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E UNKNOWN
어느 겨울 아침, 첼리스트 홍진호와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를 만났다.
이들이 털어놓은 음악에 대한 유연한 생각, 깊고 진지한 고민, 새로운 것에 대한 흥분, 그리고 즐겁게 몰입하는 순간들.
editor 이민정 손정은 photographer 김지연
stylist 조윤희 hair 김선희 makeup 유혜수 coorperation 소셜베뉴 라움
‘ 홍진호’라는 신세계
슈퍼밴드 이후 인터뷰는 물론 유튜브, 책방, 북콘서트, 팬미팅 등 활동영역을 넓히면서 관객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어요.
방송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인터뷰할 일이 생기더라고요. 방송에서 제 얘기를 하는 것보다 아무래도 편안한 분위기라 그런지 더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어 좋았고, 기자분들이 귀 기울여 들어주시는 모습에 감사했어요. 제가 두서없이 얘기한 부분을 매끄럽게 다듬어 주시는 것도 좋았고요. 더불어 음악이 기본이 되면서 다양한 이들과 소통하는 작업도 즐겁습니다.
대중에게 알려지고 난 뒤 꽤 많은 시간 흘렀어요. 아티스트로서 업그레이드된 부분은 무엇이고 한계를 느끼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좋은 홀에서 공연을 하게 되고, 공연을 하더라도 오직 공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업그레이드되었죠. 음악적인 벽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대중음악에는 청중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점, 감정에 솔직한 점이 있거든요. 클래식 레퍼토리를 연주할 때도 적용시킬 수 있었어요. 물론 이런 작업들을 보시고 대개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시지만 가끔 ‘산만한 것 같다’ ‘클래식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팬들도 계세요. 클래식 아티스트만이 지닌 분위기 혹은 이미지라는 게 있잖아요. 자기만의 방에서 고귀한 예술을 위한 외로운 싸움 같은 거요. 너무나 위대한 일이죠. 그런 진정성 있는 시간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냉정한 말씀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상처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두 가지 의견을 다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제 코어가 클래식인 건 분명하고 그렇기 때문에 클래식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되겠죠. 지금은 더 나은 음악을 위한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저울질을 해보면서 균형을 유지하고 부족함을 보이지 않기 위한 채찍질도 필요하겠고요.
음악적 고민은 주로 누구와 얘기하나요.
혼자 해요. 두 분야의 음악을 지속적으로 해 왔던 분이 있었다면 조언을 구할 텐데 안 계시니까 저 혼자 감당해야할 몫이죠. 제가 모범이 되어야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팬텀싱어의 경우 첫 시즌에는 ‘성악을 전공한 이가 방송에서 팝을 불러?’ 하는 시선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뭐라 하지 않잖아요. 스타트라서 힘들 것 같아요.
제가 받는 반응들은 대부분 칭찬이지만 간혹 ‘클래식의 대중화는 어려울 겁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세요. 어느 정도 공감해요. 미술을 예로 들면, 우리가 거장의 작품을 볼 때 사전지식 없이 봤을 때도 감동적이지만 미술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들은 감동의 요소들을 더 많이 찾아내요. 클래식 장르는 대중음악처럼 바로 흡수되기에 솔직히 무리가 있고, 스며들기까지도 오래 걸려요. 스며드는 시간을 제가 축소시켜서 바로 감동받을 수 있게 만들 자신도 없고요.
그런데 클래식이 대중화될 필요가 있을까요. 클래식은 클래식일 뿐인데.
그렇죠. 사실 저도 처음 방송에서 ‘클래식 대중화를 위해 나왔습니다’가 아니었고, 첼로 소리가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클래식의 대중화를 외치는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웃음) 대중화가 되면 대중음악이잖아요. 클래식 애호가나 어릴 때부터 클래식이 익숙한 사람만이 공유하는 음악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 들어도 행복할 수 있는 음악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독일에 있을 때 저를 아껴주시는 할머니가 있었어요. 집에 자주 초대해 주셨는데 그곳에 가면 할머니께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계세요. 가족 모두가 만나는 자리에도-꼭 훌륭한 연주가 아니더라도, 모두가 집중해서 듣지 않더라도-누군가 저만치서 연주를 하고 있어요. 예술을 대하는 한국의 수준이 정말 높아졌는데 아직은 출발점이 다르다고 할까요. 어릴 때부터 다양한 악기를 다루지만 누군가에게 배우거나 학원에 다니면서 시작하잖아요. 클래식이든 국악이든 하나의 놀이 문화처럼, 생활의 일부로 흡수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희망이 있어요.
시간이 좀 지났지만 몇 번의 큰 리사이틀도 좋은 반응을 받았어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라는 모든 연주자들의 꿈의 무대에 예상보다 빨리 올랐어요.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했고 대관 통과마저 감사했어요. 준비하는 과정은 또 너무 즐거웠죠. 레퍼토리 하나하나 정하면서 고심했던 기억이 너무 소중해요. 어떻게 연주해야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는 걸까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어느 정도 발전이 있던 것 같고, 선택한 레퍼토리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냉정한 평가를 하면서 반성도 했습니다.
전곡을 브람스로 꾸민 <홍진호 첼로 독주회>도 전석 매진이었어요.
홍진호가 좋아서 오셨을 텐데 ‘역시 클래식은 지루해’ 하실까봐 당시 걱정이 엄청 심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때 아니었으면 못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바흐 무반주로도 리사이틀 하셔야죠!
아, 꿈이에요. 마음의 고향은 클래식이니까. 과연 언제쯤 할 수 있을까요.
그러고보니 브람스와 닮은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조용하고 생각 엄청 하고… 브람스가 왜 좋아요?
드러내지 않아서 좋아요. “여기, 이렇게 좋은 음악이 있어요”가 아니라 당신들이 알아줄 지 잘 모르겠지만 “내 마음은 이 안에 있어.”하고 켜켜이 잘 숨겨 놓아요. 들을수록 다른 부분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죠. 생각이 많은 작곡가 맞아요. 이렇게까지 고민의 시간을 가질까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꽃피워진 음악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어요. 이토록 긴 시간 동안 사랑 받는 이유가 분명 존재해요.
전에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관객에게 음악을 들려줄 때 ‘이걸 들으면 좋아할까, 감동을 받을까’에 대해 신경 쓴다고. 내 연주를 꼭 그렇게까지 설득해야 하나요.
과거 인터뷰에서 지금 인터뷰의 변화가 생길 것 같네요. 당시는 저에 대한 응원과 사랑이 너무 커서 레퍼토리짜는 시간마저도 감사했어요. 제가 고민이 많은 걸 알고 팬분들도 말씀하세요. 진짜를 알아보는 사람은 반드시 있으니 좋은 음악을 탄생시키려는 것에만 집중하라고요. 너무 신경쓰지 말고, 하고 싶은 음악을 하라고요. 제가 얼마나 든든하겠어요. 마음이 편해지고 용기가 생겼어요.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제가 음악에 집중하는 시간 역시 일방적이지만은 않다는 거에요. 청중을 생각하는 것도 포함되니까요.
가장 좋아하는 첼로 연주자로 언제나 요요마와 미샤 마이스키를 꼽으세요.
요요마의 연주력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삶의 방식,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을 두루두루 살피는 철학도 존경스러워요. 하나의 아티스트가 많은 사람들을 살필 수 있다는 것은 배려심에서 나오거든요. 산만함과 달라요. 지난해 예술의전당에서 리사이틀을 하셨을 때 그분의 연주를 들으며 얼마나 반성했는지 몰라요. 폭발적인 소리가 아니라 저렇게 따뜻하고 단아한 소리로 사람들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죠. 한 달 차이로 같은 장소에서 제가 리사이틀 했을 때는 엄청 발악을 했거든요.
관객과 만나는 일이 많아졌어요.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예술의전당에서의 <첼로 탄츠>인데 남달랐던 추억은 팬미팅이었어요. 텀블벅이라고 해서 저의 음반 제작과 독주회를 위해 도와주신 분들에 한해서 이뤄진 만남이었어요. 정해놓은 카테고리 안에 들어야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고 아늑한 공간에서 소수의 인원이 모여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그때 제가 꼭 해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팬과의 ‘아이 컨택’이었어요. 아무 말도 안하고 서로 눈만 쳐다보는 거. 눈물을 흘리는 분도 계셨는데 저는 그들 한 분 한 분의 눈빛을 잊을 수 없어요. 제가 힘들고 고민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마다 그 시간이 생각나거든요. 제 인생에서 중요한 에피소드로 남을 것 같아요.
다양한 장르와의 합주를 선보였는데 ‘진호의 책방’을 통한 이희문 선생님과의 연주는 유독 특별했어요.
매달 제가 좋아하는 책을 선정하고 책의 내용과 어울리는 아티스트를 직접 섭외했어요. 이희문 선생님도 제가 직접 연락드렸죠. 제가 생각한 기획을 말씀드렸더니 예산 같은 건 묻지도 않으시고 흥미롭게 생각하시더라고요. 저는 또 시간을 많이 뺏고 싶지 않으니까 두어 번 만나서 연습하면 될 것 같다고 말씀드리면 아니라고, 더 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책임감이 남다르시고 진지하시고 또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작업을 통해 알게 됐어요.
여러 장르와의 합주를 통해 음악을 바라보는 시점이 조금 바뀌었나요.
와, 어떻게 저렇게 빠르게 치지? 저런 테크닉으로 어떻게 음정이 틀리지 않지? 어쩌면 그렇게 화려하게 연주하지? 과거에 이렇게 생각했다면 지금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에 집중하게 됐어요. 요요마의 연주를 들으면서도 생각해요. 이런 메시지를 담았구나, 그렇기 때문에 레퍼토리의 순서가 이렇구나, 이런 이야기를 이런 흐름으로 전달하고 싶으셨구나, 음악가의 역할이 이런 거구나…
예전보다 확실히 자유로워진 것 같나요?
네, 그리고 더 사랑하게 됐어요. 몰랐던 게 들리기 시작하고 못봤던 게 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클래식 하나만이라도 잘하라는 얘기를 들을 때도 있지만 저는 제가 행복한 것도 정말 중요하거든요. 제 행복이 듣는 이에게 전달되는 사실은 너무 행복하고요. 저보다 연주 잘하는 사람 세상에 수두룩해요. 저는 장르보다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라디오에서 어떤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기억, 홍진호의 첼로 소리가 누군가의 기억에 한 조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음악의 가치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언어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대학 들어가자마자 한 달 동안 독일로 배낭여행을 떠난 적이 있어요. 인터넷도 잘 안되던 시절이라 한 손에 가이드북을 들고 말이죠. 혼자 여행하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었는데 20일쯤 지났을 무렵 기차를 잘못 타서 라이프치히까지 가게 된 거에요. 드넓은 아우구스투스 광장에 게반트하우스가 떡 하니 서 있기에 무조건 들어갔죠. 반베르크 오케스트라의 차이콥스키 비창을 듣는데 음악에 위로를 받는게 이런 거구나 깨달았어요. 꾀죄죄한 차림으로 들어갔다가 오열을 하고 나오면서, 첼로 하고 싶다가 아니라,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첼리스트 홍진호를 잘 몰랐을 때는 그저 인생이 탄탄대로인 사람이구나 생각했어요. 절망을 겪어보지 못한 연주자일 거라고.
감정적으로 굉장히 많이 무너져요. 객관적으로 바라볼수록 더 무너지죠. 저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일어나자마자 잠옷 입은 그대로 방음실에 들어가 1시간 동안 첼로 연습을 해요. 그리고 물을 끓이면서 차주전자를 골라요. 차를 고르고 찻잎을 꺼내 냄새를 맡고 향을 피워요. 차를 마시는 동안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요. 나는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있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부족한 부분을 뭘로 채워야 할까. 매일 반복하는 이 시간들이 일종의 수행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안되는 걸 쥐고 있던 열등의식이 있었는데 내려놓게 되고 인정하게 되면서, 내가 잘하는 것을 해보면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올해 음반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자작곡과 작곡가님에게 받는 곡을 합쳐서 모두 새로운 곡으로 구성할 계획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1930년대의 낭만, 문화격동기의 매력적인 분위기가 묻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팬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Love Yourself! 일부러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불행해질 수 있는 요소가 너무 많거든요.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나를 지킬 수 있는 것,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뭘까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editor 이민정
대니 구의 하쿠나 마타타
처음 한국 관객들 앞에 선 것이 2016년 앙상블 디토를 통해서였죠.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생일날 밥을 사주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면서요?
맞아요. 어떻게 아세요?(웃음) 저희가 미국에서 같이 공연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저를 예쁘게 봐주셨나봐요. 마침 그날이 제 생일이어서 저녁을 사주셨고, 그때 앙상블 디토나 한국에서의 활동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었죠. 그 인연으로 소속사와 미팅도 하고 디토에 합류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정말 다양한 무대에 올랐어요.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 협연은 물론 어린이 공연과 클래식 강연까지 하더라고요.
사실 <핑크퐁 클래식 나라> 제안을 받았을 때는 이게 그 유명한 ‘아기 상어’인 줄도 몰랐어요. 그때 제 매니저의 아이가 어렸는데, 완전 대세라고 무조건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사실 이 공연이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아직 클래식 음악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아이들한테 재미있게 클래식을 알려줄 수 있거든요. 이 공연은 저한테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어요.
대니 구라는 아티스트에게서 이제 ‘슈퍼밴드2’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처음에는 고민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막상 제 앞에 다가오니 갈등이 되더라고요. 말리는 사람들도 많았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걸 고민하는 저 스스로가 건방지게 느껴지더라고요. 사실은 두려웠던 거죠. 지금까지 열심히 만들어왔던 것을 뒤로 하고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 하니까요. 그때 제가 좋아하는 한마디를 떠올렸어요. 가장 두려울 때, 그것만 넘어가면 정말 큰 배움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말. 결과적으로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어떤 것을 얻었나요?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노래도 시작했고 사람도 얻었고, 작곡과 편곡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제가 할 수 있는 장르를 한 발 넓힌 것 같아요. 그리고 슈퍼밴드가 끝나자마자 부산에서 오케스트라 협연이 있었는데, 이 공연이 전보다 더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아, 이거였지!’ 싶었어요.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여기까지 상상하진 못했을 것 같아요.
사실 유럽이나 캐나다, 미국에서는 클래식 활동이 뻔하거든요. 실내악이나 독주, 협연 정도 생각할 수 있는데, 한국에는 오늘처럼 잡지도 찍을 수 있고 라디오도 할 수 있고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더라고요. 덕분에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만날 수 있고요. 그게 정말 신기했어요.
2월 8일에 첫 정규 앨범 ‘HOME’이 발매되었습니다. 슬쩍 봤는데 음악이 굉장히 다양하더라고요.
첫 정규 앨범이니 완전히 클래식으로 가야 할지, 장르를 섞어서 재밌게 해봐야 할지 방향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결국 재즈, 클래식, 펑크, 자작곡까지 모두 다 들어갔죠. 저도 어제 곡의 리스트를 쭉 다시 봤는데, 되게 재밌더라고요. 중간에는 클래식 곡이 중심을 딱 잡아주고요. 주변에서 많이 믿어준 덕분에 뿌듯한 음반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음악도 음악인데, 자작시가 있더라고요.
제가 시를 통해서 한국말을 많이 배웠어요. 나이가 더 든 후에도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하면 개인적으로 부끄러울 것 같아서 공부를 하고 있거든요. 시는 짧지만 깊게 파고들 수 있으니까 재밌어요. 그래서 이번 앨범에 곡마다 설명을 쓰면서 그 밑에 짧은 시를 써봤어요. 음악들에 대해 느껴지는 대로 썼는데, 조금 오글거린다고 느끼실 수도 있어요.(웃음)
수록곡 중 ‘Will You Be My Home’은 작년에 먼저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공개했죠.
제가 작곡, 작사를 같이 한 곡인데 처음에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곡이었어요. 그런데 작곡을 하다가 막힌 거예요. ‘그럼 가사를 얹어볼까?’ 해서 쓰다 보니 갈수록 연말 느낌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연말이 가기 전에 먼저 공개하고 싶었어요. 또 감사하게도 슈퍼밴드가 끝나자마자 많은 분들이 새로운 음악을 기다려 주셔서요. ‘Be My Love’를 미리 공개하는 것도 고민했는데, 이왕이면 제가 쓴 곡으로 먼저 찾아뵙고 싶어서 선택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건가요.
일단 재밌어요. 할 때마다 늘 많은 것을 얻고요. 그리고 여러 활동을 할수록 제가 클래식 음악과 대중 사이를 연결할 수 있는 다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유튜브나 SNS를 열심히 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고요. 저희는 무대 위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잖아요. 이와 반대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다가가면 클래식 음악을 조금 더 편안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었어요.
안 그래도 영상을 많이 봤는데, 바이올린을 비욘세라고 부른다면서요. 이유가 있어요?
친구들이랑 장난을 치다가 부른 것이 시작이었어요. 일단 비욘세는 엄청난 디바잖아요. 어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서도 악기의 소리가 크게 울려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붙인 이름이에요. 그리고 클래식이라는 장르를 생각했을 때, 왠지 떠올리기 어려운 이름이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왜 안 어울리지? 클래식도 그냥 음악인데!’라는 생각에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어요. 장난처럼 시작한 것이 벌써 6년이 지났네요.
작년 연말에 롯데콘서트홀에서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여셨죠. ‘유키 구라모토와 친구들’, ‘금난새와 친구들’이 아닌 아티스트 대니 구의 음악 세계를 마음껏 펼쳤다고 들었어요.
롯데콘서트홀이라는 큰 공연장에서 존경하는 아티스트들을 모시고 기획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영광이었어요. 일회성이 아니라 매년 할 수 있는 공연을 꾸리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장르보다는 연말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생각하며 짰고, 그러다 보니 게스트도 비브라포니스트 윤현상,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 가수 양파, 재즈 아티스트인 조윤성 트리오까지 다양하게 초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니 구와 친구들’이네요.
그렇죠. 감사하게도 그런 느낌이죠.
클래식 무대에 오를 때와 다른 장르와 함께할 때는 마음도 다르지 않을까 싶은데요.
클래식 음악을 할 때는 항상 저한테 과분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요. 계속해서 한 단계씩 성장하는 과정이고요. 그 외의 활동은 늘 신인의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언제나 배우는 자세를 가지려고 해요. 물론 다양한 장르에 발을 걸치고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못했을 때 쉽게 욕을 먹을 수도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그렇기에 더 정신을 다잡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 길의 끝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요?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과 함께 연주를 하고 있고 나이도 서른이 넘어가니, 벌써 다음 세대를 생각하게 돼요. 그래서 잡은 목표가 2030년에 학교를 세우는 거였어요. 무료로 음악을 배울 수 있는 중·고등학교를 만들고 싶거든요. 특히 한국에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어서 음악을 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재능을 포기하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아직은 이룰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이루고 싶은 목표로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또 다른 목표는 지금보다 관객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거예요. 관객들이 찾아오는 것을 기다리기보다는 클래식 음악을 쉽게 느낄 수 있도록 더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문화를 조금씩 리드해나가고 싶어요.
그럼 음악인이 아닌, 사람 대니 구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어요?
뭘 하든 충실하고 꾸준하게 하고 싶어요. 아버지께서 저에게 항상 말씀하시는 것이 열심히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 말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지금 이런 마음이 10년 후에도 똑같았으면 좋겠고요. 나중에 후배들이 저를 떠올렸을 때, ‘대니 구 같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대니 구에게 클래식이란?
클래식은 평생의 ‘HOME’이죠. 어떤 장르를 만나든 새로운 인연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저라는 사람의 기반은 클래식이니까요. 고향이죠.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 콘서트의 테마는 ‘HOME Again’이었고, 이번 앨범 제목은 ‘HOME’, 선공개한 곡의 제목도 ‘Will You Be My Home’이네요. 슈퍼밴드에서는 ‘House I Used to Call Home’이라는 곡으로 감동을 줬고요.
제가 ‘HOME’이라는 단어를 엄청 좋아해요. 단어 자체가 따뜻한 느낌이잖아요. 집이라는 게 사람마다 떠올리는 느낌이 다르겠지만, 그게 또 매력인 것 같고요. 우리가 집이라고 느끼는 공간도 상황에 따라 계속해서 변하잖아요. 저도 교포지만 이젠 한국이 집처럼 느껴져요. 부모님이 한국에 오시면, 같이 있는 그 공간 자체가 집이 되고요. 공연을 할 때도 관객들이 집처럼 편안하다고 느끼게 만들고 싶어요. 이번 앨범도 제목처럼 ‘HOME’으로 느껴졌으면 좋겠네요. editor 손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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