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인기 화가 중 한 명이었던 산드로 보티첼리는 사실 세상을 떠나고 1880년대 중반 그의 그림이 재평가되기 전까지 3세기 동안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혀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관심을 다시 받기 시작하면서 무관심으로 가려졌던 그에 관한 가득한 의문들이 조금씩 밝혀 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보석세공사로 일했으며 당대 유명 화가였던 필로포 리피의 작업실에 들어갔다가, 이후 베로키오라는 인물의 화실에서 그림을 공부했습니다. 그의 친구이자 동료 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곳에서 만나 연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보티첼리는 상당히 밝고 익살스러운 사람으로 평소 많은 유머를 지어내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인물이었습니다.
보석세공사로 일했던 덕에 그의 그림들은 굉장히 섬세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는 피렌체에서 가장 강력한 가문이자 예술계 최대 후원자였던 메디치 가문의 지원을 받아 여러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대표 작품들에 평생 동안 등장하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의 이름은 '시모네타 베스푸치' 피렌체에 그녀의 빼어난 외모와 성품을 모르는 남성은 없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를 처음 본 보티첼리는 그날부터 심적인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가 한눈에 반한 여인 시모네타는 자신을 후원하고 있는 메디치가의 '줄리아노 메디치'의 연인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보티첼리가 짝사랑 앓이를 하던 중 시모네타와 직접 마주치게 됩니다. 그녀는 보티첼리와 첫인사를 나누며 그리려고 하는 그림에 대해 물었고 그는 비너스를 주제로 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모델을 찾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곤 시모네타는 자신이 비너스의 모델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고 보티첼리는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현생에서의 그의 짝사랑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시모네타는 22세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망하고 맙니다. 시모네타가 사망한 후 매일같이 자신의 마음을 숨기며 그녀를 지켜봤던 보티첼리는 자신의 머리와 가슴속에 남아있는 시모네타를 그림으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를 애도하며 그림을 그리기를 8년, 그렇게 완성된 그림의 제목은 <비너스의 탄생>이었습니다. 이후로도 보티첼리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그녀의 모습을 그림으로 옮겨 그림으로나마 그녀를 잃고 비어버린 자신의 마음을 채우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보티첼리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홀로 늙어 죽었으며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34년 후 죽음 앞에 선 보티첼리는 하나의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거든 시모네타의 발아래 묻어 주시오."
예술계의 또 다른 비하인드 스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