 타워스와 동료들은 2003년부터 회사 돈을 연봉과 연금으로 횡령한다는 논란에도 휘말렸다. 결국 그나마 있던 애국심으로 차를 사 주던 고객들도 MG로버 그룹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물론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MG ZR이 값싼 가격과 보험료에 빼어난 핸들링과 코너링, 강렬한 스타일링을 젊은 층에게 어필하여 MG로버 그룹 최대의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로버 브랜드의 "어르신들 연금차" 이미지를 벗어나고자 만든 젊은 감각의 소프트로더 모델 스트리트 와이즈가 일반 승용차 기반의 소프트로더 시장에 경쟁차들보다 일찍 진입했다. 단, 성과는 거의 그뿐이었다. 타타와의 기술제휴의 후속격으로 접근한 상해기차와도 회동해 로버 75 쿠페 컨셉트, MG 렉스턴같은 차들을 구상하며 어필하려고 했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없었다.

결국 MG로버 그룹은 회사의 마지막 보루였던 중국 상해기차와의 제휴조차 무산되며 2005년 4월에 최종 파산하고 말았다. 그나마 개발하던 신차 프로젝트인 RDX60도 톰 월킨쇼 레이싱의 파산같은 순탄치 않은 개발과정을 거치다가 회사와 함께 베이퍼웨어로 증발해 사라졌다. 중국의 난징기차가 MG로버 그룹을 데려갔으며, 상해기차가 이를 인수하며 MG로버 그룹도 같이 가져갔다.
 
MG ZS EV. 한국 땅을 정식으로 처음 밟은 MG 차종 중 하나이다
 2020년 현재, 브리티시 레일랜드 자체는 MG 모터와 로위라는 이름으로 존속하고 있다. 브리티시 레일랜드의 마지막 모습 중 하나였던 MG로버 그룹 시절의 개발진들도 모회사인 상해기차가 계승했다.

나아가 영국 내에 개발연구소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상해기차를 통해 목숨을 부지하는 대가로 영원히 중국차, 중국 회사로 매도되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미 한국에 MG ZS가 공개되었을 때도 거의 모두가 MG의 신형 전기 SUV를 영국차로 봐 주지 않았다.

백에 백 모두가 중국차로 취급했고 이 글이 마무리된 순간에도 변한 것이 없다. 브리티시 레일랜드와 그 후신들을 위해 일해 왔던 사람들이라면 분명히 눈물 흘릴 일이다. 그나마 휘하 브랜드들 중 일부였던 재규어, 랜드로버, 미니의 상황이 나은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로버 200 시리즈와 400 시리즈의 쿠페, 컨버터블, 왜건 라인업. 브리티시 레일랜드와 로버 그룹이 제대로 잡아낸 몇 안되는 기회이자 성공담의 일부이다.

브리티시 레일랜드와 그 전신, 후예들, 그리고 수많은 이해당사자에게는 수많은 기회들이 있었다. 정부가 앙숙들끼리 한 집에 모아넣는 BMC라는 실수를 장려하지 않는다거나, 경영진들이 알렉 이시고니스의 재능을 충분히 합리적인 파트너들과 조합하여 제대로 팔릴 수 있는 차를 만드는 것이 그런 예시였다.

레일랜드의 수장이었던 도널드 스톡스도 관리 하나 제대로 못 할 BMC를 괜히 인수하지 않았더라면 사정이 나아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 시절도 "양보다 질"이라는 좋은 비전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지원 방법을 제시하거나, 자사에서 중시하던 고객만족도까지 제 살 깎아먹기로 날려버릴 위험을 개발진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면 보다 좋은 시절로 기억될 수 있었으리라. 
 
BMW 그룹의 베른트 피셰츠리더도 정부 지원을 받아내려는 무리수에 신차발표회를 낭비하기보다는 신차를 적극 어필하여 자발적으로 투자할 마음에 들게 만들었다면 그나마 말년의 레임덕에서 조금 자유로웠을지도 모른다. 회복세에 있었던 1990년대의 로버 그룹 스스로도 "양보다 질"에 기초한 프리미엄가 정책을 조금만 더 신중하게 했더라면, 그동안 개발한 유망한 신차들을 제대로 팔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 외에도 브리티시 레일랜드와 오스틴 로버 그룹, 로버 그룹, MG로버 그룹의 발자취 속에서 놓친 기회들을 찾자면 보다 많은 기회들이 있을 것이다.
 

로버 SD1 3500 비테스


하지만 어떠한 이유로, 이러한 기회들은 모두 날아가버렸다. 영국 정부에서 공공을 위한 의도로 성사시킨 BMC와 브리티시 레일랜드는 내부에서부터 처참하게 무너져내렸고, 1960년대 BMC의 회장인 조지 해리슨은 알렉 이시고니스가 본인의 재능을 너무 믿다가 회사에 치명상을 날리게 놔두고 말았다.

도널드 스톡스는 레일랜드 회장으로서의 성공에 너무 취한 채 BMC를 인수했다가 그동안 쌓아 둔 것들을 모두 무너뜨렸다.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는 신제품 투자에 너무 인색하게 굴다가 유망한 비전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고, 본업인 항공 우주사업까지 힘들어지는 바람에 로버 그룹의 제 살 깎아먹기를 강요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베른트 피셰츠리더 역시 회사 안팎에서의 막대한 압박에 인내심을 너무 잃은 나머지 정부 지원을 당겨내려는 무리수를 두었다가 자폭하고 말았다. 로버 그룹 역시 소형차를 준중형차와, 준중형차를 중형차와 경쟁을 붙이는 결과로 인해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의 성공담을 계승하지 못하고 모회사 BMW에게 부담을 더 안기고 말았다. 나아가 MG로버 그룹도 이것저것 다 해 보며 버티려다가 헛발질을 하며 실패하고 말았다.

영국의 자동차 산업도 2005년을 마지막으로 실질적인 종말을 맞았다. 브리티시 레일랜드와 그 전신, 후신들의 발자취를 되새겨 보며, 주변의 또 다른 누군가가 이러한 비극을 겪지 않기를 기원한다.
 
*4부에서 토니 블레이 총리의 소속이 노동당이라고 정정해 주신, 독자 분의 답변을 반영했습니다.

사진 출처, WheelsAge

III 포스트 더보기

II 투고, DENNIS K's Design Storehouse K. 강동우님
편집, CAR GO STUDIOS 문상원 편집장
cargostudio@naver.com 


본 포스트에 작성된 글의 저작권은 카고 스튜디오와 문상원 님, 강동우 님에게 있습니다. 허가 없는 무단 도용 및 퍼가기를 금합니다.
2020.12.19 III CAR GO STUDIOS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