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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심이 부른 렘브란트의 쓸쓸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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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0. 18:108,238 읽음

젊은 시절의 렘브란트

우리에게 잘 알려진 빛의 화가 렘브란트는 가난한 방앗간 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천부적인 재능 덕분에 집안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일찍 전문적인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었습니다. 그의 빛나는 실력에 따라 렘브란트의 그림을 원하는 부유층들의 주문이 쇄도했고 빠른 시간 안에 성공한 화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사스키아 반 오이렌부르흐의 초상화

그의 그런 성공 노선에 더 강력한 부스터를 달아주었던 것은 그와 결혼했던 여인 '사스키아 반 오이렌부르흐'였습니다. 그녀는 렘브란트와 같은 집에 살던 미술품 딜러 헨드릭의 사촌이었고, 네덜란드 북부 프리슬란트 시장의 딸이었습니다. 부유하고 높은 신분의 집안이었던 그녀는 렘브란트의 끈질긴 구애로 그와 결혼해 주었고, 결혼과 함께 지참금으로 거금을 지닌 채 렘브란트와의 결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방앗간 집 아들에서 성공한 화가, 부유계층으로 단번에 신분상승했던 그는 가난했던 지난 시절의 설움이라도 풀듯이 벌어들이는 수익을 탕진하기 바빴습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거액의 빚을 지면서까지 대리석과 벽돌로 지어진 고급 저택을 구입했습니다. 게다가 그 고급스러운 저택을 횅하기 둘 수 없었던 그는 집안을 장식할 수 있는 여러 골동품과 해외에서 가져온 수집품들을 대량으로 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술집의 탕자>

그런 그의 낭비벽은 이탈리아에까지 알려질 정도였고, 사람들은 그를 '사재기 수집가'라고 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소문을 모를 리 없었던 렘브란트는 자신의 소비 생활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기라도 하듯 아내와 자신을 모델로 한 <선술집의 탕자>를 그려 사람들에게 공개했습니다. 이 그림은 누가복음 15장 11~32절의 내용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유산을 펑펑 쓰고 있는 아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그의 그런 당당하고 호화스럽던 생활에도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했습니다. 1635년 낳은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죽고, 3년 후 아이를 다시 가졌지만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또다시 2년 후 세 번째 아이가 태어났지만 그 아이도 2주 만에 사망했습니다. 게다가 같은 해 자신을 지극히 사랑해주셨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그리고 1641년 태어난 아들 '티투스'만이 그에게 드리웠던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지속된 임신과 출산으로 기력을 다한 아내 사스키아가 마지막 아들 '티투스'가 죽음에서 벗어난 것을 보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렘브란트의 아들 티투스의 초상

하지만 아들들의 죽음도, 어머니와 아내와의 이별도 렘브란트를 변화시키진 못했습니다. 그동안 눈치를 봐야 했던 아내가 사라져버린 탓에 오히려 지금까지 절제하고 있던 자신의 방탕함을 마구 풀어헤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유모로 들어왔던 헤르트헤 디르크스와 연애를 시작하고, 이후로 들어온 가정부와도 내연 관계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아내가 남긴 귀금속을 자신의 새로운 애인들에게 퍼주기 시작했고, 관계가 틀어져버린 헤르트헤가 그에게 소송을 걸자, 그녀를 정신병원에 감금시키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그의 방탕함에 그의 명성도 점점 떨어져 갔습니다. 그에게 그림을 주문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었고 저택을 구입할 때 진 빚에 허덕였습니다. 더 이상 빚과 자신의 낭비벽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그는 파산해 자신의 저택에서 쫓겨났고 빈민촌으로 이주해 말년을 보내야 했습니다. 

<돌아온 탕자>

그제서야 자신의 지난 과오에 대한 후회와 반성의 마음이 생겼는지, 그는 <돌아온 탕자>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날 자신이 그렸던 <선술집의 탕자> 그림의 뒷부분 이야기를 다룬 그림이었습니다. 오만하고 방탕했던 자들에게 돌아가는 죗값은 이미 예견된 결말처럼 그들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던 건 맨발의 누더기 천을 걸친 거지가 돼서야 자신들의 과오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것이었습니다. 렘브란트가 마지막으로 이 그림을 완성했던 이유는, 아마도 자신이 죽은 후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용서의 포옹을 받길 원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럽을 휩쓴 흑사병 때문에 아들 티투스도 먼저 세상을 떠나고 초라하게 늙어버리는 렘브란트는 1669년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는 지난 영광과 명성은 잊힌 채 이름 하나 새긴 비석 없이 무덤에 묻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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