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충실하게
뮤지컬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의 배우 주민진이 H를 연기하며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양심에 대해 말한다.
editor 조은화 photographer 문겨레 place 라뚜셩트
한 명이라도 나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뮤지컬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의 주인공 ‘헨리’는 존재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물로,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또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픈 마음으로 셰익스피어의 미발표 작품을 얻었다며 거짓말을 하고 만다. 셰익스피어의 유물이라면 무엇이라도 열광하던 런던 사회에 미발표 작품이라니! 눈치챘다시피 헨리의 사소한 거짓말은 결국 런던 최고의 스캔들로 커지고 마는데, 그런 헨리의 곁에는 ‘H’라는 캐릭터가 있다. 갈등과 선택의 순간마다 푸른 코트를 휘날리며 나타나 원하는 모든 걸 가져다 주는 미지의 신사. 배우 주민진이 맡은 역할은 바로 이 ‘H’다. 사실 그가 미지의 존재를 연기하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배니싱>의 ‘케이’, <더테일 에이프릴 풀스>의 ‘바이런’ 등 그가 무대에 오를 때마다 신비로운 분위기로 바뀌던 순간을 떠올리면, 일명 ‘인외’ 캐릭터가 이만큼 잘 어울리는 배우가 또 있을까 싶다. 하지만 이런 주민진에게도 시시때때로 역할이 달라지는 ‘H’는 꽤나 까다로운 캐릭터란다. 창작뮤지컬의 초연, 더군다나 정체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인물을 연기한다면 응당 눈에 띄는 특징을 파악하고 구체화하기 위해 애를 쓰기 마련. 17년 차 배우 주민진은 이해와 고민과 갈등하는 시간과 더불어, 훨씬 어린 배우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 는 작업에도 적극적이었다.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며 결국 자신만의 역할로 완성한 주민진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의 첫 번째 공연에 함께 하게 되었어요.
새로운 걸 계속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정말 어렵고 힘들었어요. 오죽하면 ‘이제 라이선스 작품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웃음) 매번 신선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한계가 있잖아요. 좋은 아이디어들을 조합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는 과정의 반복이었어요. 나의 연기와 노래가 가지는 방향성이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되더라고요. 어느 정도 정해진 틀이 있는 라이선스 작품을 번갈아 가며 무대에 오르면 적당히 무게 중심을 맞출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미지의 존재 H를 처음 선보이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이 필요했나요.
H는 표현의 가능성이 열려 있어서 여러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는 캐릭터예요. 누군가의 양심 또는 합리화, 혹은 시대의 패션 등 H가 상징하는 건 많아요. 그렇다면 수많은 의미들을 어떻게 쌓아서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죠. 제가 표현하는 H는 인간의 양심과 합리화를 상징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싶었습니다. 사람의 양심이 움직인 후에는 합리화가 따라붙어야 스스로의 사고가 온전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길을 가겠다고 선택한다면 그 때부터 이 선택이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합리화가 따라붙는 거죠. 헨리와 사무엘이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옆에서 지켜보며 행동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존재가 H예요.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스스로의 몫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작품 속 H는 여러 형태로 존재합니다. 장면마다 다른 정체성을 표현하는 게 꽤나 힘들었을 것 같아요.
장면마다 그 순간에 맞는 모습을 찾으려고 했어요. 캐릭터의 틀을 정해두고 작품을 끼워 맞추려고 하면 굉장히 어렵거든요. 어떠한 형태로도 변할 수 있는 H를 표현하려면 모든 장면마다 적절하게 녹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H가 표현하는 역할 사이의 개연성을 고민하기 보다, 그 순간에 들 어맞는 정체성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저에게도 여러 가지 모습이 존재하는 것처럼, 각기 다른 장면의 H가 모두 H로 보였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번 작품의 가장 큰 목표인 것 같아요.
H의 어떤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나요.
표현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도 괜찮다는 점이요. 정해진 게 없다는 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라서 무섭기도 해요. 지금보다 연차가 쌓이고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게 된다면 더 다양하고 재밌는 H를 보여줄 수 있겠죠. 지금의 주민진으로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 아쉽기도 하지만, 지금의 저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배우 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더 좋은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나 봐요.
언제나 부족함을 느껴요. 제 기준에서 ‘연기를 잘한다’라는 선배님들을 보면 항상 감탄과 함께 다양하고 깊이 있는 표현을 배우게 돼요. 새로운 것들은 무한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항상 두려운 것 같아요.
그럼에도 배우로서 스스로의 장점을 찾는다면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 같지만, 현재의 가장 큰 장점은 열린 마음을 얻게 되었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제가 공부한 것들이 옳고, 그 길만이 정답인 것 같았는데 요즘은 후배들의 생각과 방식을 존중하게 됐어요. 이전에는 말로만 ‘네가 하는 게 맞다’라고 했다면, 지금은 진심으로 그들의 방법을 따라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겼죠. 이제야 겨우 수용하는 능력을 키운 것 같아요.
헨리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관객들이 가장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헨리의 거짓말이 아버지를 위한 거라고 하지만, 스스로가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했고요.
말씀하신 부분이 가장 고민했던 지점이에요.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어린 나이에 잘못 표출되고, 그것이 옳지 않다는 걸 깨닫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작품의 목표였던 것 같아요. 저를 포함한 누구나 헨리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을 거예요.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을 없애는 건 불가능한 것 같거든요. 인정받는다는 건 ‘너 잘 했어’가 아니라 ‘여기 네가 있네’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셰익스피어의 미발표 작품을 아버지에게 가져다 줌으로써 아버지는 헨리의 존재를 인식하고, 헨리는 자신의 결핍을 채우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얻는 과정에서 실수를 저지르느냐, 혹은 나의 욕심을 적당히 조절하느냐가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숙제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주민진 배우가 스스로의 존재를 확신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관객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제가 무대 위에 오를 수 있어요. 배우로서 인정받는 건 관객분들이 아니면 답이 없잖아요. 사실 연기 하나만을 원한다면 조그만 극장을 지어 놓고 혼자 연기를 해도 괜찮겠죠. 하지만 관객분들과 옆에서 도와주시는 많은 창작진, 관계자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배우들이 무대에서 빛을 발하고, 생존을 이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를 아예 없애는 건 불가능하고, 연기와 노래를 통해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랑받고 있다는 걸 체감하나요?
어렸을 때부터 많이 느꼈어요. 제가 세계를 무대로 대중 예술을 하는 배우가 아닌데도 저를 알아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요. 나의 인생을 걸어왔을 뿐인데 관심과 사랑을 주며 제가 걷는 길을 믿어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 자체로 인생의 큰 행복을 얻은 것 같아요.
이야기가 끝난 뒤 헨리가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 궁금해졌어요.
저는 단편적인 엔딩을 무척 싫어해요. 어렸을 때부터 영화나 만화책을 볼 때 마지막 장면을 보지 않을 정도로요. 뻔한 마무리로 이야기가 끝나는 게 싫어서, 저만의 결말을 상상하곤 했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이야기는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생은 그렇지 않잖아요. 우리는 매일 새로운 일을 겪게 되고, 다른 높낮이의 감정 기복을 경험하는데 단순히 해피 엔딩이라고 말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해요. 아마 헨리는 앞으로도 비슷한 경험을 계속할 테고, 그 안에서 새로운 고민들을 찾아낼 거예요. 세상의 모든 이들처럼 좀 더 좋은 선택을 위해 끝없이 고민하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지 않을까요. 그 속에서 헨리만의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김은영 연출님께서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고민이 들 때 이 작품을 통해 용기 낼 수 있었다는 말씀을 한 적이 있어요. 연출님과 비슷한 고민이 찾아올 때, 판단의 지표로 작용하는 게 있나요.
작품 하나를 연습하면서도 여러 번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되묻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일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답을 찾으려고 해요. 예를 들면 요리나 그림도 재료를 준비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배우가 하는 작업과 비슷한 원리로 돌아가더라고요. 예술과 철학이 붙어 있듯 모든 건 삶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옳은 건 없고 선택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결과물이 어떻게 나와도 평생 남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처럼 디지털화 된 세상에서 위대한 예술이 탄생하기도 힘든 것 같고요.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걸 옳다고 생각하고,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요.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지칠 때도 있을텐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하나요.
한계라는 생각이 들 때가 발전할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일뿐만 아니라 취미 생활에서도 더 이상은 못 할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오지만, 그 때 멈추면 끝나는 거니까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지점이라는 생각을 하며 버티는 거죠.
‘위기를 기회로’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무척 긍정적인 편인가 봐요.
저는 초특급 염세주의자입니다.(웃음)
연습 과정에서 같은 역을 맡은 김지철, 황휘 배우님과 소통한 부분이 있을까요.
너무 많죠. ‘대학로 최고 미남’ 황휘에게 정말 많이 배웠어요.(웃음) H 중 가장 어리지만, 저보다 훨씬 생각이 열려 있어요. ‘나는 네 나이 때 왜 너처럼 살지 못했을까’ 물어볼 정도였죠. 정말 순수하고 맑은 배우예요. 지철이는 작품의 리딩 공연부터 함께 했기 때문에 작가님과 함께 긴 시간 동안 고민한 흔적이 보여요. 저는 겪지 못한 시간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며 배우고, 그 위에 휘의 새로운 생각을 얹으며 최고의 소통을 했습니다.
세 분이 되게 다른 느낌일 것 같아요.
완전히 달라요. 저도 보면서 느낄 정도로요.
그럼 주민진의 H가 지닌 매력은 무엇인가요.
주민진이 한다?(웃음) 농담이고요. 아직까지는 춤을 잘 춘다는 게 매력이 될 것 같아요. 예전에 비하면 힘이 빠지고 있지만, 여전히 춤 추는 걸 즐기고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무대에서 보여주는 에너지가 객석까지 전해지더라고요. 항상 너무 즐거워 보여요.
제가 즐기지 못하면 관객들을 즐겁게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해요. 신기한 점은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애를 쓰면 오히려 재미가 없다는 거예요. 최선을 다해 제 몫을 수행하고 열심히 하면 그 자체로 너무 멋있는데, ‘나 열심히 하고 있어, 재밌겠지?’ 하고 보여주는 것에 치중하면 오히려 매력이 반감돼요. 그래서 제가 즐길 거리를 무조건 찾아내려고 하죠. 예를 들면 춤이요. 제가 잘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요소인 것 같아요. 다만 노래와 연기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잘 하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지금보다 더요?
노래는 도착하지 못하는 목적지 같은 거예요.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요. 이번에도 임규형 배우 보면서 감탄했어요. 어떻게 하면 너처럼 노래를 잘 할 수 있냐, 나는 붕어빵 장사나 해야겠다고 했더니 ‘형은 그냥 붕어빵 장사 하세요’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잘하는 사람을 보면 나도 아직 늦지 않았고 더 노력해야겠다는 자극이 돼요. 연기는 우주에 남겨진 외딴 섬 같은 곳이고요. 둘 다 찾아야만 하지만 찾을 수 없는 곳이랍니다.
주민진 배우만의 디테일한 요소와 애드리브가 유명하더라고요. 캐릭터에 본인의 색깔을 입히는 걸 선호하는 편인가요.
애드리브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에요.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다들 많이 웃으시는데 진짜랍니다. 저에게 애드리브는 기계들이 고장 났을 때 가끔 뿌려주는 윤활제라고 할 수 있어요. 모든 장면이 항상 매끄럽게 흘러갈 수는 없거든요. 버퍼링이 걸렸을 때 목적에 맞게 유연히 넘어갈 수 있도록 뿌려주는 것 같아요. 즉흥적인 대사와 연기는 문제 상황을 빠르게 원상태로 복귀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 목적이 될 수는 없어요. 다만 애드리브가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려면 작품과 상황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있어야 해요. 극의 상황에서 충분히 나올 법한 말이라는 걸 누구나 인정할 수 있어야 하죠.
항상 유쾌하고 자신감 있어 보이는데, 보여지는 직업이다 보니 스스로를 검열하게 될 때가 있을 것 같아요. 멘탈 관리법이 궁금합니다.
사람들 앞에 많이 선다는 건 여러가지 정체성을 짧은 시간 내에 보여줘야 하는 거라서 생각이 많아질 수 밖에 없는데, 단순 노동을 하다 보면 해소가 되더라고요.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 맡은 바 역할이 있잖아요. 각자 직장에서, 가정에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행위가 배우로서 연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아요. 역할이라는 건 H로서의 주민진, <해적>의 잭으로서의 주민진, 또는 배우 자체의 주민진 등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아무런 역할을 맡지 않은 상태로 들어가서 단순 노동을 하며 생각을 비우는 거죠.
정체성을 철저하게 분리하는 거네요.
그러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집에 가면 업무적인 책임감이나 자아를 내려놓고 다른 역할에 취해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스스로 ‘꼰대’가 되어가는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올해 40대를 맞이 하게 되었는데 마음가짐에 변화가 있나요.
그 말을 했던 39살이 불과 작년인데도 신기할 정도로 달라요. 마흔이 되자마자 초등학생이 된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여행을 다녀와서 그런지 더 이상 쫓기지 않는 기분이고, 마음이 무척 편해요. 39살의 주민진은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부담이 있었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지만 두려움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시도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어도 천천히 즐겨야겠다는 마음이에요. 요즘은 침몰하는 배에 타고 있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배가 침몰한다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치잖아요. 애를 쓰다 보면 오히려 실수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해서, 한 번쯤 즐겨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저에게는 정답이 아닐지라도, 오답은 아니더라고요. 상대의 의견이 맞다는 전제하에 ‘나도 함께 노력해 봐야겠다, 내가 한번 바꿔 볼게’라는 태도로 다가가니 침몰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더라고요.
이제 유연함까지 갖추셨네요.
정말 그렇다면, 다른 무언가가 사라졌겠죠. 얻는 것만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최근 3개월 정도의 휴식기를 가져서인지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여행 다니면서 읽고 싶던 책들을 읽었어요. 친구가 제주도에서 가게를 하는데, 거기서 치킨 박스를 접는 단순 노동을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하고요. 취미인 바이크도 열심히 탔어요.
그렇지 않아도 대학로에 바이크를 전파시킨 분이라고…
이건 오해라는 걸 여기서 밝힙니다.(웃음) 저는 H처럼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욕구에 대해 들어줬을 뿐 그들이 선택한 거죠. 제가 열심히 취미 활동 하는 걸 보며 자신들의 로망을 이야기하더라고요.
정말 H 그 자체네요.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들어준 것뿐인데 그렇게 됐네요.
이쯤 되니 바이크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한데요.
저는 산에서 오프로드 바이크를 타요. 도로가 너무 무서워서 넘어져도 괜찮은 흙바닥에서 타는 걸 좋아하거든요. 절대 자랑하고 싶어서 타는 게 아니랍니다. 가장 큰 매력은 인생의 모든 원리가 담겨있다는 거예요. 첫 번째는 험한 길일수록 힘을 빼야 한다는 점입니다. 장애물을 만났을 때 억지로 방향을 조절하려고 하면, 되려 넘어지고 크게 다칠 수 있거든요. 긴장을 풀고 길의 흐름에 몸을 맡겨야 해요. 두 번째는 목표하는 곳만 봐야 한다는 거예요. 정상만 보면 오르막길도 무리 없는데, 가는 길의 돌멩이나 나무 줄기에 신경 쓰면 걸려 넘어져 버려요.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너무 비슷하지 않나요?
취미 활동에 이러한 철학이 담겨 있을 줄은 몰랐어요.
너무 신기하죠? 두려움이 생겨도 목표에 시선을 고정한 채 즐기고 노력하면 언젠가 닿아요. 목적지로 가는 길에 놓인 자잘한 것들에 시선을 뺏기면 넘어지게 돼요.
뮤지컬 <프리스트>로 극작 연출 경험이 있어요. 앞으로 또 다른 작품을 기대해 봐도 될까요.
아마 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의 절반은 반가워 하실 테고, 절반은 싫어하실 거예요. 연기만 하기를 바라시는 분들이 분명 계시겠지만, 창작 활동을 멈추지는 않으려고요. 사실 팬분들께는 선택권이 있어요. 무대 위의 저를 좋아하신다면 그걸 즐겨 주시면 되고, 극작이나 다른 활동도 좋다고 느끼신다면 그것도 같이 봐주시면 되죠. 하지만 저는 선택이 불가능해요. 희한할 정도로 예술가로서의 책임감이 생긴다고 해야 할까요. 이 일을 하며 느꼈던 감정과 철학, 사상들을 이야기로 풀어서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끊임없이 자라나요. 그래서 펜을 놓지 못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는 우리 집에 있는 펜을 다 없애 버리고 싶겠지만, 저도 어쩔 수가 없답니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얘기하는 것도 좋아하는 편인가 봐요.
누구나 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걸 좋아하지 않나요? 너무 멋진 일이잖아요. 저의 이야기를 이렇게 들어 주시는 것도 정말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말하는 걸 즐기지는 않지만,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속의 이야기를 꺼내면 제 생각도 잘 정리가 되거든요.
모든 작품이 소중하겠지만, 이번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이 가지는 특별함은 무엇인가요.
새로운 고민의 포문을 열어준 작품인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을 해도 고민들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나로부터가 아닌 창작진 분들, 다른 배우들로부터 시작된 고민을 같이 해결해 가며 얻는 것들이 많았거든요.작품을 보는 시선을 통해 새로운 접근을 해봤던 것 같아요. 너무 큰 공부가 됐고, 즐거운 작업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뮤지컬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
기간 : 2023년 3월 8일-2023년 5월 28일
시간 : 화·목·금 20:00 | 수 16:00 20:00 |
주말 14:00 18:00
가격 : R석 6만 6천원 | S석 4만 4천원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문의 :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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