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4일 파리에 도착한 지 이틀이 지났다. 파리에 급속으로 적응한 우리는 근교로 나들이를 다녀오기로 했다. 폭풍 검색 후에 찾은 곳이 바로 샹보르 성(Château de Chambord). 프랑스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재됐고,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성에 영감을 준 그야말로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궁전이다. 날씨마저 동화처럼 거짓말 같았던 이 날, 우리는 샹보르 성으로 향했다.
파리에서 남서쪽 방향, 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샹보르 성은 루아르 계곡(Loire Valley) 인근에 있다. 특이하게 당시 웬만한 성들은 전쟁에서 유리한 입지를 다지기 위해 언덕 위에 짓는 게 유행이었는데, 이 성은 강과 인접한 평지에 지어졌다. 이 성은 사냥과 휴양지로서의 성격이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 가장 탐나는 것이 바로 이 하늘이다. 하늘성애자에게는 그야말로 천국 같은 대륙.
아침을 안 먹고 후다닥 나오느라 휴게소에 잠시 들러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제과의 나라답게 휴게소 어디에나 이런 베이커리가 있다. 프랑스의 제과점은 어딜 가나 실패하지 않는다. 빵순이 빵돌이들이여, 이놈의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당신들이 가야 할 곳은 파리 바게뜨가 아니라 프랑스다!
아침을 먹었으니 점심을 먹어야 한다. 이것은 자연의 순리다. 성에 들어가기 전 마을 어귀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로컬 음식을 먹기로 했다. 이 동네 맛집인지 식당 안에는 손님들로 가득해 우리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도 꿈에 보이는 저 파스타. 순수에 가까운 느끼함으로 똘똘 뭉친 저 맛과 비슷한 파스타는 아직까지 먹어보지 못했다. 저 파스타는 저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시그니처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아 일단 '저 파스타'라고 저장.
각자 먹었던 메뉴들. 하나같이 기막힌 맛이었다.
낯선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점심을 만끽했다. 이런 여유를 부려본 적이 근래 있었을까? 한국에서는 언제나 바쁘고 치열했던 이방인 넷은 그렇게 잠시 천천히 숨을 내쉬고 다시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샹보르 성. 당시 문화적으로 부흥했던 이탈리아의 양식도 곳곳에 묻어있어 역사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이 성의 설계에 참여했다고 한다. 여기 루아르 계곡 인근에는 이 성 말고도 오랜 성들이 여럿 있는데, 샹보르 성이 가장 아름다워 루아르 계곡을 소개할 때 항상 표지 모델을 장식 중이다.
일행들이 모두 안으로 들어갈 동안 나는 밖에서 이 웅장한 자태를 오랫동안 감상했다. 하루 종일 보고 있으라고 해도 될 각. 이런 곳이 지구상에 실존하고 있다는 것에 감탄하면서 그렇게 한동안 동화 같은 현실을 즐겼다. 저 성 안에는 방이 440개, 영지의 넓이만 여의도의 18배가 넘는다. 대문에서 이곳까지만 약 6㎞에 달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한 소년도 잠시 페달 돌리는 것을 멈추고 저 모습을 찍어서 누군가에게 바삐 보내고 있었다.
수백 년 전 귀족들이 산책했을 것 같은 다리와 잔디밭은 지금은 누구나 들어와 놀 수 있다.
샹보르 성은 가까이 가서 보면 볼수록 탄복이 나올 수밖에 없다. 건축물이라기 보다 웅장한 예술품이다. 애초 프랑수아 1세의 사냥용 숙소로 지어진 곳치고 굉장히 호화스럽다. 이 모습은 아니지만, 이 궁전의 초기 모습을 짓고 나서 프랑수아 1세는 당시 적국이었던 신성 로마 제국 카를 5세 황제를 초청해 권력과 부를 과시했다고 한다. 1519년부터 짓기 시작한 샹보르 성의 지금 모습은 루이 14세 때 완성됐다.
현재도 복원 작업이 한창이다.
여기 부를 과시 중인 어느 부자의 차. 영지 내 레스토랑에 식사하러 온 듯 보이는 애스턴마틴 뱅퀴시와 DB9. 저 성에 사는 사람이 타는 차라고 해도 믿어질 만큼 그림 같은 성에 그림 같은 차.
가까이 갈수록 그 위용에 발걸음이 느려졌다. 카를 5세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너무 넓어서 이렇게 카트를 타고 다닐 수 있는 서비스가 있습니다.
중세 시대의 옷을 입고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알바(?)분들도 있다. 용인 한국민속촌에 있는 그분들 같은 느낌인데, 당시의 시대상을 저렇게 재현 중이다.
성 가운데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에 참여했다고 알려진 나선형 계단이 있다. 두 라인의 계단은 서로 겹치지 않게 소용돌이치며 올라가 정상에서 만난다. 계단 정상은 테라스로 이어진다.
성 외벽에 장식된 조각들 하나하나가 섬세하고 예술적이다. 곳곳에 코모도 도마뱀 같은 동물들이 많이 조각돼 있는데, 이 동물은 프랑수와 1세를 상징하는 불도마뱀이라고 한다.
테라스에 본 뷰. 가드너의 솜씨로 멋을 부린 정원과 끝이 보이지 않는 영지의 입구. 마차를 타고 와도 한참은 걸렸을 법한 넓이다.
실내로 들어가 보니 감탄은 이어진다. 빛이 최대한 많이 들이칠 수 있도록 창을 크게 냈고, 실내로 스며든 자연광은 성의 오랜 속살을 거침없이 비춘다.
벽면에는 다양한 그림과 장식들이 가득하다. 누군가 선물로 줬을 법한 이국적인 곳의 그림과
사냥터 숙소였던 터라 사냥과 관련된 주제의 그림과 박제가 많다.
꽤 여유로웠던 궁궐 소풍을 마치자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마침 금요일이라 길이 막히기 전에 서둘러 다시 파리로 향했다. 프랑스에 머물며 우리의 발이 돼주었던 르노 캡처. 국내엔 QM3로 팔리던 차인데, 지금은 똑같이 르노 캡처라는 이름으로 판매 중이다.
금요일 밤의 센(Seine) 강. 마침 생제르맹(Saint-Germain) 축구팀의 경기가 있었는지 이 날 파리의 저녁은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 주차할 곳도 없어 강 건너 공용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40분 넘게 걸어 숙소로 왔다. 내 심경과 다르게 고즈넉하게 반짝이는 센 강의 불빛이 위로를 건넸다.
숙소로 돌아와 동료들과 함께 먹은 늦은 저녁. 프랑스에 온 지 2~3일 만에 한국 음식이 그리워 각자 싸온 한국 식재료를 꺼내 파리에서의 첫 불금을 장식했다. 글·사진·영상 조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