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시대를 대표했던 빛과 어둠의 화가 '렘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 우리에겐 '렘브란트'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합니다. 렘브란트는 1606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종교적 신념이 강한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그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에 신앙심이 묻어나는 종교화들이 많은 이유는 부모님의 영향이 컸을 것입니다.
렘브란트는 어렸을 적부터 그림을 그리는 일에 크게 관심을 보였습니다. 렘브란트의 그런 모습을 본 그의 부모는 '야코프 판 스바넨뷔르흐'라는 화가 밑에서 미술 수업을 받게 하면서 그가 화가로서의 길을 밟을 수 있게 도와주었습니다.
1632년 렘브란트가 20대 후반이 되었을 땐 암스테르담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본격적은 초상화가로 그 명성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렘브란트의 명성을 듣고 그에게 그림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커리어에 금이 가게 한 의뢰가 있었는데, 그것은 민병대 대장인 '프란스 반닝 코크'와 그의 17명의 대원들로부터 의뢰받아 그린 <야경>이라는 그림이었습니다.
1640년 의뢰받아 2년 만에 완성된 <야경>은 당시 좋은 평을 받지 못했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대원들의 위상을 높여주고 싶었던 프란스의 의도와는 달리, 렘브란트 그림의 특색이었던 빛의 대비 효과로 그림 속 인물들 중 어떠한 인물들은 빛을 받아 잘 드러났고 어떤 인물은 그림에서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대원들과는 상관없는 렘브란트의 부인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데 돈을 지불한 다른 대원들보다도 그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신경 써 그려진 탓에 의뢰인들의 혹평을 피할 순 없었습니다. 빛을 이용한 그의 화법은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당시 의뢰인의 마음에는 들지 못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렘브란트가 그린 이 그림의 크기는 가로 5m, 세로 4.5m에 달하는 대형 그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림이 완성되고 이 거대한 그림을 본 대원들은 부대의 벽에 장식하기엔 너무 크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대원들은 그림 크기의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림을 잘라내는 것으로 말이죠, 물론 렘브란트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당시 상황을 보면 렘브란트의 그림이 현재와는 달리 얼마나 하찮게 여겨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렘브란트의 <야경>에 관해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사실 중 하나는 <야경>이라는 제목은 실제 그림의 제목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본래 이 그림이 그려졌을 때 붙여진 제목은 <프란스 반닝 코크 대장의 민병대> 입니다. 그림의 제목이 바뀐 것은 열약한 환경에 보관된 그림이 시간이 흐르면서 '변색' 되어 기존 보다 더 어두워져, 방치되었던 그림을 뒤늦게 발견한 사람들이 '부대원들의 야간 순찰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잘못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렘브란트의 <야경>의 수난은 현대까지 이어져 오면서도 계속되었습니다. 1975년 9월 한 실업 교사가 빵 칼을 이용해 그림에 12인치 가량 찢어버리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사건 직후 구금된 그는 "주님에게 명령받았다."라고 주장했으며, 정신병력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4년 후 그림은 복원되었지만. 손상되었던 부분을 온전히 가릴 수는 없었습니다.
1990년엔 정신 병원을 탈출한 한 환자가 그림에 산성 핵을 뿌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경비원이 즉각 사람을 막고 캔버스에 물을 쁘리면서 싼 성분이 그림의 코팅을 위해 뿌려졌던 바니시 층에만 침투하는 것에 그쳤습니다.
여러 수난을 겪은 이 그림은 지난해인 2018년 7월,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긴 기간 동안 전시되면서 손상된 그림의 복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림의 복원 과정은 모든 관람객들이 지켜볼 수 있도록 유리관 안에서 실시간으로 진행되며,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 생중계될 예정입니다.
우리가 몰랐던 비하인드스토리
