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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Guilty, Or Not Guilty?_사랑에 미친 뮤지컬 캐릭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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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3. 10:59333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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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lty, Or Not Guilty?

사랑 :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사랑의 정의는 이러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열렬히 원하는 마음이 때로는 독이 되어, 걷잡을 수 없는 행동으로 번지기도 하니 언제나 조심히 다뤄야 한다. 인간은 사랑 앞에서 누구보다 아름답게 빛나지만, 그만큼 파괴적이고 극단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냐고 묻는다면 확답을 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지금 소개할 작품의 인물들은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에 미치도록 매달리며 자신을 내던진다. 단편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들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납득할 수 없는 인물이지만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고자 한다. 얻지 못한 애정을 끝없이 갈구하며, 영원한 결핍 속에 헤엄칠 이들을 위해. editor 조은화


“우린 이어져 있으니까”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스메르쟈코프

작품은 러시아의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원작이다. 이 집안은 아버지 표도르, 첫째 드미트리, 둘째 이반, 셋째 알료샤와 사생아 스메르쟈코프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스메르쟈코프는 표도르의 아들로 추정되지만, 정작 자식 취급은 받지 못한 채 하인으로나마 겨우 집안의 지하실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자신의 근원을 모르는 스메르쟈코프는 가족에 대한 결핍이 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결핍을 엿볼 수 있는데, 자신도 까라마조프라고 주장하는 모습과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모습에서 스메르쟈코프의 내면 깊숙이 숨겨진 외로움과 서러움이 느껴진다. 문제는 그런 심정이 어딘가 비틀린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 신을 부정하고 내면의 존재와 싸우고 있는 이반의 논문에 매혹된 스메르쟈코프는 논문과 이반을 동일시하며 집착하기 시작한다. 이반의 주장에 언급되는 장군과 소년은 전형적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건 불쌍하고 힘없는 소년. 신이 있다면 왜 이런 가혹한 일을 두고 보는지, 진정한 자비는 무엇인지 외치는 이반의 역설에 스메르쟈코프는 깊이 이입한다. 까라마조프가에서 학대당하고,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하는 스스로를 그 소년에 대입한 것이 아닐까. 자신을 무시하고 가차 없이 내치는 이반이지만, 스메르쟈코프는 자신과 그가 이어져 있다고 굳게 믿으며 인간성을 상실한 행위까지 가하고 만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과수원 뮤지컬 컴퍼니

작품에서 언급하듯, 스메르쟈코프라는 이름의 뜻은 ‘수증기’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정착할 수도 없는 수증기처럼 스메르쟈코프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것처럼 위태롭다. 하지만 그의 존재감마저 흐릿했냐고 묻는다면 단칼에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누구보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고, 까라마조프 형제들과 피로 이어져 있다고 주장하며 눈동자를 번뜩이는 인물이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작품의 넘버 ‘헛소리’처럼, 스메르쟈코프의 말이 모두 헛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그의 입장을 헤아려 안쓰러운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몽유병에 걸린 것처럼”
뮤지컬 <베르테르> 베르테르

치정 드라마를 볼 때, 흔히 ‘사랑이 뭐길래’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감정에 휘둘려 이성을 잃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운명이라고 생각되는-그것이 혼자만의 착각이더라도-상대를 만나게 된다면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본 뒤 단숨에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까? 심지어 같은 관심사를 통해 유대감까지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함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 않겠는가. 베르테르는 문학적 취 향이 통하는 롯데에게 깊은 사랑과 설렘을 느끼지만, 롯데는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상태다. 자신의 마음을 숨기려고 애를 쓰지만 재채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는 말처럼 도통 쉽지가 않다. 적어도 베르테르는 바람직한 결말을 시도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걸 직시하고 고백도 하지 않은 채 롯데의 곁을 떠나주니까. 그럼에도 다시 돌아와 롯데의 앞에 나타난 것은,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 없어서다. 마음은 나의 것임에도 도통 제어가 되지 않는 알 수 없는 것이라, 베르테르의 마음을 모두는 아니더라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한참 유행했던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는 대사가 이렇게 들어맞는 캐릭터가 또 있을까.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마음 때문에 자신도, 사랑하는 롯데도 괴롭히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베르테르는 결국 영원히 그녀의 곁을 떠나 주기로 마음먹는다. 순수했던 베르테르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맞이하는 극단적인 결말 앞에서,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의 면모를 엿보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뮤지컬 <베르테르> ©CJ ENM

연출가 조광화는 작품의 배경 도시 발하임을 거대 화훼산업단지로 설정해 노란색 해바라기를 다수 배치했다. 태양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는 베르테르의 꺼지지 않는 순정을 상기시킨다. 결국 태양에 닿지 못한 채 시드는 해바라기처럼 베르테르 역시 롯데에 닿지 못하고 결말을 맞이하지만, 누군가는 그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영원히 기억해주기를.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뮤지컬 <팬레터> 세훈

동경과 사랑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간절한 마음으로 대상만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두 감정을 구별할 필요가 있는지 묻게 된다. 작품 속 세훈은 작가 김해진을 열렬히 동경하며 닮고 싶어하는 18세 소년. ‘히카루’라는 필명으로 해진에게 팬레터를 보내며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잔심부름을 하는 급사로 칠인회에 들어와 해진의 곁에 머물게 된 세훈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 차오르지만, 정작 자신이 히카루라는 것을 밝힐 틈도 주어지지 않는다. 동경의 마음을 가득 담아 보낸 팬레터가, 작가에게 커다란 빛이 되어 사랑과 비슷한 색을 띠게 되는 상황은 세훈의 계획에 전혀 없는 일이었다. 이쯤 되니 혼자 끙끙 앓으며 발을 동동 구르는 세훈이 안쓰러워진다. 적어도 해진이 히카루를 두고 ‘곧 결혼할지도 몰라’라는 말만 하지 않았더라면 세훈이 용기 내어 사실을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해진에게 히카루와의 편지는 글을 쓰게 만드는 동기이자, 삶의 의미로 작용하고 있었다.

뮤지컬 <팬레터> ©㈜라이브

해진이 글을 쓸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마음 하나로, 세훈은 또 다른 자아 히카루를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히카루와의 그림자 연출은 세훈이 원하는 모습을 그대로 비춰준다. 똑같이 움직이고 있지만 너무도 다른 모습을 한 두 존재는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걸 의미하는 것만 같다. 좋아하는 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만들어 주고 싶은 심정을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하지만 히카루와 주고받는 편지가 늘어날수록, 닿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해진의 절박함은 커져만 간다. 점점 피폐해져 가는 그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이는 결국 세훈이다. 마음에 깊이 뿌리내린 죄책감과, 절대 히카루가 될 수 없다는 자괴감은 미성숙한 십 대의 세훈이 감당하기엔 분명 벅찼을 테다.

“나를 잡아줘”
뮤지컬 <테레즈 라캥> 테레즈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의 모티프로도 유명한 작품이다. 뮤지컬 <테레즈 라캥>은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숨어 있는 욕망과 파멸의 과정을 음악과 함께 담아내며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약속 아래 이뤄지는 결혼. 일생일대의 선택인 만큼 신중해야 하지만 주인공 테레즈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고모의 집에 맡겨진 그에게 돌아온 소식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 오갈 곳 없는 테레즈에게 카미유와의 결혼은 거부할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다. 애정도, 흥미도 없는 결혼 생활을 보내던 와중 나타난 소꿉친구 로랑은 테레즈의 마음 속 숨어있던 불씨에 장작을 끼얹는다. 단순히 병약한 카미유에 비해 이상적인 모습을 한 남자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로랑은 테레즈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는 사람이니, 순수하고 자유로웠던 시 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유일한 연결고리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은밀한 관계로 발전한 두 사람은 밀회를 넘어, 카미유를 죽이기에 이른다. 남은 것은 영원한 사랑일 거라 생각했겠지만 살인이 어디 가벼운 일인가. 커다란 죄책감과 악몽이 두 사람을 찾아와 괴롭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뮤지컬 <테레즈 라캥> ©한다 프로덕션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무대의 배경이 되는 라캥 가의 집에서 진행된다. 집은 어떤 장소보다 아늑하고 평안을 얻는 곳이어야 하건만, 라캥의 집은 그렇지 않다. 테레즈에게는 답답한 지옥이자 로랑과의 밀회 장소이며, 죄책감으로 점철된 불안한 공간. 사랑을 위해 비도덕적인 행동을 감행하는 테레즈의 행동을 옹호할 수는 없다.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일생의 대부분을 자유없이 살아온 테레즈에게 로랑의 등장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줄 만큼 폭발적으로 다가오는 기폭제가 아니었을까. 테레즈의 선택은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깔려 있는 자유에 대한 갈망과 욕망의 본질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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